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매우 빠른 동네, 분주한 가로수길 한 복판에 한잔의 따뜻한 웰컴 티를 건네는 shop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수많은 가게들을 지나 이곳까지 걸음 한 이들에게 건네는 고마움과, 편하게 머물다 가라는 인사말이 찻잎과 함께 내려져 있다.
가로수길에서 만난 친구 집 같은 공간.
일상 물건 편집샵 place 1-3을 소개한다.
Branding Point ①_상가주택, 새로운 쓰임
[상가주택, 이야기를 불어넣다]
필자가 근무하는 회사는 부동산 임대업을 병행하고 있어서 다양한 건물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은 너무 낡아서, 평수가 커서, 혹은 주변에 유흥시설이 많아서 공실 기간이 오래된 집들이 많았는데, 상가주택도 예외는 없었다.
주로 1) 넓은 평형대에 2) 엘리베이터가 없고 3) 주변 술집의 소음과 빛 공해가 심한 곳일수록, 상가주택의 공실률은 높았다.
<혜리의 집도 상가주택이다.>
*상가주택이란?
1·2층은 점포나 사무실이고 3층 이상은 주택으로 사용하는 고층의 병용 주택(빌딩)으로, 활용 대지가 넓어지고 건축비가 저렴한 이점이 있다.
그래서 보통 아래는 세를 주고 위에는 집주인이 거주하는데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건물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전월세로 거래되고 있다.
상가주택, 잘 쓰는 방법이 없을까?
라는 고민을 하던 중 회사 동료의 소개로 운 좋게 만난 곳이 바로 place 1-3이다.
<place 1-3의 골목과 facade>
Place 1-3는 가로수길 이면도로에 자리 잡고 있다. 주변 건물들도 저층부를 가게로 운영하는 상가주택이 대부분이며, 주로 사무실이나 주택의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그럼 palce1-3은 어떨까?
아래 입면을 함께 보자.
<place 1-3의 층 별 안내도>
Palce1-3은 상부 3개 층을 사용하고 있는데 각 층마다 기능이 다르다.
3층은 물건을 판매하는 shop과 매대, 4층은 shop과 직원 사무실이 함께 있고, 5층은 library이다. 라이브러리에서는 다른 브랜드와 collaboration work을 하거나, 장소 대관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제 place 1-3을, 평면에서 입체로 만나보자.
<건물의 입구와 복도에 놓인 귀여운 아기 가판대>
건물 왼쪽으로 들어가면 place 1-3의 입구를 만날 수 있다. 큰 광고판이나 전면 사인 대신에, 곳곳에 배치된 가판대가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으며, 복도에 있는 아기 가판대는 꽤나 귀엽다.
<조약돌 모양의 손잡이>
3층까지 오르면 이렇게 조약돌을 형상화한 듯한 예쁜 손잡이가 달린 문이 나온다. Shop의 콘셉트에 맞게 제작한 손잡이 하나가, place 1-3은 어떤 공간인지를 대신 말해준다.
이제, 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
<place 1-3의 전실>
예상 밖의 공간이 나왔다. 테라조 타일이 깔린 예쁜 부띠끄 공간을 상상했는데,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본 듯한 계단이 나왔다.
아… 여기, 주택이었구나.
흥미로운 것은 바닥, 계단, 문 등 집의 요소를 재사용했는데 덕분에 기분이 오묘했다. 마치 신발을 신고 방바닥을 몰래 걷고 있는 듯한 느낌, 그러나 할머니네 집에는 없을 것 같은 요즘의 가구들. 그리고 그 위를 덮는 음악이 만들어내는 house과 shop의 대비가 인상 깊었다.
<'家'의 흔적들>
아마도 place 1-3가 건물의 1,2층에 있었다면, 지금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여느 상점처럼 예뻤을 테지만, 단순히 겉모습보다는 이 곳만의 ‘집’스러운 느낌이 매우 좋았다. (상가) 주택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이다.
이 비밀스럽고 멋진 공간을, 층별로 낱낱이 파헤쳐보자.
[5F]
반계단을 오르면 나오는 shop과 카운터가 위치한 3층이 나오는데, 담은 이야기가 가장 많은 층이라서 마지막에 소개하고자 한다. 궁금증을 잠시 뒤로하고서 2개 층을 더 오르면,
<Place 1-3, 5F>
짜잔.
5층에 위치한 Library이다. 만일 집이었다면 다락방 즈음되는 이곳은 그 쓰임이 매우 다양한데, 주로 타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하거나, 대관 형태로 사용된다.
<collaboraion works, place 1-3>
필자가 방문했던 즈음에는 티 브랜드 맥파이 앤 타이거의 차와 도기들을 전시판매하고 있었다. 또한 컬래버레이션은 place 1-3와 결이 비슷한 브랜드와 진행하고 있다고.
그 ‘결’의 기준이 애매모호할 수 있으나, place 1-3의 공간에 존재할 때 어색함이 없는, 자연스러운 ‘결’을 가진 브랜드일 것이다.
*맥파이 앤 타이거란?
동아시아의 특색 있는 차와 관련된 제품을 파는 티 브랜드이다.
잠시 공간의 마감재를 보자면, 바닥은 아래층과 같은 재사용 원목 마루이며, 벽과 천정, 매대는 자작나무합판으로 디자인했다.
<벽, 천정, 가구에 쓰인 자작나무 합판>
합판은 원자재인 나무의 수종에 따라 종류가 나뉘는데, 인테리어에서 주로 쓰이는 합판은 아래와 같다.
<합판의 종류>
① 미송 합판
북 아메리칸 소나무를 얇게 켜서 만든 합판으로, 가구나 구조재 등 인테리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합판이다. 가격은 장당 약 10,000원 내외
② 낙엽송 합판
미송합판보다 질감이 센 낙엽송으로, 이자카야 같은 일식집 인테리어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가격은 장당 약 15,000원
③ 자작나무 합판
합판계의 끝판왕이다. 자작나무합판은 단면 특유의 느낌이 매우 고급스러워서 디자이너 혹은 건축가들이 선호하는 마감재이다. 가격은 3만 원대로 가장 비싸다.
<카페 '19평 거실'의 바 테이블도 자작나무 합판으로 만들었다.>
이렇듯, 디자이너의 센스에 따라 합판도 그 자체로 훌륭한 마감재가 될 수 있다.
Place 1-3의 library처럼.
[4F]
자. 이제 돌음 계단을 돌고 돌아 아래층으로 가보자.
<3-4층을 잇는 돌음계단>
4층은 공간을 나누어 한쪽은 사무실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공간을 활용하여 쇼룸을 구성했다.
<Place 1-3, office & show RM.>
전체적인 화이트톤에 개성 있는 가구들과 소품들이 공간을 채웠는데, 필자는 무엇보다 격자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로 만들었다고 해서 흔히들 목(木) 창이라고도 하는데, 일반 빌라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주로 고택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이 격자창은 알루미늄 새시(새시 x)가 나오기 전에 유행했던 창문이다.
하지만 기능(단열, 사용성 등) 면에서는 이후에 나온 새시를 따라가지 못했다. 때문에 목창은 자연스레 시장에서 사라졌고, 이제는 구하려고 해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옛 것]이 되었다.
허나 존재 자체 만으로도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 목창은, 가구나 소품들을 더욱 예뻐 보이게 만드는 여전한 힘이 있었다.
<Place 1-3의 목창>
[3F]
끝으로 담은 이야기가 가장 많은, 3층이다.Place 1-3의 얼굴이다.
공간에는 샵에서 판매하는 다양한 물건들이 공간에 잘 어우러져 있는데, 일반적인 판매샵과는 달리 공간이 먼저 보인다.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빈틈없이 파는 물건들로 가득 채운 가게와는 완벽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공간에 어울리는 물건만 가져다 놓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이해를 돕고자 먼저 평면을 준비했다. 평면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place 1-3은 단순한 판매보다는 방문하는 이들의 ‘쉼에 더욱 집중했다.
<Place 1-3, 3F Floor plan>
공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목창을 배경으로 한 휴식공간(과거 거실이었을)이 나온다. 의자에 앉아서 창 밖을 바라보며 웰컴 티를 마시고 있노라면, 이 곳이 분주한 가로수길 한복판인 사실을 잠시 동안 잊게 해 준다.
<거실처럼 따뜻한 3층의 hall>
등 뒤로는 마치 인스타그램의 1:1 사진 사이즈 같은, 네모난 벽을 기준으로 counter와 hall이 분리되어 있는데, 덕분에 쉼(hall)과 판매(counter) 공간이 기능에 따라 알맞게 정돈된 느낌이다.
<공간을 분리하는 네모난 벽>
카운터 옆에는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뮤직룸도 있다.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뮤직룸>
다음으로 부모님의 ‘안방’이었을 법한, 3층에서 가장 깊숙한 공간으로 들어가 보자.
<안방이었을 show RM.>
역시나 편히 기댈 수 있는 소파가 공간의 가운데에 놓여 있고, 그를 중심으로 사면에 판매하는 물품들이 따뜻하게 진열되어있다. 또한 2개의 널찍한 목창 사이로 은은하게 들어오는 햇볕이 공간을 더욱 포근하게 만들어준다.
햇살과, 가구들과, 공간을 받쳐주는 소품들의 조화가 매우 좋은 곳이었다.
방 한 켠에는 이렇게 서재 같은 공간이 있는데, 책상에 앉아서 만년필을 직접 써 볼 수 있다. 필자 또한 의자에 앉았는데, 문득 이 공간은 어둡게 연출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 한편의 서재>
퇴근 후 집에 들어와서 TV를 보며 맥주 한 캔을 하다가, 한 밤 11시 즈음 조용히 서재에 들어와 그날의 일들을 무심하게 기록하는 공간이, 테이블 조명 하나만 켜져 있는 어둡고 고요한 공간이었으면. 만년필과 노트로 의도했던 ‘씀’의 행위를 더욱 온전하게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렇듯, 사방의 벽면에 천정 끝까지 진열대로 가득 채우기보다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편안한 의자를 두는 것. 공간 하나를 떼어다가 홀로 조용히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방을 만들어 주는 것은,
단순히 팔기 위한 생각보다는 제품을 만든 이에 대한 존중과 그를 찾는 이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공간에 표현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