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나리 유코, <행복한 질문>

by 숨님



아침에 남편이 종이를 찢어 팻말을 만들었습니다. <OOO 동 OOO 호 입주민 화 연구소>

이제부터 우리 집 입주민 중에 화가 나거나,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은 화 연구소로 와서 ‘황 박사’를 찾으라나요. 이 집에 황 씨가 아닌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따라서 분노 문제로 연구소를 방문할 입주민도 저뿐이죠.

멍하니 입을 벌리고 듣다가 피식 웃고 일어나 안방 문을 두드립니다. 똑똑.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하며 황 박사가 얼굴을 내밀어요. 미간에 힘을 주고 애써 화를 참고 있다는 듯이 민원을 넣어 봅니다. 쓰레기통이 꽉 차서 화가 납니다. 세면대 물이 잘 안 내려가서 답답합니다. 아이들도 덩달아 키득거리며 연구소(a.k.a 안방) 문 앞에 줄을 서요. 팔을 걷어붙이고 나오는 황 박사의 과장된 몸짓에 괜히 아침부터 삐죽거리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갑니다.


강아지 커플이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주홍 원피스를 입은 강아지가 턱을 괴고 “있잖아. 만약에”로 시작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내가 곰이 되어 있으면 어떻게 할 거야? 벌레가 되었으면? 나무가 되었다면? 맞은편에 앉아있던 강아지는 침착하고 끈기 있게 대답을 이어가요. 망설임 없는 대답 아래엔 무엇으로 변해 있더라도 한눈에 상대를 알아볼 거라는 전제가 깔려있죠. 네가 무엇이더라도 나는 너를 알아볼 거야. 네 곁에 있을 거야.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한밤중에 세상모르고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남편에게 가서 주홍 원피스 강아지처럼 대화를 시도해 봅니다.

“오빠, 나 책도 보고 싶고 자고도 싶은데, 어떡하지?”

“음…… 가위 바…”

“어? 뭐라고?”

“가위바위보 해…”

그러더니 정말로 했어요, 가위바위보를. 힘겹게 들어 올린 남편의 손은 세상에서 제일 졸려 보이는 가위였습니다.

“나 졌어. 뭐하면 돼?”

“나랑 같이 놀면 돼…”

이 말을 끝으로 남편은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대체 그런 건 왜 묻느냐고,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라고 따지지 않는 강아지가 마음에 듭니다. 터무니없는 질문이 귀찮을 법도 한데, 핀잔주지 않고 장단을 맞추는 강아지는 남편과 닮았어요. 저 사람은 왜 아침부터 화를 낼까, 한참 잘 자는 사람한테 왜 말을 시킬까. 남편은 아마 영영 이해할 수 없을 저를 모른 척 받아줍니다. 굳이 물어보지 않고 박자를 맞춰 줍니다. 이유를 따져 묻지 않는다는 건 결국 상대방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 같기도 하네요. 몰랐는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기분’은 정말로 괜찮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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