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는 <그리스인 조르바>가 없었다.
서른! 잔치는 끝난 것일까 다시 시작되는 것일까?
20대에 입장한다는 것은 신의 축복과 같은 눈부심이었지만, 30대란 관문은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 가사 때문인지 약간은 쓸쓸했고, 조금은 방황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진짜 내 길인지 다시금 되묻는 나이가 된 것이다.
보도국 시사 프로그램 메인작가 명함을 단 서른의 나는 섭외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었다. 매일 이슈가 되는 인물을 발굴하고 스튜디오로 이끌어내기까지는 어마어마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했다. 누가 들어도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분노에 차 항의를 하는 시청자 전화에 진땀을 빼는 것도 온전히 내 몫이었다. 말 그대로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무엇보다 전화가 없는 세상에 살고 싶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마지막 지하철에 몸을 실을 때면 온 몸이 까만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누구의 관섭도 받지 않을 ‘자유’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았다. 이것은 진정으로 내가 원했던 삶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한 많은 이들이 밟는 수순을 기꺼이 따르기로 했다. 프로그램을 관두었고, 퇴사 다음은 으레 그렇듯 여행이었다. 나는 자유에 목말랐고, 자유하면 응당 조르바였으니, 조르바의 나라 그리스로 목적지를 정했다. 아울러 그리스어로 된 <그리스 인 조르바>를 사야겠다고 다이어리에 적었다.
회의감, 초조함, 불안함, 그리고 실핏줄 같은 희망을 안고서 서른의 나는 그리스 땅을 밟았다. 진정 자유의 나라에 도착했다는 기쁨도 잠시 당황이 찾아왔다. 아테네의 대형서점에는 <그리스인 조르바>가 없었던 것이다. 서점 직원은 대체 그 작가가 누구냐고 되물었다. 막연히 우리나라의 <토지>나 <태백산맥>처럼 모두가 사랑하는 국민책 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테네와 산토리니 섬을 갔지만 그 어떤 서점에서도 <그리스인 조르바>를 찾지 못했다.
무신론자였던 카잔차키스는 조르바의 입을 빌려 신을 악마로 표현했고 수도사가 수도원에 불을 지르는 등 파격적인 설정으로 인해 그리스 정교회로부터 신성모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한동안 그리스에서 출간이 금지됐었던 이력을 감안하더라도 아예 없다는 것은 꽤 기이한 일이었다. 갑자기 조르바가 저 먼 신기루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대부분의 외국인들도 조르바를 몰랐다. 독일에 살면서 직업이 작가인 친구한테도 물어봤지만 처음 듣는 책이란 답이 돌아왔다. 물론 <그리스인 조르바>는 앤소니 퀸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이 됐고 아마존 리뷰를 보면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만큼의 열광적 인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왜 유독
<그리스인 조르바>를 사랑할까?
무엇보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이 책을 찬양했다. 한때 열심히 구독한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조르바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손님이었다. 집계 결과를 보면 가장 많이 추천된 책 2위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 인 조르바>, 1위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다. 김정운 교수는 조르바처럼 자유를 찾겠다며 교수직을 내려놓고 일본으로 훌쩍 떠나 화제의 인물이 되었고, 장석주 시인은 이 책을 흠모한 나머지 거의 외웠다고 고백했다. 조르바는 자유의 대명사였다. 특히 퇴사한 이들에게는 바이블과 같은 필독서로 자리매김했고, 한때 조르바라는 아이디도 인터넷에서 꽤 유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가 이토록 조르바에 열광한 것은 어쩌면 그와 같은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지, 눈부시게 푸른 산토리니 바다를 보며 생각했다. 한국 사회는 자유롭지 못하다. 과도한 경쟁과 치열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유를 묵어둘 수밖에 없다. 입시지옥이 끝나면 취업경쟁이 기다리고 있고 결혼을 했더니 독박육아가 다가왔고, 이제 좀 살만하다 싶을 때면 노인빈곤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열 차게 일을 해야 했다.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억압의 무한반복 속에서 발버둥 치다보면 순도 100%의 오늘을 사는 조르바가 부러워진다.
조르바란 대체 어떤 인간이기에 이토록 우리를 매혹했을까? 그는 실존인물이었다. 1917년 카잔차키스는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석탄이 부족해지자 기오르고스 조르바란 사람을 고용해 갈탄 탄광 개발에 착수한다. 사업은 실패했지만, 평생 책만 읽고 살아온 작가에게 호방하고 기개 넘쳤던 조르바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훗날 카잔차키스는 조르바야말로 자신이 평생 만난 사람 중 존경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라고 했던 카잔차키스의 유언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줄 평과도 같았다.
책 속의 조르바는 그를 관찰자 시점에서 바라보는 나에 의해 설명된다. 화자인 나는 행동하는 양심과는 거리가 먼 소심한 지식인이다. 나는 갈탄 광산 개발을 위해 크레타 섬으로 가는 항구에서 60대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난다. 조르바는 다짜고짜 젊은 시절 광산에 일한 경험이 있다며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화자는 그의 도발적인 말투와 태도에 매력을 느껴 광부 감독관 역할을 맡기기로 한다.
섬에 도착한 두 사람은 오르탕스라는 과부가 운영하는 여인숙에 묵게 되는데, 호색한 조르바는 금세 그녀를 유혹해서 연인이 된다. 조르바는 공식적으로 결혼은 한 번 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3천 번 쯤 결혼 한 남자다.
처음에 나는 광부들을 막 대하는 조르바에게 불만을 가진다. 두 사람은 이따금씩 부딪혔지만 점차 이 사람의 진면목을 알게 되면서 마음을 열게된다. 조르바는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몸으로 체득한 경험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조르바로부터 이성과 지식, 가식적인 예절로 포장된 사람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사랑, 무소유, 사람에 대한 따뜻함을 본다. 가령 내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조르바는 아무거나 다 좋아한다고, 특정 음식을 나쁘다고 하는 건 죄악이라고 답하는데 그 이유가 굶주린 사람들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조르바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내가 크레타 섬에 온 이유는 행동하는 양심이었던 친구의 충고 덕분이었다. 친구 스타브리다키스는 박해받는 그리스인 동지들을 돕기 위해 고민 없이 떠났지만 그는 동행하지 않았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나는 광산 사업을 통해 노동자들과 어울리며 행동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책에만 파묻혀서 현실을 잘 모르는 나, 어제를 후회하고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즐기지 못하는 나와 달리 조르바는 순간을 사는 사람이었다. 타오르는 열정을 가진 그는 거침이 없었고 후회도 없었다. 물레를 돌리는데 걸리적거린 다며 왼손 검지를 잘라버리는 사람이 조르바였다. 진지한 성격 탓에 생각만 많은 나에게는 “조르바야 말로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조르바를 동경하되 그와 똑같이 될 수는 없었다. 빗속에서 만난 젊은 과부 소멜리나에게 마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백하지 못한다. 소심하고 걱정 많은 나는 보통의 우리와 닮아있다. 꼭 조르바의 삶만이 자유는 아닐 것이다. 각자가 체감하는 자유의 결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비로소 자유를 찾게 된 것은 모든 것을 잃고 나서였다. 공들인 갈탄 광산의 기공식이 열리던 날 철탑이 무너져 내린다. 사업은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순간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자유에 눈떴고 두 사람은 함께 춤을 춘다. 족쇄와도 같았던 광산으로부터 비로소 해방된 것이다.
특히 이 장면은 영화 <그리스 인 조르바>에서 멋지게 재현되어 있다. 두 사람이 해변에서 춤추는 장면은 ‘자유’란 무엇인지를 몸소 표현해 보인다. 그 춤사위는 마치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춤춰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해라. 듣는 이가 없는 것처럼 노래하라. 이곳이 천국인 것처럼 살아라.”라고 했던 마크 트웨인의 말을 화면으로 옮긴 듯 했다.
책 속의 화자가 모든 것을 잃은 후에야 자유를 깨달았듯 나는 그리스까지 가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찾지 못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자유는, 조르바는 한국에, 바로 내가 사는 곳에 있었다. 진정한 자유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순간을 만끽할 수 있을 때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미 조르바는 말했었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
미래는 맞이할 오늘
오늘을 잘 살아보세
한국에 와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었다. 일상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자유가 아니었다. 휴가지에서 쉬는 것도 자유는 아니었다. 내가 있는 이곳에서 ‘나’됨을 인정하는 것, 내 삶의 궤도 안에서 나의 노래를 자신있게 부를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자유’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란 지금 여기, 카르페디엠(carpe diem)을 갈망만 할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에 있었다. 내 안의 두려움에 맞서 스스로 두른 강박을 통과할 때, 속박이란 구름은 걷히고 ‘자유’라는 해가 뜬다.
https://www.youtube.com/watch?v=S0k5N4IQ50o&t=10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