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에 걸쳐 제법 많은 유럽의 성당을 보았다. 먼저 언급한 대로 그 많은 성당들이 각기의 개성으로 방문객을 놀라게 한다. 하지만, 보는 순간은 그 규모와 화려함에 놀라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구체적 기억도 없고 사진을 보더라도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 된다. 그 중 내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는 성당은 2016년 방문했던 독일의 뤼벡 대성당과 이번 여정에 들렸던 파티마 대성당. 두 성당의 공통점이 있다. 내부가 외형 규모에 비해 화려하지 않고 담백하다는 것. 그런데, 그 두 성당을 제치고 내 마음에 남을 곳을 기어이 만나게 된다.
기마랑이스 시내로 들어가기 전 5.5km 지점에 위치한 페냐 성소(Sanctuary of Penha) 입구.
(포르투갈에서 Penha라는 명칭을 자주 접하는데 정확한 발음이 계속 헷갈린다. 펜하로 소개되기도 하고, 페냐로 소개되기도 하는데, 나는 페냐로 표기한다. 정답이 뭔지는 모른다.)
주차 후 가을 정취를 느끼며 다가간 페냐 성소는 작고 단순했지만, 그 단순함으로 인해 더 경이로웠다.
정갈하게 조성된 공간에 단아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은 성소를 보자 갑자기 뭉클한 무엇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입이 절로 벌어지는 화려함과는 차원이 다른, 온 몸이 마비되는 듯한 경건함이랄까. 성소 앞 간결하면서 작은 분수도 십자의 형상이다.
1947년에 건축된 페냐 성소는 대부분의 유럽 성당에 비해 각진 외관이 지극히 단조롭다. 성소의 건축가 안토니오 마르케스 다 실바는 자신이 건축한 성소의 완전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성소 준공 3개월 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우측 후면의 종탑은 1949년에 설치되었는데, 이 종탑의 종은 카리용(Carillon)이라는 연주가 가능한 종이다. 성소 경내에 은은한 카리용 연주가 계속 흘러 나오는데, 이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뭐라 표현하기 힘들지만 마음이 저절로 내려 놓아지는 듯한 힐링의 느낌의 들어 이 연주 때문에라도 이곳을 떠나는 게 아쉬웠다.
성소 내부가 궁금했다.
내부 역시 새로웠다. 여지껏 접했던 성당들과 달리 담백한 단색에 치장이 없는 간결한 모습에서 오히려 고결함이 느껴진다.
종교는 종교일 뿐, "힘들 때 너희는 그저 말없이 내게 기대면 된다." 는 묵직한 구원을 전해 받는 듯하다.
그런데.. 계단에 보이는 문구를 번역기에 돌려보니"일어나서 희망을 심다" 다. 와~ 늬앙스가 비슷하지 않나..
어려운 기도도 없이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듯 마냥 편안함을 느낀다. 이곳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성소 뒤에서 본 기마랑이스 전경. 시내에서 올라오는 푸니쿨라(케이블카)가 보인다.
밖이든 안이든 마냥 한없이 바라보고 앉아있기만 해도 축복이 와닿는 곳이 페냐 성소다.
페냐 성소는 단순히 성소를 보는 것 만으로 끝나는 곳이 아니다. 페냐 성소 주변은 마치 순례길 같다. 길이 나있는 모든 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성소 정상으로 이어지는 왼쪽 계단으로 따라가 보자.
뭔가 공통점이랄까, 특징이 보이지 않는가. 사진에서 보듯 신기하게도 곳곳에 암석과 바위가 서로 지탱하듯 마주한 틈으로 허리를 굽혀야 지나 갈 수 있는 곳이 많다.'스스로를 낮추며 서로 지탱하며 살아가라'는 의미로 받아 들인다. 순례자의 길 아닌가.
이제 정상에 다다른 듯하다.
이곳에서 바라본 페냐 성소.
문득 독일 슈방가우의 노이슈반스타인 城이 떠오른다.
페냐 성소 주변을 돌아 보면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곳곳에 숨어있는 요소들이 많다.
아.. 오른쪽의 저 노랑과 빨강색 표시.. 페냐 가르시아 城에서 보고 궁금해 했던 기억이..
왼쪽의 작은 공간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이곳의 조형물은 자세나 표정이 마치 만화영화에서 튀어 나온 듯하다.
요렇게 좁은 바위 틈에도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내려가 보자.
계단으로 내려오니 왼쪽에 동굴 같은 게 있다. 그 입구 왼쪽 작은 석굴에 계신 분...
이곳을 찾는 이들의 고민을 다 들어줘야 하니 꽤나 피곤하신 듯하다. 이 분이 졸면서 지키는 안쪽에는 석굴이 있다.
저 안은 뭐지..
완전 암벽 동굴 속의 작은 예배당이다. 밖의 암석에는 이끼도 많은데, 내부 습도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동굴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퀘퀘한 냄새나 축축한 습기 등이 전혀 없다. 테이블을 손으로 만져봐도 눅눅하지 않다.
페냐 성소 주변 곳곳에 십자가와 성모 마리아 상이 있다.
끝났다고 자만하지 말고 계속 겸손하게 숙이고 살아라~
진짜 어쩜 이리 암석이 맞대고 있는 곳이 많을까.. 새삼 신기하다.
페냐 성소는 다람쥐들에게도 은총을 내린다. 사방이 온통 도토리 천지다.
성소 입구 아래에는 꼬마 순회열차도 있다. 과천 서울대공원 코끼리열차가 생각난다.
연인들 사랑의 열쇠는 국내에서도 자주 보지만, 이런 성소에서의 언약은 뭔가 무게감이 다를 듯하다. 이곳에서 변치 않을 사랑의 언약을 한 수많은 커플들은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