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하루씩, 하루만큼만

이혜란, <나무의 시간>

by 숨님


사람들은 어린나무를 하나둘 데려갔다.
앙상하고 구부정한 나무 앞에서는 아무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은 날들이 있었습니다.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앞서 걷는 친구들, 점점 몸집을 불려가는 친구들의 그림자를 쫓으며

조바심에 울기도 했어요. 나는 무엇이 될까,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될까, ‘완성형’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런 날이 오기는 올까 늘 궁금해했습니다. 


꽃도 열매도 없이 부지런히 자란 나무는
마당에서 가장 큰 나무가 되었다.


꽤 오랜 시간 내가 피울 꽃을 그리며, 내가 맺을 열매를 기대하며 살았습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은 이에게 조언도 듣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 사람 근처에서 향도 맡아보고요. 그러는 동안 처음 가졌던 마음은 조금씩 옅어졌어요. 설렘과 기대로 부풀었던 것이 꺼지고 나니 그 자리를 수치심과 불안이 대신하더군요. 앙상한 묘목이 마당에서 가장 큰 나무가 되기까지, 나무에게는 꽃도 열매도 없었다고 합니다.

나무는 궁금하지 않았을까요? 하루라도 빨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나무는 부지런히 자랐습니다. 자신이 뿌리내린 자리에서 매일매일 성실하게. 새들을 보며 하늘을 날기를 소망하지 않고, 구름을 보며 세상을 여행하기를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제자리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가지를 뻗을 뿐이지요.


어쩌면 완성형의 나는 영영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천년을 살면서도 천년을 가늠하지 않고 지금 맞이한 계절을 살아내는 나무를 보며, 열매를 맺을지 안 맺을지 모르는 언젠가를 기다리며 애쓰지 말고 지금 내가 디딘 이 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재료로 하루씩만 살아보자. 꼭 하루만큼만 다짐해 봅니다.



‘숨은 그림책 찾기’는 일산의 작은 책방 <너의 작업실>과 함께 하는 그림책 소개 콘텐츠입니다. 소개된 책들은 너의 작업실(@your_jakupsil)과 너의 작업실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를 통해 주문 가능해요. 그림책으로 따뜻하고 다정한 동네책방의 손길을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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