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봤던 영화 <툴리>에 나온 대사. 육아와 각종 스트레스에 지친 여주인공 툴리가 남편에게 이런 자신에게서 도망치고 싶냐고 물었을 때 남편이 했던 대사다. 보통은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하지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한 게 생소했는데, 요상스러운 이 말이 어째 두고두고 생각이 난다. 그렇게 곱씹어 볼 때마다 참 맞는 말이지 싶다.
누군가와 연인이 되는 건 '나'와 '너' 두 사람이 함께하는 일이다. '나'와 '너'가 함께 대화하고 시간을 보내며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러다 보면 서로를 닮아가고 둘만의 방식 같은 것도 생긴다. 그렇게 둘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된다.
그러나 모든 연인이 '우리'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하지는 않는다.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내가 힘들어도 참고 견디는 사람들도 많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질 수밖에 없다는 말로 자신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아픈 사랑을 하는 사람들. 그 사람은 언제나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반면 의문이 들 것이다. "그 사랑을 하는 '나'를 사랑한다고도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느냐"는 물음엔.
'너'를 사랑하지만 그런 너의 곁에 있는 '나'를 사랑할 수 없을 때, '나'는 행복하지 않을 때. 그때는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그런 사랑을 하고 있다면 도망칠 용기도 필요하다. 너를 사랑하지만 우리를 사랑할 수 없다는 건, 내가 소외된 사랑을 하고 있다는 뜻일 테니. 그러니 사랑을 할 때는 틈틈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우리를 사랑해"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는 관계인지.
-예전에 써둔 글
어쩌면, 나는 처음으로 "나는 우리를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머리도 일상도 꼬여서 회사도 못 다니겠다고 내팽개치고 있는 이 마당에 말이다
비록 지금 나는 '나'를 충분히 사랑하고 있진 못하지만, '우리'는 사랑한다
내 옆에 있는 사람과 나의 관계에서 다른 점을 통해 배우고, 닮은 점 덕분에 즐거울 수 있으니까
그래서인가? 여태까지의 나와는 조금씩 달라지는 느낌이다
그중 한 가지는 이번 크리스마스엔 누군가에게 산타가 되어주고 싶어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
그가 전부터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지만 상황상 갖지 못하게 된 어떤 물건을,
그가 나처럼 이기적인 욕심쟁이었다면 진작에 손에 넣었을 어떤 물건을,
나랑 볼 영화표는 밤새서라도 취소표를 구해오는 그 사람의 능력으론 절대 구하지 못했을 리 없는 물건을,
내가 대신 구해주려고 안 하던 짓을 열심히 해본 것이다
참 부끄럽기도 하고 마음이 따뜻하기도 한 점은
내가 그 사람에게 뭔가를 해준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보답한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이 생각만큼 내가 얼마나 많은 마음을 받고 있는지 증명해주는 것이 있을까
그제 잠들기 전 통화에서 "산타는 이제 없잖아"라는 내 말에 "아니야, 아직도 있어"라고 그는 말했다
돌려 말하기를 좋아하는 내가 그 말을 "아니야, 내가 선물을 준비하고 있어"라는 의미로 홀랑 해석해버렸다는 걸 그는 알까?
예전 같으면 '안 주기만 해봐라 흥흥' 이러면서 미리 섭섭해하면서 벼르고 있거나 '갖고 싶은 거 떠보지도 않는 걸 보니 나한테 관심이 없나'라며 나를 괴롭혔을 불안감이 '우리' 안에서는 들지 않는다
오히려 '내일 내 산타 노릇을 해주지 않으면 잔뜩 놀려줘야지! 그래서 당황하는 얼굴 보고 웃어야지!'라는 즐거운 기대감만 가득하다
지난번 상담에서 다른 사람이 내 말에 부정적인 반응만 할 거 같다는 고민을 터 놓았을 때, 그 중심에 있던 사람은 남자친구였다
그러자 선생님은 "그 사람이 OO씨를 좋아하는 정도를 1에서 100까지라고 하면 어느 정도인 것 같아요?"라고 물었고,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100이요......"라고 답했다
내 고민과 참으로 맞지 않는 나의 답, 나는 100의 마음을 받고도 불안해하는 게 우선인 참으로 피곤하고 어린 사람이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창피하다ㅠㅠ)
그렇지만 내가 '우리'에 속할 때는 그냥 우리로 있는 그 자체가 즐겁고 좋고 따뜻하다
그래서 늘 내가 사랑하는 '우리'의 모습을 '나'의 모습으로 닮아갈 수 있게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