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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zMe Jan 16. 2021

동굴에서 나온 누렁개

무비에게 인생을 묻다. 48

생소한 제목의 영화네요. 만나게 될 인생은, 음, 인생? 사람이 등장하기는 하는지?     

굉장한 아름다움을 보면서 우리 눈이 호강하게 될 영화예요.



아름다움은 언제 들어도 좋은 단어이긴 한데. 우리 눈이 호강한다. 미남, 미녀배우가 등장하나요? 그렇다고 하기엔 제목이 영 마음에 걸리네요.

미남, 미녀. 그런 분들이 등장해도 좋았겠네요. 그런데 미남, 미녀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같은 말들로 또 깊이 들어가야 할 것 같기도 한데, 일단은 등장인물을 알려드릴게요. 한 가족과 개 한 마리가 주인공이라고 할까요. 자연과 함께 살고 있는 그들의 인생을 들여다볼게요.

영화 <동굴에서 나온 누렁 개> _ 이미지 출처 :네이버


가족과 개 한 마리라면 온 가족이 봐도 되는 영화겠네요?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당연히 자연이겠고요?

산소호흡기 같은 영화라고 해둘게요. 제목부터 인공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맛이 나지 않나요? 동굴에서 나온 누렁개. 배경은 몽골입니다. 따라서 촬영된 모든 장면이,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끝없는 초원인데요, 내용 없이 화면만 멍하니 보셔도 이 작품 만난 것이 축복이라고 하시지 않을까요.


          

끝없는 초원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탁 트입니다. 해외여행도 잘 못 가는 요즘, 이런 안타까움이 영화로 채워지면 좋겠다 싶은데요? 몽골이 배경이면 몽골문화도 자연스레 엿볼 수 있겠습니다.

몽골의 전통 집 게르 짓기라든지 자연 그대로의 치즈 제작과정 같은 생소한 장면이 많죠. 주로 말을 타고 이동하는 모습도 글쎄요, 개인적으로 너무 부러웠죠. 스무 살이 되고 운전면허 따던 시절에, 운전학원 가지 않고 놀고 싶어서, 왜 요즘은 말 타고 다니면 안 되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했다가 혼난 적이 있었는데, 영화 속에서 어린아이도 말을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뛰더라구요. 그런데 이 가족이 교통수단으로 인공적인 것을 하나 가지고 있어요. 바로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보는 오토바이인데요, 대자연 속에서 보는 오토바이 한 대가 어찌나 어색한지 웃음이 났죠. 아버지가 먼 마을 장에 가실 때 타는데 하루는 장으로 떠나는 남편에게 부인이 요청합니다. 물 뜨는 바가지를 하나 사 오라고. 아버지는 그곳에서 어울리지 않는 부웅 소리를내며 떠났죠. 다음 날 아이들은 온종일 아버지 돌아오시는 오토바이 소리를 기다리는 것이 일과의 전부입니다.


영화 <동굴에서 나온 누렁 개> _ 이미지 출처 :네이버

이윽고 오토바이 탄 아버지가 저만치 점처럼 보이면 아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그 점을 향해 달리죠. 아버지가 커다란 가방에 손을 넣습니다. 모두가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고 있을 때 가방에서 빠져나오는 바가지를 보고 가족들은 들떠요. 돌아가면서 너 한 번 나 한 번 바가지로 물을 떠봅니다. 바가지 하나로 집안에 행복이 충만하여 집이 풍선처럼 부풀 것 같은 순간이죠. 어떠세요? 이런 감동? 규격 없는 말랑말랑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살아있는 이 감동이, 뭉클해질 만큼 큰 에너지로 제 가슴에 흡수되는 순간이기도 했죠.   


영화 <동굴에서 나온 누렁 개> _ 이미지 출처 :네이버



바가지 하나로 온 가족이 기뻐한다. 요즘 잘 느끼기 힘든 싱싱한 소소함이라고 해야 하나요. 한 가득 따뜻합니다.

부부와 여섯 살인 딸 난살, 그리고 둘째 딸, 이제 막 걸음마하는 막내딸이 한 마리 개와 가족이 되는 내용이라고 보시면 돼요. 단순하죠. 그러나 첫 장면부터 강렬한 영상미로 우리를 압도합니다.

영화 <동굴에서 나온 누렁 개> _ 이미지 출처 :네이버



살아있는 몽골이 담긴 영상이라니 참 기대가 됩니다. 그런데 걸음마 시작한 막내딸이 등장하면 그런 아기와 촬영이 가능한가요? 

비암바수렌 감독의 작품이 항상 영화인지 다큐멘터리인지 구분이 안 되도록 리얼함을 살리는 매력이 있거든요. 그래서 어디로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는 막내딸로 인해 오히려 다큐 분위기가 나도록 이용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영화 <동굴에서 나온 누렁 개> _ 이미지 출처 :네이버



본래 잘 짜인 드라마 한 편보다, 길가의 풀 한 포기가 더 큰 감동을 줄 때가 있잖습니까. 비암 바수렌 감독이 그런 감동을 이미 아는 분인 것 같네요.

스토리보다 상황을 통해 감동을 주죠. 놀랐던 장면은 아직 보살핌 받아야 할 여섯 살 여자아이가 혼자 말을 타고 들판에 양 떼를 몰고 갔다가 돌아오는 장면이었는데요. 건물이 하나도 없어서 동서남북을 구분할 수 없는 초원에서 산 능선의 모양만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경이로운 충격이었죠.


영화 <동굴에서 나온 누렁 개> _ 이미지 출처 :네이버



여섯 살. 작은 심부름이면 몰라도 우리나라 여섯 살 여자아이에게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지 싶네요. 물론 말을 타고 양 떼를 모는 일이 일반적인 나라가 아니니까 그런 지도 모르지만. 여섯 살에 대한 대우 자체가 다른 것 같습니다.

심지어 지게를 지고 땔감도 구하기도 해요. 첫째 딸 난살이 땔감을 구하러 들판을 돌다가 동굴에 숨었던 개 한 마리를 발견해서 집으로 돌아오죠.

영화 <동굴에서 나온 누렁 개> _ 이미지 출처 :네이버


아빠는 개를 보고 못 마땅해해요. 만약 늑대와 함께 살았던 개라면, 그 개를 따라 늑대들이 집을 습격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키우고 있는 양 떼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이유를 들어 키우지 말라고 하시죠. 그러나 난살은 다음 날 아빠 몰래 양 떼 속에 슬쩍 개를 섞어 둡니다. 엄마는 난살을 나무라죠. 눈에 보이는 것을 전부 가질 수는 없다고 아빠 말씀을 들으라고 하세요. 그때 재밌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엄마는 난살에게 손바닥을 힘껏 쫙 펼친 다음 입에 대고 깨물어보라고 하죠.


펼친 손바닥은 아무리 깨물어도 치아가 손바닥을 스치기만 할 뿐 깨물 수는 없잖아요. 난살이 해보다가, 안 되네.라고 하자 엄마가 다시 말씀하시죠.

"그것 봐. 눈에 보이는 손바닥이라도 깨물 수 없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는 거야. 개를 다시 그 자리에 갖다 둬."


저는 갸우뚱했는데, 역시 난살도 이해 못한 듯 갸우뚱하더군요. 뾰로통해지며 '왜 개를 싫어하는지 모르겠네.'라고 하죠. 그러자 엄마는 다시 말합니다.

"그건 싫고 좋고의 문제는 아냐."

여섯 살 딸과 엄마의 대화치고는 몹시 흥미로웠죠.

결국 나중에 막내딸이 위기에 처한 순간 개가 구해주면서, 결국 함께 살기로 된다는 이야기예요. 아주 단순한 그 안에서 전혀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근원적인 것을 질문하는 영화라고 할까요.


영화 <동굴에서 나온 누렁 개> _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옛날과 비교하면 요즘은 참 풍요로운 데도, 상대적 빈곤 때문에 열등감 느끼며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죠. 이 영화에서 말하는 진짜 인간으로서의 행복, 그 행복한 삶의 모습을 느끼고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늑대의 습격을 피하고, 양 떼를 먹이는 것이 전부인 삶이에요. 게르에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새 계절을 나기 위해서 살던 집을 뚝딱 분해하여 수레에 싣고, 말과 양 떼와 함께 다른 초원을 향해 떠나는데요, 그 장면을 보면서, 어떻게 짐이 저렇게 없을 수가 있나? 삶이 저렇게 가벼울 수 있는 것일까, 생각했고, 반대로 우린 너무 짐이 많지 않나, 군더더기가 너무 많은 삶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들은 자연과 친하다 보니 온몸의 육감으로 알아요. 어느 지형 어느 지대로 가야 할지 느낌으로 말이에요. 그 모습이 자연 앞에서의 진정한 사람 아닐까 싶었죠.

영화 <동굴에서 나온 누렁 개> _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온 가족이 힘을 모아 집을 분해했다 조립했다 하면, 내 집과 가족에 대한 애착도 늘 수밖에 없겠네요. 내 손으로 직접 지어가는 것이 되니까요. 집도 가족도.

가족이 함께 작업하니 아이들도 우리 집을 어떻게 조립할지, 우리 집 문은 바람에 따라 어느 쪽으로 내는 것이 맞는지, 자연과학을 저절로 습득하고 있었죠.

영화 <동굴에서 나온 누렁 개> _ 이미지 출처 :네이버


장난감 하나 없는 여섯 살 난살이, 언덕에 누워서 구름의 모양만으로 동생에게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는데, 그런 아이들이 굳이 우리와 같은 현실에 와서, 창의력 교육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들에겐 태어나면서부터 기본 스킬일 텐데요. 자녀와 함께 이 영화를 보시는 분들은 여러 분야에서의 교육적인 요소도 많습니다. <동굴에서 나온 누렁개> 속에서 꺼내 먹을 수 있는 알곡들, 눈으로, 귀로, 마음으로 찬찬히 드신다면, 내 안에 오염된 생각과 다친 아픔까지도 청정하게 정화될 거예요.


      

영화 <동굴에서 나온 누렁 개> _ 이미지 출처 :네이버

앞서 산소호흡기가 되어줄 작품이라고 소개한 이유가 그랬군요.  

빨리빨리 보다는 느릿한 여유가 있는 세상.

가장 중요한 것을 지켜나갈 수 있는 삶.

주변 요소가 아닌 내 선택으로만 지어갈 수 있는 내 인생.

생명 없는 회색의 것들이 아닌, 생명 있는 하늘, 나무, 풀 같은 자연 속에 안겨, 바람 한 줌에도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는 시간.

어쩌면 거대한 세상의 시나리오에서 벗어나, 진짜 인간으로 돌아가는 정답이 그곳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계단을 올라 진짜 세상으로 탈출한 <트루먼 쇼>의 트루먼처럼, 우리의 탈출구일지도 모를 그곳 사람들의 인생이었습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아냐고, 힘 있게 묻는 소박한 영화 <동굴에서 나온 누렁개> 소개였습니다.  

영화 <동굴에서 나온 누렁 개> _ 이미지 출처 :네이버

author, Su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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