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동안 매일 글을 쓰겠다는 결심으로 글 모임에 참여했다. 그리고 오늘은 11월 13일. 내가 쓴 게시물은 0개. 다른 멤버들이 아홉 번째 글을 올리는 사이 나는 단 한 개의 글도 올리지 못했다. 아이 둘에 나까지 감기에 걸려 셋이 자가격리에 준하는 격리생활을 하며 집에서 일주일을 보냈고, 하필 남편도 재택근무 기간이 끝나 매일 출근하는 바람에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 전부 내 차지가 되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잠들고 집안 정리를 마친 후 하루를 마감하면 밤 10시쯤. 따뜻한 차를 끓여 책이라도 몇 줄 읽을라치면 걷잡을 수 없는 졸음이 몰려왔다. 소파에 모로 누워 개털로 뒤덮인 담요를 아무렇게나 휘감고 졸다 문득 정신이 들면 차는 차갑게 식어 있고 책은 가만 보자, 어디까지 읽었더라… 뜨다 만 눈으로 더듬다 보면 졸음이 뭉갠 행간이 또 뿌예졌다.
그래도 영차영차 힘을 내서 보고서 한 개를 작성했고, 축어록도 하나 풀었다. 서울로 강의도 하나 다녀왔다. ‘강의’라고 하기엔 보잘것없지만,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주최하는 이 그림책 만들기 수업만큼은 빠질 수 없었다. 소리 내 그림책을 읽다 등을 돌린 채 기침을 애써 삼키는 나를 본 참여자 중 한 분이 가방에서 호올스 사탕을 꺼내 주시기도 했다. 수업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경의선 전동차 안에서는 수명이 다 해가는 백열등처럼 깜박거렸다. 깜-하면 블랙아웃이다가 박! 하면 정차역이 서너 개씩 지나 있는 바람에 하마터면 내릴 곳을 지나칠 뻔했다.
제일 바쁜 건 손가락이었다. 지난 열흘 동안 나는 마스크 30개, 털실 네 뭉치, 책 10권, 로션 1통, 색종이 1000장, 사과 한 박스, 샐러드 두 종류, 푸성귀 600그람, 그 밖에 그릭 요거트, 대파, 무, 바나나, 오렌지 등을 사들였다. 이렇게 구매 목록을 늘어놓으니 열흘 간 내 속이 훤히 보인다. 썼다 하면 마스크를 콧물 범벅으로 만들어 놓는 둘째 아이 생각, 찬바람 불고 집에 있으니 스멀스멀 올라오는 뜨개 욕구, 비워도 비워도 장바구니가 꽉꽉 차는 책을 향한 갈증, 운동 못 가니 식단이라도… 이런 미련.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할 시간에 한 글자라도 써라, 좀.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랬듯, 글쓰기는 체력의 문제가 맞다. 진작 일어난 아이들이 활개 치는 소리를 꿈결에 듣고 평일 아침 8시가 넘어서야 겨우 눈꺼풀을 걷어보는 상태로는 절대 글을 쓸 수 없다. 몽롱하게 풀린 눈을 하고 어떻게든 기립근의 역할을 최소화하고자 옆으로 누워 겨우 책장이나 팔랑거리다 까무룩 잠들어서는 한 문장도 쓸 수 없다. 내 기립근이 역할을 다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정도로 허리가 뻐근하도록 앉아 있어야 뭐라도 쓰는 것이다. ‘글은 그냥 쓰면 된다’지만, 글을 쓰는 행동은 기침감기가 들러붙으래야 붙을 수 없는 면역력이 있을 때, 남들 잘 때 일어나 상 앞에 앉을 체력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한 다수의 여성작가들이 그랬듯, 글쓰기는 시공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때맞춰 식사를 준비하고 정리하고 설거지하는 데에 하루의 삼분의 일 정도를 써 버려서는, 종이접기를 하고 피아노 연습을 시키고 병원에 데려가고 퀴즈를 내고 맞히며 잘게 분절된 하루를 살아서는 글을 쓰기 어렵다. 수시로 벌컥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 내 등과 의자 등받이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인간이 있는 공간에서는 쓰기는 물론이고 읽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매인 몸에는 스트레스가 군살처럼 붙는다. 다음 주에는 어떻게든 등교시킬 수 있도록 주말에도 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생각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 사이 몸과 마음에 붙은 군살을 줄여 봐야지. 산책하고, 운동도 가고, 책 읽고, 글 쓰고, 빵 먹고, 과자 먹고, 라면 먹고…. 몸의 군살을 줄이는 건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벌써 글은 한 개 썼다. 시작이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