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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죄책감을 내려놓으며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게 당연하지 않아지는 그 날

마음이 어지러울 땐 노래 속 가사를 통해 위로받곤 했다. 내 삶이 한창 어지러웠을 스물일곱엔 가수 이은미가 부르던 노래 <녹턴>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괜찮아 울지 말아요
우리가 잘못한 게 아녜요
대답 해봐요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들의 말 따윈
믿지 마요  

이은미 <녹턴> 중에서  

 



그 노래가 흘러나왔을 당시에 나는 한참 이별 후,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끝나버린 우리의 인연을 슬퍼하며 왠지 이별이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처럼 들렸던 그 노래 가사가 그렇게도 위로가 되었다.


죄책감을 조금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잠시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잘못한거 아닌가?’라는 생각은 이별했을 때만 드는 건 아니었다. 나에게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꽤 오랫동안 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예를 들어,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밖에서 맛있는 걸 먹을 땐 늘 죄책감이 들었다.
‘나만 이렇게 맛있는 걸 먹어도 되나...엄마도 같이 왔음 좋았을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내가 먹었던 맛있는 건 포장해서 집으로 들고 갔다.   


재밌는 걸 하거나 좋은 데를 갈 때도 똑같은 마음이 들었다. 음식처럼 사갈 수 없어서 죄책감의 무게는 더 컸다. 그렇게 그 좋은 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그 땐 참 모든 게 죄스러웠고,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잘못된 일인 줄 알았다. 그렇게 born-to-be 죄인이라 여겼던 나는 겉은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그로부터 십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의 나는 더이상 죄책감으로 고통스럽지 않다. 내가 누리고 싶은 순간을 누릴 수도 있게 되었다. 불필요한 죄책감을 벗어던졌기 때문이다. 죄책감은 나에게 오랜 습관이었고, 습관은 내가 원한다면 바꿀 수 있는 것이었다.


인간에게는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추동(drive)이 있기 때문에 내 안의 어떤 생각이 고통을 유발한다고 하더라도 쉽게 사라지진 않는다. 습관은 그저 개인에게 편안하고 익숙한 것이다. 그래서 어느순간 그런 생각은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생각이 들 때마다 고통스러운 정서가 따라온다. 예를 들어, 내가 느꼈던 죄책감 또는 부끄러움(수치심), 버림받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유기불안), 무능하다는 느낌(무력감) 등등     


이럴 땐 나를 괴롭히는 생각이 '당연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한번 더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오래된 내 생각이 참인 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해보는 것이다.


나는 벌을 받아 마땅한 나쁜 사람이야
그러니 나만 혼자 행복하면 안돼. 정말 나쁜 사람인거야.
내가 어떻게든 착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날 떠날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절대 당연하지 않은 이 생각이 당연하다 생각하며 지나친 고통을 감수했다. 이젠 필요 없는 이 생각들을 폐기한 나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내가 되었다.


나는 벌을 받아 마땅한 나쁜 사람이야 → 그런 게 어딨어? 잘못을 했다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음 되는거지.
그러니 나만 혼자 행복하면 안돼. 정말 나쁜 사람인거야. → 내가 행복감을 느끼는 건 그냥 이 순간 행복감을 느끼는 것. 그것이 내가 나쁜 사람인거랑 무슨 상관임.?
내가 착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날 떠날거야. → 떠날 사람은 어떻게든 떠나. 그건 그 사람의 자유니까. 내가 인위적으로 행동한다고 해서 지켜질 관계를 계속 하고싶음.?




내 마음을 바라보다보면 언젠가는 이런 순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걸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도 내가 자동적으로 당연하게 생각했던 게 당연한 게 아니었음을 만나는 순간, 우리는 한결 더 자유로워진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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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Chloe Lee

사진: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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