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나버릴까

선우정아, 곽수진, <도망가자>

by 숨님

아이들이 아빠랑 매미를 잡으러 나갔다. 나는 몇 걸음 쫓아가다 다시 돌아와 물통에 물을 담아 나갔다가, 찢어진 잠자리채를 가지고 들어와 바느질해서 다시 나갔다. 그새 채집통에는 매미가 열 마리.


요 며칠 힘에 부친 날들이었다. 가볍게 만들어버린 이야기들의 찌꺼기가 말할 때마다 조금씩 가라앉았다. 무슨 말이든 웃으며 시작하고 농담으로 맺는 내 모습이 싫었다. 마흔이 넘도록 부모님의 감정싸움에 흔들리는, 어정쩡하게 가운데 서서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가지 못하고 눈치만 보다 눈알이 튀어나와 버린 생선 같은 나. 뒤채는 마음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쏟아내는 나.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역할에서 엉망이었다.




어떤 사람은 맛있는 것을 먹고 좋아하는 걸 하라고 했다. 나만을 위한 시간을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먹고 싶은 것도 떠오르지 않고, 무얼 해도 집중이 안 될 때는 어떻게 하나.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남편이 나간 뒤 터진 눈물은 갑작스럽기도, 새삼스럽기도 했다. 몇 분간 끅끅거리다 문득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는데도 숨죽여 울고 있는 내 모습을 알아채고 잠깐 아득해졌다. 그날 나는 틈만 나면 침대에 누워 팔다리를 쭉 뻗고 가만히 있었다. 일부러 더 그러려고 했다. 채집통에 갇혀 있는 동안 울지도, 날개 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있는 매미들처럼.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구름이 가까워진다. 소나기가 쏟아질 모양이다. 어느새 매미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비가 올 낌새를 채고 미리 숨어버린 걸까. 도망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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