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은 여러가지

수산나 이세른, 마리아 히론, <웅덩이를 건너는 가장 멋진 방법>

by 숨님
앗, 이런! 웅덩이잖아.
웅덩이에 빠지면 양말은 젖고
구두도 지저분해질 텐데, 어쩌지?
웅덩이를 밟지 않고 건널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아, 생각났다! 아홉 가지나 되네.


일대일 PT를 받기 시작한 지도 벌써 꽤 되었다. 작년 초여름, 20년 가까이 된 허리 디스크 통증이 걷잡을 수 없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한동안 잘 다스리며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허리를 구부릴 수 없으니 다니던 요가도 못 나가고, 머리를 감다가도 아파서 울고, 자다 자꾸 깨기 시작했다. 왼발을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윽 소리를 삼키며 고개를 들었는데 짜잔, 하늘의 계시처럼 PT샵 간판이 보였던 건 아니고, 오며 가며 보던 헐벗은 근육남 입간판이 눈에 거슬리던 차에 혹시나 하고 들어가 본 게 시작이었다.


트레이너 선생님과 함께 운동하며 매번 놀라고 감탄하는 건 생각보다 더 둔하고 무딘 내 몸, 그리고 언제든 어떤 상황에서든 선생님에게는 대안이 있다는 사실이다. 다리가 안 펴지면 발을 빼 보세요, 허리가 뜨면 이쪽을 잡아봐요, 그게 안 되면 스트랩을 써보죠, 자극이 오나요? 안 오면 이렇게, 이렇게 안 되면 요렇게, 요렇게도 안 돼요? 그럼 조렇게. 어떻게 해서든 최대한 되는 방향으로 가 보게끔 하는 것도 능력이다. 웬만해서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그럼 나도 나를 포기할 수 없어지니까. 이런저런 방법으로 하다 보면 될 때가 한 번은 꼭 생기니까. 그 한번이 생기면 다음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어제는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윗몸일으키기를 가볍게 50개만 하고 마무리하기로 했다. 막상 해 보니 적은 횟수에서는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는 동작인데 왜 자발적으로 하게 되지를 않을까 궁금해 물었다. “왜 집에서 혼자서는 운동을 안 할까요?” “회원님 일상에 루틴이 있으신가요?” 선생님은 큰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일단 운동복으로 갈아입으세요. 그럼 된 거예요. 매트 깔고 운동복 입고 앉아만 있어도 돼요. 아무것도 안 해도 돼요.”


몰랐던 건 아니다. 여러 책에서 밑줄 쳤던 숱한 문장들이 비슷한 얘기를 했었다. 하지만 나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선생님의 말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휴대폰 메모장을 열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하면 제대로 하고 싶어서 적당한 때를 기다리며 미뤄만 두었던 일들이 퐁퐁 떠올랐다. 글이 안 써진다며 책상 앞에 앉지도 않았던 시간들, 넘어진 김에 쉬어 가자며 머리도 안 감고 방바닥을 구르던 날들. 모종의 확신과 무수한 대안을 가진 선생님의 지도 아래 50분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오랜만에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누른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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