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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Nov 08. 2020

악화일로의 독일 코로나,마스크 반대 시위라니요

 독일어에 선순환은 없다. 악순환만 있을 뿐. :


der Teufelskreis 악순환



독일어 수업 시간에 '악순환'이란 단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럼 반대어인 “선순환”은 무엇이냐고 선생님에게 물었는데.. 대답이 의외였다.



독일어에는 선순환이 없다.




그 얘기를 듣고 엥? 싶었다. 영어에도 선순환(virtuous circle)/악순환(vicious circle)이 있는데 이렇게 딱 들어맞는 반대 단어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유사하게 표현되는 단어는 있을 것이다. 그때는 갸우뚱-하고 말았지만, 코로나 시대, 독일에는 선순환이라는 것 자체가 없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2020년, 우리는 악순환을 걷고 있다.



11/7(토) 라이프치히 도심에서 열린 마스크 반대 시위



지난 봄 락다운 이후 어느 정도는 독일의 코로나가 잡혀가는 듯 보였으나 여름휴가가 시작되면서 너도나도 피서를 갔고, 파티를 열었고, 음주가무를 즐겼으며, 크고 작게 마스크 반대시위가 곳곳에서 펼쳐졌다. 많은 전문가들이 가을 2차 유행을 예측했다.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것은 분명 이에따라 예방 조치를 다함께 취했어야 한다. 아랑곳하지 않은 안일함은 현재 11월 락다운 라이트라는 정부 조치를 양산했다. 지난 봄과 똑같이 마트에서는 휴지 사재기가 시작됐다. 왜 같은 잘못을 반복해서 저지르고 있는 것일까. 예방수칙은 전혀 지키지않고, 코로나가 무섭지 않다고 하면서 휴지 사재기를 하는 그들의 모순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독일인 중에서도 예방 수칙을 잘 지키며 코로나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지난 3월만큼은 아니지만 또다시 시작된 휴지 사재기. 키친타월만 남아있다;


처음 코로나가 시작됐을 때 중국이 발원지라는 이유로 많은 동양인들이 유럽에서 차별을 받았다. 내가 살고 있는 라이프치히 축구 구단에서는 일본인 출입금지를 내렸고, 호텔 등에서 동양인 숙박을 받지 않는 일도 있었다. 만약 반대로 동양인이 서양인에게 이렇게 행동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현재 동양대비 엄청나게 심각한 사망자와 확진자수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까. 마스크는 중병환자나 테러리스트들이 쓰는 거라며 절대 쓰지 않겠다고 하던 나라들이 속속들이 마스크 쓰기 정책을 내놓았다. 모든 것들이 다 모순적이다.




게다가 오늘 라이프치히에서는 코로나 정책, 마스크 착용 반대 시위가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페기다(독일 극우 성향 단체) 집결 이후 10년만의 대규모 집회로 라이프치히 시에서 불허 조치를 했으나, 주체 측은 법원에 소송을 걸었고, 결국 11월 7일 토요일 그들은 계획대로 시위를 진행했다. 2만여 명이 집결했고, 전문가들은 이번 집회가 슈퍼 전파 이벤트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뉴스를 접하며 처참했다. 운집 인파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동안의 노력마저 물거품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그나마 다른 지역 대비 코로나 확진자수가 적었는데, 다음주부터 엄청나게 증가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뉴스로 접한 이 대규모 인파는 공포 자체였다.

독일의 극우 세력들은 마스크 착용에만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빌미로 난민정책을 비롯한 현 정부를 비판한다. 외국인, 성소수자 등은 시내에 나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란 지침도 내려졌다.


비단 극우세력 뿐만 아니라 마스크 자체에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한다. 지금도 시내에 마스크를 쓰고 나가면 나를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마스크에 반대하는

그들이 말하는 자유란, 민주주의란, 인권이란 무엇일까. 서구사회는 아주 오랜 투쟁의 역사를 거쳐 민주주의를 이룩했고 발전을 거듭해왔다. 이에 대한 서양인의 콧대 높은 자심감은 익히 알고 있다. 독일에 오기 전 나역시 막연히 자유 정신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눈부신 과거를 뒤로 하고 현재 코로나 시대에 그들이 외치는 자유 민주주의의 얼굴은  이기적인 개인주의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당장 불편하니까 마스크 쓰는 것이 싫고, 파티, 지인과의 교류와 같은 기존에 누리던 것들이 사라지는 게 아쉬운 거다. 이기주의, 개인주의를 자유와 인권으로 포장한 그들이야말로 힘겹게 이룩한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이다.  


개개인의 프라이버시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급증하는 코로나로 인해 밤샘 노고를 마다하지 않는 의료진들의 인권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병상이 부족해 병원조차 못가는 환자들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묻고싶다.  누군들 자유롭게 다니고 싶지 않을까. 이 심각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다들 참고 있고 지키고 있는 것이다.


안티 코로나 시위를 접하면서 이 악순환의 기약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터널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이유는 분명 끝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끝을 알 수 없는 터널 속이다. 음습하고 캄캄하다. 악화일로다. 독일어에 선순환이 없다는 것이 이토록 유감일 줄은 몰랐다.




물론 남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나는 여기서 한낱 외국인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 맞으며,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떠든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다. <지하로부터의 수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독백처럼 공허한 목소리임을 안다. 다만 지하에 살던 그가 말할 수 밖에 없었듯.. 현재 독일에 있을 수 밖에 없고, 극우 세력의 미친 시위앞에 말이라도 해야 좀 살 것 같아서 써본다.  락다운이 해제되면 사람들은 또 만날테고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기며 겨울 휴가를 떠날 것이다. 그러면 또다시 3월에 3차 유행이 오지 말란 법은 없다. 각자 도생.. 나 스스로 나를 지킬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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