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은 나의 존재와 살아가려면
별 일 아닌데 신경 쓰이는 일이 있다면 사실 그 일은 별 일이 맞다. 많은 사람들은 별 거 아닌 것에 내가 예민해서 그런가? 라고 생각하며 쓸데없이 별 거 아닌 일에 신경 쓰는 나를 꾸짖지만, 사실 그 일이 나에게 주는 영향이 있기 때문에 나의 감정이 신호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나의 몸도 어떠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그 신호를 애써 무시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참 많이 봐왔다. 몸이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는 건 마음에 비해서 알아차리기 쉬운 신호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그냥 또 몸이 아픈가보다, 그렇게 넘겨버린다. 사실 우리 몸이 마음을 대신해서 아프다고 말해주는 중일 수 있다. 마음의 소리를 듣기 어려워하는 우리에게 몸이 신호를 주는 것이다.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경험하는 반응은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뒷목이 뻑뻑해지거나 두통이 온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배가 아프거나 기절할 것 같은 사람도 있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사람,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사람 등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여러 가지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
little reflection
내가 스트레스 받으면 가장 빨리 불편해지는 신체부위는 어디인가요? 최근 스트레스를 크게 받았던 상황에서 나의 몸은 어땠는지 최대한 자세히 떠올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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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에 나타나는 나의 신체 반응을 알아주는 건 나 자신을 챙기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나에게는 그 사건이 스트레스 자극으로 다가왔으며, 나의 몸과 마음은 그 스트레스를 처리해달라고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나는 그에 맞게 나를 위한 스트레스 ‘대처 행동’을 실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왕이면 좀 더 건강한 방법이면 좋겠다. 술이나 잠으로 스트레스 사건을 잊어버리는 대처 행동은 순간의 망각일 뿐이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잊어버리는 식의 스트레스 대처 행동이 습관화 된 사람들이 참 많다. 가장 쉬우면서도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이 혼미한데, 나에게 이로운 행동을 찾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나에게 이롭지 않은 걸 알면서도 즉각적으로 나의 괴로움을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이 경우, 스트레스로 인한 여파는 사라지지 않고 내 몸에 고스란히 저장된다. 그리고 다음에 또 비슷한 스트레스 사건이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또 나는 지난번 스트레스로 인한 여파에 새로운 스트레스를 쌓는다. 내 몸에는 그렇게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쌓여간다.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에 하나가 ‘꿀잠’이다. 비몽사몽 중인 대한민국 직장인을 타겟팅한 ‘슬리포노믹스’는 ‘수면(sleep)'과 경제학(economics)'를 합한 신조어로, 수면장애를 앓는 현대인의 숙면을 돕는 ’수면 관련 산업‘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잠과 같이 생존에 필수적인 행위를 챙기기 어려운 현대인들은 오늘도 스트레스로 꿀잠을 놓친다.
스트레스가 장기화되면 만성 피로를 느낀다. 꿀잠을 자고 싶기도 하지만, 일찍 자면 억울한 마음도 든다. 하루 종일 나를 위한 시간이 없었으니, 퇴근 해서라도 웹툰이나 유튜브를 보며 좀 쉬고 싶기도 하다. 사실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는 마음이 크다. 출근하기 싫다.
주변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는 지. 사람들은 다 내가 괜찮은 줄 안다. 괜찮은 걸 넘어서 아주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끔은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을 제어하기 어려워하는 것도, 더 살아가기가 힘들다고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 것도 꿈에도 모른다. 내가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으니까. 그 누구에게도, 하물며 정말 가까운 내 가족에게조차. 나는 괜찮은 모습만 보여주고 사는 게 당연했으니까.
이렇게 살다보면 점점 의욕도 사라지며, 이유 없는 짜증과 화가 많아진다. 맡은 일에 있어서 한계를 자주 느끼며, 재미도 없어진다. 내일이 오는 것도 싫고, 점점 사람들도, 세상에 대한 시각도 냉소적으로 변해간다. 그렇게 사람에게, 세상에게, 그리고 나에게 실망감이 쌓여간다. 번아웃(burn out: 소진)이 온다. 일에 있어서도 내 삶에 있어서도.
자도자도 피곤하다면, 이유 없이 무기력하다면, 혹은 이유 없이 슬프다면 내가 너무 지친 것이 아닌지 살펴볼 타이밍이다. ‘경쟁사회’에 더해 ‘피로사회’라는 시대적 분위기가 만들어진 지 몇 년이 되어간다. 우리 사회에 피로한 사람이 참 많은 이유는 자신의 피로함이 만들어진 근본적 원인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게 개인의 책임과 의무가 아닌데, 개인이 스스로 모든 걸 잘 해내야하는 게 아닌데 개인이 짊어지고 있는 책무가 참으로 무겁다.
우리를 이렇게 피로하게 만든 근본적 원인으로는 사회적 이슈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 안에서 개인은 지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 구조를 이해하고, 내가 그 안에서 어떻게 묶여 있는 지를 파악해서, 그 구조 밖으로 나올 방법을 찾으면 좋겠다. 이젠 우리 그럴 힘도, 자유도 있다. 우린 이미 자유다. 그 자유를 나에게 제공할 수 있는 건 오롯이 나 자신밖에 없다.
괜찮지 않은 나의 존재와 살아가려면
“괜찮지 않은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즉, “괜찮지 않은 나는 없다고 치자”라고 다짐해 봐야, “괜찮지 않은 나”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프로이트의 성격이론은 무의식이 인간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괜찮지 않은 나는 존재하지 않아” 부정하더라도 괜찮지 않는 나의 존재는 나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영향력이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커진다.
“나는 불안하지 않아, 불안한 나는 없는 것으로 치자” 이런 생각 때문에 불안이 더 커진다.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불안은 통제 불가능한 괴물이 되어서 무섭게 날뛴다.
불안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반대로 불안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 불안할 수도 있지, 지금 나는 불안하구나”불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불안은 더 커지지 않는다. 불안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마비되거나 경직되지 않고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다.
글: Chloe Lee
그림: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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