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여행 기념품도 바꿔놓는다

캐리어에 '그릇'이 담기기 시작했다.

by 여행생활자KAI

결혼을 하고 극명하게 달라진 취향이 하나 있다. 옷보다 그릇이 더 좋아졌다는 것이다. 혼자일 때는 그릇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 음식을 잘 해먹지도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그릇을 수집하셨던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언젠가부터 옷보다 그릇 사는 게 더 재밌어진 나를 발견했다. 나 스스로도 이해를 못하겠지만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건 싫어도 그릇은 좋다. 예쁜 옷처럼 아름다운 그릇에 마음이 갔고, 그릇장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그릇을 보노라면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세상사 온갖 번뇌들이 접시의 우아한 곡선 저 아래.. 깊은 언저리로 흥건히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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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마그네틱 일색 이었던 여행 기념품 리스트에도 ‘그릇’이 추가 되었다. 그래서 그릇 천국이라 불리는 북유럽에 대한 나의 기대감은 컸다. 대부분의 북유럽 그릇은 심플하다. ‘북’ 이라는 단어에서 연상할 수 있듯..추운 기후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북유럽은 1년을 통틀어 봤을 때 맑은 날보다 흐리고 우울한 날씨가 지배적이다. 그래서 그들은 밖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집안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 것이고, 오래 보면 질리는 화려함 대신 실용성과 간결함을 주방의 테마로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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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리지 않는 디자인의 배경에는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 사람 중심의 철학도 빼놓을 수 없다. 북유럽 그릇의 역사들을 보면 대게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시리즈들이 많다. 이딸라의 디자이너 미카엘 실킨은 “핀란드의 독창적인 색은 자연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섬세하고 우아한 색깔이어야 한다.”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많은 그릇에는 디자이너의 철학이 담겨있다. 때문에 이야기가 있는 그릇에 또 다른 나만의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것은 일상적이지만 가치있는 일이다. 여행지에서 산 것, 선물로 받은 것, 벼룩시장에서 흥정을 거듭해 구입한 것, 벼르고 벼르다 돈을 모으고 모아 어렵게 내 손안에 들어온 귀한 것들까지.. 찬장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그릇들은 저마다의 역사를 품고 있다. 특히 여행지에서 산 그릇들은 훨씬 더 이야기에 감칠맛이 돈다. 사용할 때 마다 여행의 시간을 떠올려 주는 촉매제가 되어 준다.

그렇게 식탁 위에선 맛있는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간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아라비아 100주년 기념 시리즈 컵을 샀다. 흰색 바탕에 파란 새가 그려져 있다. 이따금씩 이 컵에 커피를 따라 마시며 핀란드의 하얀 눈과 파란 하늘을 떠올린다.

그 세상 위를 새처럼 자유롭게 누비는 상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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