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라는 단어가 오염됐다("선량한 차별주의자" 중에서)
누군가에게 다문화는 낙인이고 차별과 배제의 용어가 되었다. 한 중학생의 말처럼 말이다.
"종례 뒤 선생님이 ‘다문화 남아!’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나도 이름이 있는데 ‘다문화’로 부르셨다.
선생님이 내가 마치 잘못을 했다는 듯 말씀하셔서 큰 상처를 받았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P.133>
다문화주의는 각자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평등한 관계를 전제로 한다.
특정 문화를 우위에 놓거나 일방적으로 선을 긋고 배척하는 행동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다문화’가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진짜’한국인이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용어로 쓰이는 것이다.
한국인은 다문화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 묘한 구도는 한국인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모순된 인식구조를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문화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동등하게 존중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다문화주의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도 전에 단어가 오염되면서 원본을 알기 어렵게 된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