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굴려서

M.B. 고프스타인, <우리 눈사람>

by 숨님



초겨울부터 매서운 눈보라가 불어 마당에는 눈이 쌓이고 또 쌓였다. 드디어 해가 반짝 나온 날, 서둘러 두꺼운 옷을 입고 엄마를 졸라 동생까지 채비시켜 마당에 나선 아이는 신중하게 행동을 개시한다. 제일 먼저 할 일은 눈사람 만들기. 눈덩이는 반드시 진흙이나 나뭇잎이 없는 하얗고 깨끗한 눈 위에 굴려야 한다. 쪼그려 앉아 동생에게 눈덩이 굴리는 방법을 꼼꼼히 가르친 덕분에, 저녁 무렵에는 마당에 재미난 얼굴을 한 눈사람이 하나 완성된다.


오래지 않아 녹아 없어진다는 것 외에 눈사람 만들기의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은 내가 만들었지만 내 것일 수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만든 후에는 반드시 헤어져야 하는 것. 따뜻한 집 안에 가지고 들어오면 금세 녹아 버릴 테고, 밖에 두고 오자니 눈에 아른거려 한 걸음마다 뒤돌아보면 눈사람은 아까 그대로 우스꽝스러운 얼굴인 채 싱글싱글 웃고 있다.


마당에 세워 둔 눈사람이 어둡고 추운 바깥에 혼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아이는 못내 슬프다. 저 눈사람 만들지 말걸, 창문 너머 웃고 있는 눈사람을 보며 중얼거린다. 차라리 만들지 말걸, 이럴 줄 알았다면 시작도 하지 말걸. 시작을 안 했다면 이렇게 마음 아플 일도 없었을 텐데.


깨끗한 눈 위로만 눈덩이를 굴리듯 애를 쓰고 정성을 들여 굴려놓은 일이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때가 있다. 그런 건 식사 시간 내내 울다가 후식도 못 먹을 정도로 가슴 아픈 일이다. 눈사람이 얼마나 추울까, 외롭지 않을까, 컴컴한 밖이 무섭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일이다. 다행히 아이에게는 함께 신발을 신고 나가 주는 아빠가 있고 현관 불을 켜 주는 엄마가 있다. 어둠 속에서 눈을 굴려 만든 눈사람은 조금 지저분하지만, 흙이 좀 묻고 나뭇잎 투성이가 되더라도 눈사람은 여전히 눈사람이고, 나란히 서 있는 눈사람을 보는 마음은 무척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