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이 2차 세계대전 당시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실화. 당시 실존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시작할게요.
2차 대전하면 <쉰들러 리스트>라든지 <라이언 일병 구하기>, <진주만> 정말 무궁무진한 영화들이 있는데 전부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잖아요. 2차 대전 자체가 실화니까 말입니다.
그렇죠. 하지만 전쟁 상황 중에, 전투 현장과는 떨어진 깊숙한 곳에서 비밀스러운 임무를 맡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시 에니그마가 무엇인지 아세요?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스틸컷
에니그마. 최근 뉴스 기사에 흥미로운 내용이 떠서 제가 정확히 알고 있어요. 에니그마는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 시스템이죠. 교신할 때 암호화해서 자기들끼리만 해독했기 때문에, 연합군이 이 암호를 풀려고 굉장히 애를 썼다고 합니다. 이번 달이죠? 12월 5일, 8일 등등 연달아 게재된 기사에 따르면, 발트해 깊은 곳에서 당시 독일군이 사용하던 에니그마를 75년 만에 발견했다고 되어있거든요.
그런 기사가 있었군요. 전쟁 당시에 이 독일군 암호 시스템은 그야말로 완벽했다고 해요. 그래서 연합군이 많은 시도를 했으나 도저히 뚫을 수가 없었고, 그로 인해 연합군 측에서는 계속해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죠. 전쟁에서 독일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암호를 해독하는 것 외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국가는 에니그마를 해독할 각 분야의 천재들을 소집하게 됩니다.
전쟁 중에 군사를 모으는 게 아닌, 천재들을 모은다는 이야기가 새롭기도 하고, 천재들이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 해결하는 방식이 어떨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 천재들 속에 바로 실화의 주인공 '앨런 튜링'이 속해 있어요. 앨런 튜링은 <셜록 홈즈> 또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주연이었던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맡았습니다. 천재 중에서도 외골수에다 전혀 사교성 없는 캐릭터죠.
외골수에다 사교성이 없으면 좀 어떻습니까. 천재라면 그래도 돼, 하는 넉넉한 이해를 바라도 되지 않을까요?
그건 평범한 사람들 틈에서 천재로 있을 때의 이야기죠. 지금은 천재들 틈에 있는 천재다 보니 다른 천재들과 오히려 비교를 당하는 상황입니다. 앨런 튜링은 다른 천재들에 비해 사회성이 없다고 할까요. 주변을 돌아볼 줄도 몰랐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만 무한 집중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요즘 시대에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바로 농담이 안 통하는 사람이었죠. 어떤 말에든 어김없이 정색하며 대답하는 사람 아시죠?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스틸컷
맙소사. 그것 만큼은 저도 어떻게 편을 들어줄 수가 없네요. 아무리 웃긴 말을 해도 정색하며 받는다면, 주변 사람들이 서서히 말을 걸지 않게 되죠. 팀원들이 앨런 튜링을 멀리 했겠어요.
앨런을 제외한 천재들이 마음을 합치며 더욱 앨런을 싫어하게 돼요. 그런데 앨런은 한 수 더 떠서 그들을 무시하기에 이릅니다. 다른 이들의 작업을 의미 없게 여기며, 본인의 작업만이 진리라고 주장하죠. 팀원들은 그런 앨런을 퇴출시키기 위해 작전을 짜게 됩니다.
시간도 얼마 없고 국가에서 긴급하게 투입한 인력인 만큼, 그 긴밀한 작업을 서둘러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화합 아닌가요. 지금 적군 교신을 해독해야 하는 판에 오히려 내부에 또 하나의 문제가 생겨버렸네요.
그런데도 이 와중에 앨런은 에니그마를 풀기는커녕 자꾸 무언가를 뚝딱 만들고 있어요. 앨런을 빈정대던 팀원들은 차츰 앨런을 딱하게 여기기까지 합니다. 그러다가 땀까지 흘려가며 너무도 열중해서 무언가를 만드는 앨런을 보며, 이젠 도리어 한 두 명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죠. 대체 뭘 하길래 저토록 열심인가, 하는 호기심이 그들을 조금씩 자극합니다. 결과물은 빨리 나오지 않았으나 확신에 꽉 찬 앨런의 모습을 보며 급기야 협조해주는 팀원까지 생기죠.
보통 집단에서는 개인이 다수에 흡수되는 경우가 있어도, 다수가 개인에게 흡수되는 경우는 드물지 않나요. 팀원들이 앨런에게 서서히 물드는 것 같지만 사실그동안 외로웠을 앨런은 조금 감동을 받았겠어요.
그렇죠. 자신을 비난하고 자신의 말에 날을 세웠던 팀원들이 서서히 협조하더니, 앨런이 여태 무엇을 만들고 있었는지 비로소 이해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천재 팀원들이 마음을 합해 더욱 앨런을 지지하는데요, 의기투합하여 모든 게 잘 풀려나간다고 여기던 무렵, 상부에서 강한 압박이 오죠. 정해준 시간이 지났음에도 에니그마를 풀긴커녕 알 수 없는 기계만 만드는 이들을 모두 탓하며, 처음으로 기계 만들기를 주도했던 앨런을 책임자로 지목해 해고하려 합니다. 예전에는 앨런을 내보내기 위해 힘을 모았던 팀원들이 이번엔 앨런이 해고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똘똘 뭉치게 되죠. 팀원들의 도움으로 해고를 면하게 된 앨런은 처음으로 우정이 뭔지 느끼게 되고, 항상 무표정했던 그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번집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미소가 떠오르네요. 서서히 앨런 표정이 펴지는 걸 보니 에니그마도 곧 풀리겠는데요?
네. 뚝딱뚝딱 만들던 앨런의 기계가 이윽고 모습을 드러내죠. 엄청나게 크고 딱딱한 기계예요. 전원 스위치를 켜고 암호를 입력할 수 있게 만들어진 전자 기계인데요, 아슬아슬하게도 만드는데 다소 시간은 소요되었으나, 이 기계로 단박에 독일군 암호를 풀게 됩니다. 팀원들은 기쁨의 함성을 지르죠. 영화는 2차 대전에서 연합군을 승리로 이끌게 된 앨런의 이 기계가 바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라는 사실을 알려주죠.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스틸컷
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가 당시 앨런 튜링의 뚝딱거림에서 시작된 거군요! 역시 천재 스케일은 그 범위가 다르네요. 1회성 암호 해독에만 그치지 않고, 결국 인류에게 컴퓨터라는 시스템을 안겨주었네요.
이미테이션 게임은, 모방 게임, 혹은 튜링 테스트로도 불려요. 튜링 테스트는 컴퓨터도 사람처럼 사고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실험했던 앨런 튜링이, 1950년 <기계도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논문과 함께 제안하게 된 '인공지능 판별법'을 말해요. 비록 성격은 비뚤어진 앨런이었지만, 자신이 가진 천재로서의 능력을 선하고 옳은 목적으로 사용했을 때, 인류에게 커다란 이로움을 끼친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는 영화였어요.
영화 속에 멋진 명언이 등장하죠.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해낸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스틸컷
앨런이 아무리 천재였다 할지라도 한 가지는 몰랐을 겁니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가 이렇게 영화로까지 나오고, 사람들에게 회자될 줄은 그때 앨런이 알 수 없었겠죠?
2차 대전 당시 실존했던 20세기 수학자, 암호 해독가인 천재 앨런 튜링의 실화였습니다.
숨겨진 보물 같은 영화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해낸다, 라는 명언으로 찾아온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