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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님 Mar 06. 2023

2023.2.10

밑간해 둔 닭고기를 한번 삶아서 건져내고 채소를 볶아둔 팬에 옮겨 담아 끓여야 하는데, 다른 팬에 볶기 시작한 양배추에서 치지지직 소리가 나고 밥 다 됐다고 쿠쿠가 불러대고 콩나물 삶는 냄비에서 김이 폴폴 나는 동시에 싱크대에 설거지할 게 쌓여가면 밥솥 증기처럼 내 영혼이 피슈슈 빠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마침 샤워를 마친 지안이가 나와 물기를 닦고 있네. 지안이가 혼자 머리를 말리기엔 드라이어 주둥이가 너무 길어서 뜨거울텐데, 닭도 밥도 콩나물도 나를 동시에 부르고 있고. 다섯 걸음이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왕복 가능한 작은 부엌을 동동거리며 괜히 부산스럽기만 하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콩나물만 건져내고 급히 안방 문을 열자 화장대 앞에 아이 둘이 같이 있었다. 기대 선 지안이 머리를 왼손으로 털며 약한 바람으로 윙 말려주던 지오는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을텐데도 짐짓 모른척이다. 젖은 뒷통수는 형 손길이 당연하다는 듯이 받으며 태연하다. 흐흐, 웃음이 새어나오고 한 줄기 김이 되어 나갔던 혼이 다시 온몸에 끼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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