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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도 자기이해가 필요하다.

내 안의 어떤 부분을 소외시키고 있나요?



티셔츠가 배꼽 위까지 올라간 모습을 본 남편이 내 티를 가리키며 "티를 좀 내려야할것같아"라고 하길래


"그래?"


"근데 뭣땜에 내려야하지?"라고 물으니 남편이 이어서


"그러게. 허허허. 굳이 내릴 이유도 없겠다;"



물론 내 배가 드러나야하는 이유도 없으나


내려야만 할 이유도 당장 말하긴 어렵다.



그리고는 20년 전의 남자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다면 어떻게 말했을까?란 생각으로 이어졌다. 남자 인간과는 1m도 가까이하면 안된다고 말하며 일거수일투족 나를 구속했던 친구라 화부터 냈을듯. 그 때는 내가 건강하게 생각할 줄 모르던 시절이라 그저 그 사람이 말하는 걸 곧이 곧대로 듣고있었다. 안 그러면 헤어질까봐. 날 떠나갈까봐. 나는 나를 몰랐고, 나로서 사고할 줄 몰랐다.



그러고보면 우리가 무의식중에 이래야한다, 저래야한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에 제대로 점검해 본 생각이 얼마나 있을까? 예컨대, 여자는 애 낳으면 인생 끝. 남자니까 당연히 돈 벌어와야지처럼 올드한 성차별적 가치관을 포함해서 너무나도 당연시하는 가치관에는 어떤 것들 있는가. 그렇게 무비판적으로 타인(사회)의 가치관을 내사하느라 소외된 내 안의 가치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 나도 모르게 부정하고있던 내 안의 어떤 부분을 이해하고, 나를 내가 수용해보는 시간처럼 "자기이해의 장"이라는 것이 우리에겐 종종 필요한 이유다.



"연애란 이 사람한테 받은 걸 저 사람한테 주는 이어달리기와도 같은 것( <보통의 존재, 이석원 작가> P.39)"이라는 구절처럼 우리는 과거 사람에게 받은 걸 통해 현재의 사람에게 어떤 것을 잇곤 한다. 그럴 땐 잠시 멈춰 나에게, 또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자. 그 땐 그랬는데, 지금의 나는 이렇게 생각해. 우리 여기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해볼까?. 순수한 호기심으로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나 자신에 대해서도 더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사랑하면 좋지 않을까.


/사진: 포클로이(이혜진)

참고한 책:

https://naver.me/5Lo4e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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