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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카포 Nov 03. 2020

아픔은 원래부터 내 꺼야. 하는 마음

바보야, 중요한 건 네 마음이야. 무엇을 소유할 지부터 다시 시작해 봐.

스물아홉으로 넘어가기 직전 가을, 갑자기 다리를 절뚝이게 됐다.

진짜 완전 황당하게 발목 삐끗하는 계기 한 번 없이 말이다.

정확하게는 땅에 발을 딛고 앞으로 나가는 게 안됐다.


회사 근처에 박지성 주치의라고 플래카드가 걸린 병원에 가니 인대 재건술을 권한다.

당신 인대는 늘어났으니 늘어난 부위를 잘라서 이어 붙이는 수술이라는데,

너무도 담담한 의사와는 달리 나는 너무너무너무 놀라고 떨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늘 잔병을 달고 살기는 했지만 외과적 수술을 받았던 적은 없었다.

지금은 세 아이를 만나면서 세 번의 외과 수술을 받았는데도... 수술이 너무너무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제왕절개도 외과 수술로 쳐주나... 그냥 그렇다고 끄덕끄덕 해 주라...)


일단 할 수 있는 조치를 해달라고 요청해 발목보호대를 차고 다녔다.

한쪽 다리만 사용하니 다른 쪽 발목에도 무리가 가 결국 양쪽 모두 보호대 신세였다.

한창 멋 부리고 예쁘고 싶은 나이에 발목보호대라니...

다리가 띵띵 부어 퇴근할 무렵에는 울면서 집으로 향하기 일쑤였다.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대학병원으로 옮겨서 진료를 받았다.

피검사도 하고 온 뼈마디를 스캔했는데도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았다.

의사도 딱히 해 줄 게 없으니 소염진통제 처방과 차고 있던 보조기를 사용하도록 했다.


한 달에 한 번.

"좀 어떠세요?"

"더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이 있나요?"

그렇게 서너 번 그 의사님을 만나고는 별다른 치료 없이 보조기를 떼어내게 됐다.


아마도 스트레스 때문이었으리라.

당시 직장 생활 중의 최고의 업무 부담과 분노조절장애가 의심되는 상사와 일하면서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이르렀었다.


업무적으로는 살면서 애를 써도 못하는 일이 있을 수 있구나. 인정해야 하는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 모든 게 내 탓은 아닌지 심한 자기 검열로 외로운 상태였다.

그 사건을 계기로 나는 극도로 내 몸과 마음을 아끼게 됐다.


시즌이 바뀌면 환절기니까 감기는 내 거,

많이 걸으면 다리 아파서 무리되면 안 되니까 대중교통의 빈 좌석은 내 거,

다리 다치기 전엔 손목 부상으로 6개월 보조기를 찼었기에

무거운 짐을 들 일이 생기면 타인의 도움도 내 거.

원래 괜찮다 하는 시술에도 열 중 두셋에게 걸려든다는 극심한 고통도 내 거.


아프고 어려운 일은 다 나에게 생기니 늘 조심하고 경계하고 나를 가뒀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겪는 일들 가운데

몸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마음이나 신앙적 이유로만 연결 짓는 나와는 달리

논리적 개연성을 가지고 풀어내는 남편과 함께 하게 되니

더 좋은 것들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아... 저거 하고 싶은데 하고 나서 무리가 돼서 아프면 어떻게 하지?"

"일단 해 봐라. 왜~"


셋째를 둘째와 연년생으로 만나고 집에만 누워있으니 오만 생각이 들어 눈물 머금고 있는 나에게

"아직 낮에는 해도 나고 날씨 괜찮아. 나가서 좀 바람 쐬고 와."

"산후풍 걸리면 어떡해. 난 원래 몸이 약하잖아."

"꽁꽁 싸매고 나가서 잠깐 걸으면 되지. 얼른 나가서 바람 쐬고 와."

"그럼 한 번 나가볼까?"


사실 산후풍이 심리적인 부분이 있다더라며 나를 설득한 그가 못마땅하기도 했다.

너가 뭘 알아? 하는 마음이었지만 못 이기는 척 나갔다 왔다.

날이 좀 풀리고는 주말 중 하루는 남편에게 이끌려 세 아이를 웨건에 싣고 7km 정도는 걸어줬다.

물론 산후풍이 무서워 나는 맨 몸으로 걷기만 했지...

봄이 되니 매일 다른 풍경이 나를 반기는 즐거움이 있더라.

그 시간들을 계기로 마라톤을 꿈꾸게 됐다. 그리고 지금은 매일 달리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원래 모습을 알리가 없는 주위 사람들은 역시 애 셋 엄마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도 웃음이 난다.


아픔에 부정의 프레임을 씌워 그것이 내게 온 이유에 대한 묵상들로 2차 고통을 가중했던 내가

지금은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마음은 공감하고 위로하면서도

나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조금씩 움직여 볼 것을 권하는 내가 됐다.


약함이 내 것이라고 주장하던 내가

원래 건강했던 사람처럼 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인생 중 1년, 내 삶이 180도 달라질 수 있는 시간이라면 투자해 볼만 하지 않은가?

달리다보면 예쁜 하늘을 선물로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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