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고 싶다면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려봤을
필사
필사가 글쓰기게 도움이 된다고는 하는데.. 과연 그대로 베껴쓰는 것만이 능사일까?
나는 사실 필사에 대해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다. 단순한 이유인데 따라 쓰는것이 팔이 아팠고, 악필이기 때문이다. ^^;
그러던 어느날, 지도교수님으로부터 김훈 작가의 작품 필사를 권유 받은 이후, 놀라운 경험을 했다.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문장의 구조들이 눈에 들어왔고, 짧은 문장의 힘을 받았다. 책을 한 권이라도 필사해 제대로 해 본 사람이라면 이 경험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필사는 어떻게 해야 효과를 볼 수 있을까?
본격적인 필사에 앞서 따라하고 싶은, 내가 되고 싶은 워너비 작가를 정해보자. 누구나 좋아하는 작가가 한 두명쯤은 있을 것이다. 필사는 아무래도 국내 작가가 모국어로 쓴 글이기 때문에 글쓰기에 더 도움이 된다. 번역서는 특유의 번역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고.. 작가의 문체를 오롯이 파악하기란 어려워서.. 필사를 목표로 한다면, 국내서적을 추천한다. 작가가 모국어로 쓴, 우리 말을 잘 살린 글이 아무래도 글쓰기에 효과적일 것이다.
그럼 어떤 작가의 작품을 필사하는 것이 좋을까?
자신만의 문체를 이미 이룩하신 분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앞서 언급한 김훈 작가를 들 수 있다. 이분은 아무래도 신문기자 출신이기 때문에 문체가 굉장히 간결하고 단순하면서 깊이가 있다. 특히 문장이 너무 길어서 고민이신 분들은 김훈 작가님의 책들을 필사해 보시는 것도 방법이다.
김훈작가의 글이 단순하고 힘이 있다면 유려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치자면 오정희 작가가 있다. 글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정희 작가의 소설은 거의 수학의 정석과 같은 교본으로 여겨집니다. 이어서 나열해 보자면..
소설가
오정희, 박완서, 은희경, 한강, 편혜영, 천운영, 김애란, 배수아, 황석영, 김훈, 김영하, 김연수, 성석제 등
시인
문태준, 장석남, 박준 등
비문학
도정일, 신형철, 고미숙 평론가,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이다혜 기자, 최재천 교수 등
이런 분들의 글을 일단은 많이 읽어보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모방 즉 필사해보는거다. 많은 작가들이 선배 작가들의 필사로부터 시작했다.
필사를 꼭 책 전부를 다 할 필요는 없다전체를 해도 되고, 내가 하고 싶은 일부만 해도 괜찮다. 어떻게해도 상관없지만 꼭 유념해야 할 것은 글자 쓰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장에 대해서요. 글자를 쓰면서 동시에 소리내어 읽어 보시는 것도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무엇보다 빨리 쓰려고 하다가 틀리게 쓴 경우가 은근히 많다. 특히 은, 는, 이, 가 같은 조사요. 하지만 우리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기 때문에” 조사도 굉장히 중요하다.
한 페이지 정도 썼다면, 원문과 대조해서 비교해보고, 다시 한 번 내가 쓴 것을 또 읽어본다.처음에 필사를 할 때부터 소리내어 읽으면서 발화와 동시에 쓰기를 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공들여 필사를 했을 때
어떤 효과가 있을까?
필사의 효과는 첫째, 내용을 더 오롯이 파악할 수 있다. 그냥 눈으로 읽었을 때는 이해가 안되던 전개가 필사를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필사는 책의 구조를 파악하는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둘째는 표현력, 어휘력, 문법이 향상이다. 특히 잘 사용하지 않던 단어들을 알게되고 써보면서 내것으로 만들 수 있다. 새로운 단어는 꼭 따로 정리해두자. 예를 들어 박완서 선생님 작품에는 우두망찰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우두망찰:
얼떨떨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양을 일컫는 말
이웃으로부터의 따돌림으로 늘 우두망찰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 이래라저래라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나는 그동안 분주함으로위장된 허구의 삶으로 가득찬 서울 생활 속에서 마음의 피로와 우두망찰을 자주 경험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박완서
이렇게 필사를 통해서 몰랐던 단어들을 알게되면, 따로 메모를 해 두었다가 다음 나의 글쓰기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필사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이자 세 번째 효과라고 할 수 있겠다.
필사를 통해서 습득한 새로운 단어와 구조를 응용해서 나만의 독창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다. 내 글쓰기 능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체득한 글의 구조나 표현을 내 글쓰기에 적용시켜 보는 것이다. 구절 혹은 말들을 인용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응용을 통해 내 글쓰기를 좀 더 품격있게 만들 수 있다.
4. 스트레스 해소(주관적 장점^^)
마지막으로 필사의 효과는 글쓰기의 능력 향상와 상관없이 약간의 스트레스 해소의 측면이 존재한다. 뭔가 하나에 집중하는 시간동안은 잡념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번외: 신문 칼럼 필사하기
신문 필사는 언론고시 준비할 때 많이들 연습하는 방법 중 하나다. 기사를 그대로 필사하는 것이다. 장문의 책이 부담스러우시다면 짧은 사설이나 칼럼을 추천드린다.
물론 인터넷으로 기사를 볼 수도 있지만..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한 장 한 장 보는게 훨씬 눈에 잘 들어오고, 일종의 루틴을 만드는데도 탁월하다. 그냥 휘리릭 볼 수도 있고, 차 마시면서 뒤적거려 볼 수도 있다. 어쨌든 이런 읽을 것들이 집에 나뒹굴어야 지나가면서라도 볼 수 있다. 읽기 환경을 조성한다.
신문에는 좋은 글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정치 사회면은 잘 안봤고 주로 문화면과 칼럼, 논설을 많이 읽었다.. 혹은 씨네21같은 읽을거리가 풍성한 잡지도 추천하는 바이다.
신문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기사가 있으면 오려서 클리어 파일에 철을 해보자.
나름대로 분야를 나눠서 인문학, 자연, 과학, 심리, 미술 이런식으로 구비 후 기사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부분은 오린다. 명문장은 형광펜을 칠해서 파일에 철을 한다.
글 잘쓰기로 정평이 난 분들의 칼럼을 쭉 읽어보고, 따라 써보는 거다. 대부분 문장이 짧기 때문에 문장별 혹은 단락별로 끊어서 베껴쓴 다음 내가 맞게 썼는지 대조해서 읽어본다. 이런 글들은 간결하지만 한 장에 기승전결이 다 들어가 있기 때문에 글쓰기 전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더불어 대부분 자기 주장이 들어가 있기 마련이니, 필사를 하면서 내 생각을 함께 정리해서 써보는 것도 괜찮다.사유의 폭이 넓어질 수 있고, 필사의 확장편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걸 따로 정리해두거나 SNS에 올려봐도 좋아요. 내 글에 대한 사람들 반응이 어떤지 추이를 보는 것도 다음 글쓰기에 도움을 줄 것이다.
추가로 만약 글을 읽고 쓸줄 아는 연령대의 아이가 계신다면 아이와 함께 동화책 같은거 배껴쓰기를 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하루에 10분에서 30분 정도로 쓰기 시간을 갖는거죠. 배껴쓰기 만큼 아이의 어휘력 향상과 문장 습득에 도움이 되는 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 한다. 글을 이해하는 능력과 표현하는 능력을 동시에 향상시킬 수 있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절대 쓰기에 몰두해서는 안되고 내용 파악, 문장 음미에 집중하는 것이다. 몇 번 하다보면 분명 필사의 힘을 느끼실 수 있을 거라고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