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실천을 해 나간다는 것이 참 쉬운 일이 아닌데요, 이 작품 속에서 무엇이든지 계획대로 실천을 하는 남성이 있어서 만나볼게요.
계획을 세우는 것도 대단한데 계획대로 실천한다니. 스스로의 일에 완성도를 중요시하는? 꽤 자기 기준이 높은 분 같네요.
그럴까요.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한 번 봐주시겠어요? 주인공에겐 네 가지 철칙이 있어요. 첫째 언제든지 알람을 맞춰둔다. 둘째 줄이 비뚤어지는 것은 못 참는다. 셋째 더러운 것은 맨손으로 못 만진다. 넷째 계획에 없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이건 좀. 듣고 보니 살짝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네요. 철칙이라기보다는 강박증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실은 강박증에 대해 다룬 작품이에요. 2014년 1월에 개봉했었고, 강박증 환자 정석 역할을 정재영 씨가 맛깔나게 소화하셨어요.
그러고 보니 2010년대 초반 콘텐츠부터 서서히 마음이나 정신 관련 주제가 담기기 시작하더니, ‘힐링’이라는 단어를 여기저기서 사용했어요. 이젠 뭐 일상 용어가 되어 버렸는데, 그만큼 힐링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고, 그럴수록 이런 작품들은 필요하다는 말이겠죠.
위로나 치유가 필요하신 분이 느는 것은 안타깝지만, 이런 치유의 작품이 늘어나는 것을 안도로 삼아봅니다. 이 영화에서는 강박증에 굉장히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어요. 강박증에 결벽증까지 있는 환자 정석이는 맞춰둔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 정확한 시간 내에 씻는 것을 완료합니다. 몇 시 몇 분 몇 초까지를 다 지키며 속옷을 입고 겉옷을 입죠. 요일마다 무엇을 입을지 미리 계획이 되어있고, 그때그때 알람이 울리면 시간에 맞춰 침대보를 새로 깔고 각을 잡으며 다림질도 해둡니다. 이 모든 것이 분 단위 초 단위로 알람으로 설정되어 있죠. 준비가 끝나도 출근 알람 소리가 나야 잘 닦여진 광나는 구두를 신습니다. 그리고 정확한 초를 맞춰 현관을 나서죠.
지금 이야기만으로도 가슴이 갑갑해지는데요. 그렇게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게 가능한가요? 인생이 언제나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닌데, 만일 돌발 상황이 생기거나 하면 어떻게 대처를 하죠?
정석이는 스스로 몹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요. 도서관 사서 일을 하고 있는데, 책에 바코드 붙일 때도 각을 딱 맞춰 잘 붙이고, 책도 완벽하게 줄 세워 꽂기 때문에 스스로 너무 만족하며 일하는 중이에요. 하지만 갑작스러운 문제가 생기면,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이야! 하며 심하게 당황합니다.
돌발 상황에 그렇게 취약하다면, 돌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매사에 경계하며, 항상 초긴장상태로 지낼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 음식을 먹다 흘려도 정석이가 못 견딜 것 같은데요.
물론입니다. 누가 휴지라도 하나 흘리면 곧장 청소기를 들고 와요. 회의 도중에 동료의 넥타이가 비뚤어진 것을 보면, 그 넥타이가 신경 쓰여 계속 쳐다보느라 회의에 집중을 못하죠. 그런 정석이가 좋아하는 여성이 있는데요, 그 여성 지원이는 회사 앞에 있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입니다. 정석이는 점심시간, 즉 매일 정오에 편의점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정확히 12시 15분 알람이 손목에서 울리면 편의점에 들어가요. 지원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과 닮았다고 여기기 때문인데요, 편의점 삼각김밥이 가지런히 줄 서있고, 지원이의 머리카락이 잘 정돈되었으며, 지원이의 손톱이 긴 것을 한 번도 본 적 없기 때문이에요.
아니, 이성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런 정돈된 점 때문이라니 너무 한데요? 혹시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날도 계획해둔 것은 아니죠? 그것도 알람으로 맞추어 뒀나요? 설마?
안타깝게도 고백할 날짜까지 미리 계획해 두었어요. 당연히 알람도 맞춰두었어요. 심지어 정석이는 여태까지 편의점에서 서로가 어떤 대화를 나누었었는지까지 기록을 해두었는데요,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에요.
오늘 편의점에서 지원씨와 ‘삼각김밥 두 개 사겠습니다.’, ‘네 얼마입니다.’라는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형식의 대화를 다섯 번 더 나눈 뒤에 고백을 해야겠다.
정석이는 이런 계획을 세워 두었고, 그 날짜를 미리 알람으로 맞추어 두었죠.
그런 식의 고백은 당연히 전달이 안 될 텐데요.어쩌다가 그런 강박증을 가진 인생이 된 거죠? 한 편으론 참 가엾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일단 두 사람이 카페에서 만나는 데까지는 성공을 하죠. 카페로 들어선 두 사람은 똑같이 각설탕을 정리하고 똑같이 가방을 한쪽에 가지런히 세워둬요. 그리고 정석이가 계획대로 고백을 하죠. 서로 너무 닮아서 좋아한다고 이야기하죠. 그러자 지원이 화를 냅니다. 지원이는 스스로의 모습을 경멸하고 바꾸려 노력 중이었기 때문에 강박증인 스스로가 싫어 병원까지 다니는 중이라며, 정석에게도 병원에 가볼 것을 권유해요. 닮아서 좋아한다고 고백했는데, 정작 지원에게서 닮아서 싫다는 말을 듣자, 충격을 받은 정석이가 자신이 강박증일까, 라는 의문을 가지며 맞다면 고쳐보기로 마음을 먹죠. 병원을 갑니다. 정석이와 비슷한 정신적 질환을 가진 사람들과 한 팀이 되어 대화를 하는데요. 그렇게 서서히 치유의 시간에 물들어가게 되고 자신의 병을 인지하게 됩니다.
영화 <플랜맨> 스틸컷
인지를 한다니 천만다행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을 인지하기까지 과정이 어려워서 치료가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병을 인정하고 고치려는 사람보다, 억지로 괜찮은 모습만 보이려는 분들이 실은 더 아픈 분 아닐까요?
바로 영화에서도 그 부분을 콕 꼬집어 줘요. 시간이 지날수록 정석은 자신의 모습을 분석하고 메모하며 바꾸려 노력해요. 같은 팀 환자들도 스스로를 바꾸려고 노력하는데, 병원 내에서 유일하게 정상인이라며 등장하는 담당 의사가 오히려 환자를 폄하하는 발언을 한다든지, 더 문제가 많아 보이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정상인들이 오히려 더 비도덕적이고, 오해를 많이 하고, 편견으로 인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 못해 절망에 빠져있는 모습 등을 보여줍니다.
정상인이라는 기준 자체에 의문이 생깁니다.정상의 기준을 병의 유무에 둘지, 도덕성의 유무에 둘지, 마음의 상처 정도에 따라 둘지 말이죠.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기도 해요. 정석이가 어떤 원인으로 이런 강박증이 발생했는지 어릴 적 트라우마를 보여주고, 그 트라우마가 서서히 어떻게 치유되어 가는지도 보여줍니다. 혹시 주변에 정신적으로나 마음에 상처 난 분이 계시면 이 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플랜맨> 스틸컷
작든 크든 트라우마는 누구나 하나쯤 있지 않을까요.
먼저 잠들기 전 천천히 자신의 부족한 점이나 트라우마가 어떤 것인지 ‘인지’를 해보신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