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써니>라든지 <국제시장>, <쎄시봉> 같은 작품들이 많은 분께 추억이라는 감성을 선물했었죠?
영화 <국제시장> 스틸컷_이미지 출처: 네이버
그랬죠.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라든지, 추억을 되새기는 작품들 덕분에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 근현대 삶을 간접 경험하기도 했었죠.
당시는 인터넷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누군가와 어느 장소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면 그 시간을 지켜야 했죠. 미리 나온 사람은 약속 장소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낭만이 있었습니다. 공중전화를 이용하기도 했죠. 공중전화 박스 앞에 줄을 서서 전화하면서도, 나 혼자보다는 내 뒤에 줄을 서있는 여러 사람을 함께 생각하는 마음이, 지금보다는 컸던 때가 아닌가 싶은데요. 정이 넘치던 그 시절 복고풍 영화들이 제작되면서 극장가에 어른들이 늘어난 계기도 되었다고 합니다.
영화 <써니> 스틸컷_이미지 출처: 네이버
좋죠. 사람은아픈 기억이 지속되면 스트레스가 너무 크기 때문에, 뇌에서 과거를 미화시켜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추억을 아름답게 여기는 데는 이러한 뇌의 기능도 한몫하는 것 같아요.
과거의 기억을 아름답게 다룬 많은 영화들 중에서 잘 알려지지 않아 개인적으로 아까워하는 작품, 바로 지금부터 인생을 엿볼 <해적, 디스코왕 되다> 이야기 풀어볼까요.
요즘은 해외에서도 과거를 다룬 영화들이 인기를 끈다죠. 이 작품을 통해서는 몇 년도로 거슬러 가나요?
1980년대의 어느 달동네예요. 2002년에 개봉했는데, 김동원 감독님께서 80년대를 고스란히 잘 떠다가 그대로 영화 속에 담아 두셨죠. 미모의 배우 한채영 씨가 알려지게 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대근, 김인문 씨 등 대 선배 배우들과 오달수, 김영애, 조한희, 가수 겸 배우인 이혜영 씨 등 많은 배우들이 조연으로 등장해요.
아직 주연은 등장도 안 했는데,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배우분들이 조연급으로 등장하시는 거면, 정말 많은 배우들이 출연하셨겠네요.
등장인물이 정말 많습니다. 관객을 많이 확보할 수도 있었을 작품인데, 하필 월드컵 기간에 개봉을 하게 되었죠. 그렇다고 영화가 굉장한 사건이나 사회적 이슈를 다룬 영화가 아니었으니, 월드컵에 묻히게 됩니다. 흥행에 어려움이 있었죠. 요즘 좀처럼 만나기 힘든, '순수한 유치함'과 '정으로만 느낄 수 있는 따스함'이 영화 보는 내내 주변을 온기로 가득 채워줄 거예요. 가족과 함께 보시기 좋다는 점, 무엇보다 보신 후에 나의 내면에 있던 순수함이 되살아난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하시면, 좀 더 이 영화를 볼 이유가 늘어나겠죠?
굉장히 이 영화를 알리고 싶으신 게 느껴집니다. 왜일까요?
말씀드렸지만, 정말 순수해요. 복고풍 영화 중에서 어쩌면 가장 순수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내 내면의 순수함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건, 이 영화가 가진 굉장한 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내 안에 순수함이 되살아나는 일이 스스로에게 중요한 것도 사실이구요.
영화 <해적, 디스코왕 되다> 스틸컷_이미지 출처: 네이버
그 정도로 순수함을 어루만져주는 영화군요. 달동네라고 하셨으니 디스코와는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데요?
18세의 나이로 등장하는 삼총사를 먼저 소개할게요. 싸움을 아주 잘해서 별명이 해적인 이정진 배우, 멍청한 봉팔이 역할에 임창정 배우, 늘 부정적인데 의리는 있는 성기 역할에 양동근 배우입니다. 삼총사는 늘 함께 다니죠. 어느 날 해적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한 소녀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되는데요, 그 소녀는 바로 친구인 봉팔이의 여동생이었죠. 봉팔이의 여동생 봉자에게 온 마음을 빼앗기고 맙니다.
영화 <해적, 디스코왕 되다> 스틸컷_이미지 출처: 네이버
친한 친구의 여동생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당시에 충분히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많이 일어나는 설정이죠.
그렇습니다. 봉팔이는 엄마 없이 봉자와 아버지 하고만 살아요. 달동네 중에서도 아주 가난한 집인데요. 그 동네는 푸세식 화장실을 쓰는 데다가 길이 좁아서, 오물을 실어 나르는 차가 진입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봉팔이 아버지가 직접 양동이를 이고, 리어카를 끌며 분뇨를 퍼 담아 나르는 일을 하고 계세요. 어느 추운 날이었죠. 그날따라 약속이라도 한 듯 집집마다 봉팔이 아버지를 불러요. 아버지는 어느새 리어카가 꽉 찬 상태로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요, 그만 리어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내리막길을 분뇨 리어카와 함께 구르는 사고를 당합니다. 오물을 뒤집어쓴 비참한 장면이 연출되는데, 이 영화에서 잊지 못할 장면입니다.
영화 <해적, 디스코왕 되다> 스틸컷_이미지 출처: 네이버
심하게 다친 아버지의 병원비 충당을 위해, 봉자는 술집을 택하게 되죠. 봉팔이 역시 삼총사인 친구들에게 아무런 말없이 학교를 나가지 않고, 생계를 위하여 아버지 일을 대신하게 됩니다.
이야기 자체가 사람 사는 이야기네요. 그래서 따뜻함이 느껴지나 봅니다. 그런데 봉팔이는 아주 친한 친구들인데도 그런 이야기를 하기 싫었나 보죠?
네. 봉팔이가 학교를 오지 않자, 해적과 성기는 봉팔이네를 찾아가죠. 마침 술집에 간 봉자를 데려오려다가 술집 직원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채, 집 앞에서 울고 있는 봉팔이를 발견하는데요. 봉팔이는 그제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서, 씻어도, 씻어도 내 몸에서 똥 냄새가 나, 하며 막 울죠.
임창정 씨가 그랬다고 상상하니 웃음부터 나는데, 진지한 장면일 테니 웃으면 안 되겠죠? 이럴 때 우정이 넘치는 감동적 멘트가 그럴싸하게 나와주면 좋지 않나요?
나오죠. 이때 해적이 영화 속 명언을 남깁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 엄마만 힘을 쓰는 게 아니래. 아기도 나오려고 안간힘을 쓴대. 그러니까 태어난 우리에게도 반은 책임이 있는 거야. 어떻게든 살아보자. 그러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해적이 봉팔이를 위로하죠. 그리고 의리 넘치는 삼총사는 다음 날부터 그 일을 함께 시작합니다.
영화 <해적, 디스코왕 되다> 스틸컷_이미지 출처: 네이버
쉽지 않은 일인데, 역시 의리 넘치는 친구네요. 그런 해적을 보면 오히려 봉자가 해적에게 반하겠는데요?
어느 날 성기의 엄마가 춤선생과 춤바람 났다는 사실을 알고, 해적과 성기는 춤 선생을 찾아가 제비라고 욕설을 퍼부으며 때리게 됩니다.
영화 <해적, 디스코왕 되다> 스틸컷_이미지 출처: 네이버
그 무렵 건달 큰 형님 이대근이 시내에 디스코 장을 개업했는데요. 큰 형님은 댄스로 사랑을 나누었던 그 옛날 첫사랑을 잊지 못하여서, 첫사랑이 살았던 동네인 이 곳에 디스코 장을 열고, 디스코 대회를 개최한 것이죠. 혹시나 디스코 대회에 첫사랑이 참가할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어요. 그러다 길에서 우연히 봉자를 발견한 순간, 자신의 예전 첫사랑과 너무도 닮아서, 봉자의 빚을 대신 지불하곤, 디스코 장에 봉자를 데려가죠.
영화 <해적, 디스코왕 되다> 스틸컷_이미지 출처: 네이버
춤과 전혀 거리가 멀었던 해적이지만 자신이 첫눈에 반한 봉자를 디스코 장에 둘 수는 없었습니다. 건달 두목에게서 봉자를 구출하기 위해 디스코 대회에 참가장을 내죠. 봉자의 빚을 건달에게 지불하려면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고, 디스코 대회에는 상금이 걸려있었거든요. 그리곤 지난번 자신이 때렸던 춤 선생을 찾아가 춤을 배워달라고 합니다. 이후부터 재밌는 이야기들이 시작되는데요, 의상부터 소품, 지금은 볼 수 없는 옛날 자전거까지, 80년대 컬러를 잘 느낄 수 있고, 가끔 사람의 마음을 온화하게 녹여주는, '따뜻한 촌스러움' 때문에 행복한 감동이 넘치는 영화예요. 보신 이후, 마음속에 여유로운 방 하나가 생길 거예요. 그 속에 순수와 온기가 가득 채워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