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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Aug 07. 2019

"일요일은 다 같이 쉽니다" 모든 이에게 공평한휴일

                                                                                                                                                     

토요일 오후였다. 오랜만에 주말 다운 주말을 맞이했다. 집을 구했고 비자 발급을 위한 서류 정리가 웬만큼 다 완료되었을 때의 시점이었다.

동네 산책이나 할까 하고 어슬렁 어슬렁 주변을 거닐다가 작은 서점에 발이 이끌렸다.

이런저런 책들을 훑어보다 서가 한편에서 발견한 책,


<휘게>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이 책을 통한 북유럽 라이프스타일 ‘휘게’가 한참 유행할 때였다.

‘웰빙’을 뜻하는 노르웨이어에서 비롯된 ‘휘게’는 ‘아늑한’이라는 의미도 포함한다.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닌 정적인 안정감, 안락한 분위기, 함께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들과의 친밀감이 휘게의 의미다.


독일에 와서, 이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면서 나는 막연히 책에서 설명한 활자로의 ‘휘게 라이프’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휘게의 첫 단추는 휴식에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아니 당황스러웠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일요일에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는 다고요?


처음 라이프치히에 왔을 때 일요일 시내에서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영화 세트장 같은 분위기였달까. 일부 문을 연 몇몇의 레스토랑과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만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연중 365일 문을 여는 서울과 완벽하게 달랐던 그 공기는 이상하리만치 어색했다. 아마 잿빛 구름에 하늘이 뒤덮여 있어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던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일요일에 문을 닫는 이유는?



모두가 공평하게 쉬어야 한다는 것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이 사람들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일요일에 문을 여는 유일한 곳은 중앙역 내에 위치한 드러그 스토어 및 마트다. 연말 크리스마스 주간에는 모든 마트들이 3일 이상 문을 닫기 때문에 하루 전날 많은 사람들이 거의 물건을 사재기하는 식으로 대량의 식료품들을 사 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독일도 조금씩 바뀌고 있긴 해서 일요일에 문을 여는 카페나 레스토랑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그만큼 독일 사람들은 ‘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루 일과 중에도 여가 시간은 꼭 있다. 그들은 보통 오후 4시에서 5시면 퇴근을 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보통 주부들은 오후 3시에 케이크 타임을 가진다. 주말 공원에는 가족, 연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담소를 나누거나, 뜨개질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기타를 치는 등 나름의 풍요로운 시간을 보낸다. 핸드폰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이티 강국(?)에서 온 나로서는 놀랍다면 놀라운 풍경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직업적인 특성도 있었겠지만 보통 새벽 2시는 넘어야 잠을 잤다. 평균 귀가 시간이 저녁 10시였던 나는 밤 9시만 넘으면 온 세상이 조용해지는 이 도시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친구들이 그리웠고 퇴근 후 마시는 치맥이 간절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나도 이 사이클에 익숙해져서 저녁 10시나 11시가 되면 잠이 든다. 해가 뜰 때 자던 것이 더 익숙했는데 언젠가부터 해와 달과 같은 궤도를 걷게 된 것이다.


자연에 순응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의 인내심을 시험했던 느려터진 인터넷 속도가 이제는 나쁘지 않게 느껴지고,아무것도 안하는 것은 방종이라 생각했던 내가 가만히 보내는 시간은 낭비가 아닌 재충전의 시간이란 것을 납득하게 됐다.


거창한 물질이 아닌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보이는 것이 아닌 내면에 가치를 두는 지혜, 마음의 풍요에 집중하는 그들의 가치관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 늘리기, 동네 산책하기, 갓 구운 빵과 향긋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아침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 시작하자 휘겔리한 라이프스타일이 활자 속에서 내 생활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결과를 중요시하는 경쟁 사회 속에서 언젠가부터 나는 지쳐 있었다. 언제부터 지쳤는지도 사실 잘 모른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며 누군가가 인정해주는 행복이 아닌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행복에 눈 뜨게 된 것은 엄청난 변화였다. 그것은 조금씩 독일이라는 나라에 내 몸이 적응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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