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목적지인 스위스 베기(Weggis)는 2001년 배낭여행시 루체른에서 호수유람선을 타고 지나다 본 작은 도시다.
지금도 블로그 헤드라인 사진으로 사용할 정도로 그때 멀리 보여진 모습이 너무 예뻐 꼭 한번은 묵고 싶었던 곳이었다.
퓌센에서 베기까지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장거리 이동구간. 네비를 찍으니 384km가 나온다.
당초 일정을 잡을 때 퓌센 출발일과 베기 예정 도착일 사이 하루는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다.
운전의 피로도가 혹시 어떨지 몰라 여차하면 중간 경유지점인 리히텐슈타인에서 1박할 생각도 했기 때문에
퓌센과 베기 사이에 예비일을 하루 넣었다.
그렇더라도, 정 피곤하면 모르겠지만, 일단 가는 데까지 가보자.
유럽의 작은 국가 중 하나인 리히텐슈타인도 궁금하긴 하지만, 물가도 비싸다고 하고 시내 모습이야 다 비슷할테니.
힘차게 가속페달을 밟아 나가는 도중 이따금씩 눈에 띄는 안내표지판이 보인다.
어차피 독해가 안되는 것이라 처음엔 뭔지 의식하지 않았는데, 몇번 눈에 익으니 갑자기 찜찜한 느낌이 든다.
언뜻 보니 표지판을 채우고 있는 건 세 개.
RADAR란 단어와, 와이파이 표시를 뒤집어놓은 아이콘, 그리고 숫자 80. (120도 있었던가...)
직감까지 동원하지 않더라도 속도 단속카메라 예고 표시판이고, 숫자는 제한속도 같은데 제한속도의 의미를 모르겠다.
언젠가 세계 각 국의 고속도로 제한속도를 다룬 기사에서, 미국과 독일의 경우,
과속차량보다 일정기준 이하의 저속차량에게 벌금을 더 크게 부과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고속도로에서는 차량의 원활한 흐름을 저해하는 저속차량이 과속차량보다 오히려 사고유발률이 더 높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80이란 숫자는 과속제한인지, 저속제한인지..
속도를 더 내야하는 건지, 줄여야하는 건지 판단이 안 선다.
일단 다른 차들의 주행속도가 갑자기 떨어지는 거 같진 않은데, 의미를 모르니 굉장히 찜찜하다.
아.. 몰라~ 어떤 형태가 됐든 나중에 뭔가 날라오면 여행경비의 일부라고 생각하자는 게 평소 여행관이지만,
2년 전 북유럽여행 때 여행의 감흥이 끝나가는 석달 뒤 196달러 주차 범칙금이 날아오니 무척 속쓰리긴 했다.
연료 주입을 위해 들른 고속도로 휴게소의 주유기.
2년 전 노르웨이에서 차량용 디젤과 경운기용 디젤을 구분 못해
경운기용 디젤을 주유하다 당혹스러웠던 트라우마(?)가 있어 주유기를 보는 순간 은근 예민해진다.
휘발유 차량이니 디젤은 아니고,
2년 전 디젤차량 렌트시에는 디젤 주유기가 둘이었는데, 이번엔 휘발유 주유기가 셋.
일단, 고급의 의미일 super plus는 제외하고, super E10은 뭐지?
E는 economy의 의미? 배열 순서로 봐선 E10이 단가가 제일 낮은 거 같긴 한데,
왜 싼 지를 모르니 결국 안전빵으로 super를 선택.
숙소에 들어와 인터넷 검색을 하니, super E10은 환경 재생을 위해 에탄올 10%가 함유된 휘발유란다.
Super보다 저렴한 듯해 다음 주유시 비교해보니 1리터당 대략 3센트 정도 싸다.
1유로 1300원으로 잡으면 얼추 40원.
주유소마다 차이가 있지만 가장 저렴한 휘발유인 super E10 기준 1리터당 134센트 정도니 원화로는 1740원 정도.
한국의 유가가 비싸다고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독일은 더 비싸다.
주유기를 아무리 훑어봐도 지폐나 카드 투입구가 없다. 어쩌라는 거냐..
밑에 그림을 보니, 주유후 계산을 하는 거 같아 일단 넣고 바로 앞 편의점 계산대로 가니 6번 주유기 주유비가 이미 나와있다.
그냥 내빼면 어찌 되나..? 뭔가 방법이 있으니 이렇게 하겠지.
그리고 우리와 다른 또 하나.
우리나라 주유기는 주유할 금액이나 주유량을 먼저 설정하면 설정치만큼 주유후 자동으로 멈추는데,
여긴 설정하는 게 없다. 수동으로 중간에 멈춰야 한다.
그럼, 가득 채우려면 어찌 해야 하나..
그건 우리나라 주유기와 마찬가지로 가득 채워지면 알아서 멈춘다.
앞으로 갈 길이 한참 남았으니 화장실도 들려야겠지.
흠..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 이용료가 70센트라.. 대략 900원 정도.
대한민국 고속도로 휴게소만한 데가 없구나..
참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시 생각하니 그게 아니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통행료는 구간별 징수도 하고 너무 비싼데, 독일의 고속도로는 통행료가 없는 무료 아니던가..
비싼 통행료 내고 화장실 무료라고 고마워 할 게 아니라, 통행료 안 내고 화장실 유료가 훨씬 낫지.
유료인만큼 화장실 관리도 아주 잘 되어 있다. 뭐.. 화장실 관리야 한국도 최상급이지만.
또 하나 재밌는 거.
화장실 이용료를 현금이나 카드로 결제하면 티켓이 나온다. 이것도 의아했다.
화장실 이용료를 냈으면 됐지 뭘 또 영수증까지 주나 싶었는데,
이게 휴게소 매장 50센트 할인 바우처다.
휴게소에서 무엇이든 구매하면 화장실 이용료는 20센트인 셈. 한 품목에 대해 두 장까지, 그러니까 1유로까지 할인이 된다.
그러니, 고속도로 휴게소 이용시는 반드시 화장실을 먼저 이용해야지, 먹을 거 먼저 다 먹고 화장실을 가면 할인 바우처 쓸 일이 없다.
우리는 바우처를 여기에 활용.
저 중에 두 세 개를 담으면 8~9유로. 화장실 바우처 두 장으로 1유로 할인받는 재미가 쏠쏠하다.
휴게소 밖 고객 쉼터.
Red와 Green의 배색이 멋지다.
거기에 White 상의까지. PERFECT~
주유도 했겠다, 점심까지 해결했으니 이제 베기까지 냅다 달리는 일만 남았다.
의외로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아 리히텐슈타인을 거침없이 통과하여 스위스까지 고고씽~
목적지를 50km 정도 남기니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때 맞춰 만난 취리히 호수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강처럼 보이는 저게 호수라니..
하긴.. 스위스는 내륙국가니 바다로 연결되는 강이 있을 수 없다.
스위스에서 보이는 모든 물은 무조건 호수다.
우리가 찾아가는 베기(Weggis)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줄까.
기대감 가득 품고 오픈도 못하는 오픈카 카브리올레를 독촉한다.
"가자~ 베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