조오, <나의 구석>
M은 모국어로 된 책이 필요한 어린이들을 위해 그림책을 만들고 배부하는 국제 NGO의 대표입니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재작년 여름, 서울의 한 도서관에서 주최한 그림책 출판 체험 프로그램에서였습니다.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7월의 한가운데에서 한결같이 단정하고 환한 미소로 수강생들을 맞이하던 선생님이었어요. M은 한 짐 가득 그림책과 사업계획서, 강의자료 같은 것들을 가지고 다니며 사람들을 만납니다. 또 그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니는 두 아들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한창 엄마 손이 필요한 나이의 아이들은 날마다 에너지가 넘칩니다. 유치원에 안 가겠다고 우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 등원시키고 밤사이 미뤄뒀던 일 속에 파묻혀 있다 보면 어느새 하원 시간이라고 해요. 가끔 아이들이 아프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는 집에서 아이들을 보는 틈틈이 전화를 받고 문서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제가 보내는 하루가 안에 구멍이 숭숭 뚫린 바게트라면, M의 하루는 속이 꽉 찬 단팔빵일 거예요. M은 이렇게 밀도 높은 자신의 날들을 엮어 세네갈에, 시리아에, 캄보디아에 그림책을 만들어 보내 왔습니다. 큰 나무 둘레에 모여 모래바닥에 주저앉아서, 낡은 나무 책상에 걸터앉아서 그림책을 펴들고 있는 각국 아이들의 사진은 M에게 기쁨이고 보람이며 사랑이죠.
최근 M은 홈트를 시작했어요. 아무 생각 없이 땀 흘리는 30분이 너무 좋더라며 엄지를 세웁니다. 책도 빼놓을 수 없는 그의 큰 즐거움 중 하나죠. 그는 온 집안이 고요한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립니다.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찾아 듣고, 영혼의 단짝인 크림치즈를 듬뿍 바른 베이글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다 먹으며 기쁨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다정한 메시지를 남기며 이다음에 또 뭘 하면 좋을까 꿈꾸기도 합니다.
오늘 M에게 물어봤어요. “그 많은 일을 하루에 어떻게 다 하는 거예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그냥 사이사이에 해요.”하고 웃더군요.
아무것도 없던 구석에 작은 화분을 가져다 두고 이런저런 일을 하며 꾸며 나가는 까마귀는 그를 닮았습니다. M만큼 구석을 가만두지 않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작은 빈 모퉁이에 소중한 것들을 채워 넣고 빛을 들이며 돌보는 꾸준한 정성 덕에 M의 하루는 차곡차곡 채워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오랜 시간 공들인 구석은 그를 다음 재밌는 일로 연결하는 창이 되기도 해요.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M은 이 말을 몇 번이나 했어요. “하면 재미있을 거예요. 한번 시작하면 또 어디로든 가게 될 거예요!” 하고요. M의 기운을 빌어 저도 ‘나의 구석’에서 끼적이던 것을 슬쩍 꺼내 볼까 합니다. 우리가 각자 구석에서 만들고 채워 나가던 것들이 “안녕”하고 인사할 수 있도록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