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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Jan 02. 2021

코로나블루는 장바구니를 채워도 사라지지 않았다

불안함이 낳은 접속사 낭비

                                                                                                                                                                            

2020년의 나는 소비하는 인간이었다. 지난 3년을 돌이켜봤을 때 쇼핑을 가장 많이 한 해였다. 코로나 때문에 일주일에 채 한 번도 나가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블랙프라이데이, 핫딜과 같은 각종 유혹에 휘말려 신발이며 옷, 가방 등을 어지간히 사 모았다.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삐-초인종이 울리고 택배기사가 오면 쪼르르 달려 나갔다. 주문한 상자를 풀어서 상품이 내 몸에 맞는지 입어보고 신어보고 이리저리 매치해 본다. 이 의식이 끝나면 곧장 옷장으로 직행. 각종 의류들은 주인과 시대를 잘못 만난 탓에 바깥 공기 한 번 못 쐬어보고 꽁꽁 틀어박혀 있는 신세가 된다.

나갈 일이 있으면 어느 정도 소비에도 합리화가 되겠지만 집에만 있는 상황에서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쟁이는 내가 점점 한심해보였다. 스스로 쇼핑 중독을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이 부질없는 행위는 중단됐다.

만날 사람도 외출할 일도 없는데 대체 난 왜?
꾸역꾸역 옷들을 사 모았을까?


보잘것 없는 내 영혼은 불안했다.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더욱이 독일은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엄청난 감염자 수치를 경신해나갔다. 외국에서 외국인 신분으로 살아가는 나는 행여나 예기치 못한 감염이 다가올까봐 두려웠다. 창살없는 감옥과도 같은 집콕 생활이 일년 내내 이어졌고, 인터넷 속 반짝이고 예쁜 것들을 탐닉하는 시간만큼은 잠시나마 이 상황을 잊게 해 주었다.

불안으로부터 도망치려다 풍요 중독자가 된 한국을 말하는 책 ≪풍요중독사회≫(김태형 지음)의 표현은 적확했다. 우리는 초조할 때 다른 무언가로 그 상황을 덮으려고 한다. 외로운 사람들은 더욱더 화려한 옷들과 화장으로 자신을 포장한다. 심적인 불안을 양적인 풍요로 메우려 하지만 거품일 뿐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대체적으로 문장 자체가 가진 힘이 허약한 글에서 수식어, 접속사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주어와 서술어가 홀로 온전히 일어설 수 없기 때문에(혹은 글쓴이가 그렇게 느껴서) 각종 수사 어구를 통해 연결되지 않는 문장들을 이어나가려 애쓴다.


성인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수강생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접속사를 빼보세요” 였다.

'그리고', ‘그러나’, ‘하지만’은 3대 국민 접속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단골손님이다. 반면 초등학생들의 글을 받아보면 신기하게도 거의 접속사가 없다. 주장하는 글을 제외한 생활문에서는 접속사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아이들의 글에는 기교가 없다. 내 글이 ‘어떻게 보일까’를 고민하기에 앞서 ‘생각을 자유롭게’ 쓰는데 목적이 있다. 그런 탓에 오히려 글에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성인 초보자의 글에는 불안이 묻어있다. 글쓰기 저체보다는 내 글이 어떻게 보일까? 문맥에 맞을까? 좀 더 매끄럽게 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보면 오히려 더 초조함을 부추기게되고 접속사 과잉이라는 참사를 낳는다. 안 맞는 것 같으니 이것저것 계속해서 여러가지를 넣어보게 되는데, 빈번한 접속사는 정작 문장의 중심이 되어야 할 동사나 목적어를 방해한다.


접속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대표적인 책은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이다. 접속사 찾기를 주제로 책을 읽어도 될 정도다. 기자 출신이라는 배경도 작용을 했겠지만 작가의 문장은 간결하고 힘이 있다. 그 자체로 주체적이다. 그렇다보니 많은 글쓰기 강의에서 필사로 추천하는 책이기도 하다. 꼭 필요하지 않다면 접속사를 빼 보자. 가령 “나는 학교에 간다. 그리고 동생은 유치원에 간다.”에서 ‘그리고’를 빼도 되고, 아예 문장을 합치는 것도 가능하다. “나는 학교에, 동생은 유치원에 간다.” 읽는데 속도감이 생기고 문장이 거의1/3 정도로 줄어든다. 습관적으로 쓰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다보면 대부분의 문장들이 접속사 없이도 의미가 상통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에서 접속사는 지양해야 할 과소비 혹은 낭비다.  


쇼핑카트 즉 글에 넣어야 할 것은 나,  나의 생각이다.


불안함은 장바구니를 채운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는다. 문장역시 접속사를 붙인다고 해서 매끄러워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불안 증세를 없애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라고 조언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접속사에 의지하지 말고 독립심을 길러주어야한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날것의 내 글을 ‘경제적으로’ 써보자. 돈도, 접속사도 꼭 필요하지 않다면 안 쓰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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