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책이 있어요. 책의 제목이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문장이죠? <프랭크> 세 글자를 문장으로 풀어 쓰라면, 저 책의 제목을 저는 읊조리겠어요. 나 다운 삶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다루는 작품이라고 할까요.내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중인지 이 작품 통해 한 번 점검해보시죠.
가끔 나답게 살고 있나, 스스로 질문도 하고 돌아봐야 하는데, 핑계 같지만 일단 바쁘니까요. 여유가 워낙 없어서요. 좀 솔직해지는 방법이라도 있다면 알려주실 수 있나요?
영화 제작을 하기 전에 뮤지컬 극작가, 작사가로 있었어요. 공연을 올리고 한창 재미가 붙었을 당시에도 공연에 대한 공부는 지속적으로 했었는데, 뭐랄까, 굉장한 포인트 하나를 획득했다고 할까요. 재밌는 사실을 배웠죠. <'가면무도회'를 열면 사람들이그렇게 솔직해질 수가 없다>라는 자료였죠. 굉장히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면무도회라면 얼굴을 가리니까, 서로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네요.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니 그 속에서 행동이 자유로울 수는 있어서 솔직하다는 건가요.
무엇보다 나를 감출 수 있다는 것이 포인트겠죠. 내가 누구인지 아무도 알아볼 수 없기에, 그 가면 속에서 인간은 진정한 자유를 느낀대요. 가면을 썼기에 자신의 얼굴이나 이름에 책임질 필요가 전혀 없고, 행동도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 가면이 악한 의도로 사용되면 범인의 복면이 되는 것이고, 선한 의도로 사용될 땐 사람의 내면을 치유하는 역할도 한다고 합니다.
영화 <프랭크>_이미지 출처: 네이버
가면으로 치유를 한다. <프랭크>가 조금 더 궁금해집니다.
2014년 9월개봉했어요. 무척 독특한 영화였죠. 천재적인 음악성을 자랑하는 주인공 프랭크를 포함해몇몇 멤버가 모여 밴드를 결성했는데요. 유독 프랭크만 아주 커다란 탈을 쓰고 있어요. 몸은 일반 차림인데 유독 얼굴만은 절대 남에게 보이지 않고, 늘 우스꽝스럽고 괴상한 가면을 쓰고 있죠.
영화 <프랭크>_이미지 출처: 네이버
놀이동산 가면 만나는 가면이겠네요. 몸은 보통 차림에 머리만 무지 큰. 궁금하네요.가면을 항상 쓰고 있으면, 심각하게 화낼땐 어떻게 하죠? 우스꽝스러운모습으로 화내면 상대가 표정관리에 무진장 애를 써야 할 것 같은데.
우스꽝스러워요. 진지한 회의를 할 때도, 심지어 싸울 때도 똑같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가면을 쓴 채로 있죠. 그 상태로 작곡도 하고 노래도 불러요. 어느 날 존이라는 뮤지션이 프랭크의 천재적인 음악성을 우러러보며 밴드의 일원이 되기를 지망하다, 기회를 얻어 반주자로 캐스팅되는데요.프랭크의 밴드 기준에 맞는 음악성을 인정받지 못해 퇴출 위기에 처합니다. 그러나 운이 좋았는지 밴드가 월세를 못 내쫓겨날 위기를 또 기회 삼죠. 존은 월세를 내고 겨우 밴드 일원으로 남을 수 있게 됩니다.
영화 <프랭크>_이미지 출처: 네이버
프랭크의 음악을 존경해 밴드 일원이 됐지만, 월세를 못 내쫓겨나야 했던 그날도 프랭크는 가면을 쓰고 있었을 테고, 시간이 지나도 어떤 일에든 가면속 프랭크의 진짜 표정을 알 수는 없으니, 아무리 대화를 한다 해도 깊이 공감, 교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전히존은 프랭크를 우러러보나요? 여전히 이해하고 존경할지, 의문이 드네요.
존은 프랭크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늘어갔죠. 가면을 그토록 안 벗을 줄은 몰랐으니까요. 따라서불만도 늘어납니다. 가끔 자신과 대화할 때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설명을 해달라 요구도하고, 프랭크가 샤워할 때, 혹시나 가면을 벗지 않을까 기웃거리기도 하죠. 하지만 도무지 빈틈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프랭크는 가면에 집착하고 있고, 가면 벗는 것에 대한 불안함마저 보이게 되죠. 그런데요. 존만 그래요. 프랭크의 진짜 모습을 존만 궁금해할 뿐, 기존 멤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프랭크와 지내는 모습을 존은 봅니다. 그 속에서 존의 궁금증은 더 커지기만 하죠.
영화 <프랭크>_이미지 출처: 네이버
웃기거나 튀기 위해 쓰고 있던 설정이 아니었네요. 프랭크는 가면에 의존을 정말 많이 하고 있군요? 이유가 있었나요?아무리 천재적 음악가라지만, 그런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설 수는 없지 않을까요.
예술가로서 자신의 창작물을 대중 앞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누구나 있는 것이 일반적이겠죠. 그러나 프랭크는 존이라는 음악가의 롤모델이 되었을 만큼 음악에 천재적 재능이 있었으나, 대중의 호응에는 어떤 관심도 없습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음악에만 빠져, 자신의 음악적 컬러를 지키는 것에 더 관심을 두고 있죠. 멤버들은 그런 프랭크이기에 더욱 존경하며 함께 화음을 맞추고 있어요. 그러나 존은 다릅니다. 음악에만 집중되고 심취한 그들과 달리 존은 세상에 시선을 둡니다. 밖에 나가 인정받고 싶습니다.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시선이 존에게는 중요합니다. 자신의 세계에만 더욱 깊숙하게 들어가려는 프랭크에게 집요하게 세상과의 다리를 놓으려애를 쓰죠. 그리고 결국 그런 존을 통해 서서히 프랭크도 대중으로 시선을 돌려봅니다.
영화 <프랭크>_이미지 출처: 네이버
프랭크가 가면 벗을 날이 머지않은 건가요?
먼저 존이 자신들의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죠. 생각보다 많은 조회수를 얻게 되고 그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프랭크 사람들이 너의 음악을 좋아해."
프랭크가 존을 바라봅니다.
"사람들이 내 음악을 좋아한다고?"
그들의 대화였죠. 결국 공연을 합니다. 하지만 존의 노력으로 열린 대중 앞에서의 첫 무대를 프랭크가 망치죠.
가면을 쓰면 더 용감해지기 쉽고, 무대에 대한 두려움도 다른 멤버에 비해서 적었을 텐데, 왜 프랭크 때문에 망쳤을까요.
프랭크의 입장에서 다른 멤버들은 자신에게 흡수된 존재였고, 존은 아니었죠. 가면 속에서 살 때의 장점은 참 많아요. 자신만의 음악에 심취해 있을 수도 있고, 음악적 재능을 맘껏 발휘하며 더과감한 시도도 할 수 있죠. 가면 속에서는 두려울 것이 없으니까요. 멤버들은 누구도 프랭크를 가면 쓴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직 그의 음악을 인정하며, 가면 쓴 존재와 그의 음악을 묶어, 온전한 하나의 프랭크로 봐주었죠. 존만 그러지 않았던 거죠. 프랭크를 존경하나 그에게 흡수되지 않았고, 프랭크의 세상에 들어온 듯 하나, 여전히 세상 속 사람이었죠. 세상의 인정을 중시하는 존은 천재적인 프랭크를 세상에 보이며, 더불어 자신도 인기를 얻고 싶었어요. 지금껏 정교한 음악 작업에 열중하여 음 하나하나에도 민감했던 프랭크는 그렇게 존과 함께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섰으나, 대중과 교감하며 평소보다 감정이 격해지는 존의 반주를, 프랭크의 정교한 귀로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던 거예요. 자신의 음악이 평소와 달리, 감정적으로 증폭되는 것을 견딜 수없었던 거죠. 그것은 더 이상 자신의 음악이 아니었으니까. 프랭크가 가면을 감싸며 소리를 지르곤 쓰러집니다. 그 일로 존과 프랭크는 길에서 심하게 다투죠. 더 이상 참기 힘든 존이 프랭크의 가면을 강제로 벗기려 하자 당황한 프랭크가 재빨리 도망 가지만, 가면 때문에 주변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만 달려오는 차에 부딪혀요. 존이 뒤따라 가지만 길에 가면만 떨어져 있고, 프랭크는 사라졌습니다. 그 와중에도 존은 차 주인에게 프랭크의 얼굴을 보았냐고 묻죠.
영화 <프랭크>_이미지 출처: 네이버
안타깝네요. 프랭크는 왜 그렇게 가면에 집착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어우러지는 멤버들과의 화음과 음악적 컬러도 중요하지만, 분명 세상과 소통해야 하는 존의 말도 틀린 말 만은 아닌데요.
어릴 때 아버지가 우연히 그 가면을 프랭크에게 사주셨는데, 가면을 써본 그날부터 프랭크는 가면을 벗지 않았다고 해요. 이 영화에서 가면의 유혹이 얼마나 큰지, 또 가면 속에서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알 수 있는데요, 가면으로 인해 대인관계에 부정적 요인도 많지만, 가면 속에 있었기에 프랭크가 천재적 음악가가 될 수도 있었던 거예요. 그러나 좋은 음악도 대중과 소통되지 않으면 음악적 존재가치가 약해질 수밖에 없죠. 교통사고 수술을 마친 프랭크가 결국에는 가면에 의존하지 않은 모습으로 정말 용기를 내어 동료들 앞에 나타납니다. 그리곤 온전한 자신만의 모습으로 노래하는 장면이 나오죠. 여기서 잠깐, 생각해 봐야 하는 중요한 질문을 해 볼까요?
두 사람 중에 누가 진짜의 모습으로 살았을까요? 프랭크인가요? 존인가요?
한 인간이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작품이에요. <프랭크>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다만 아주 묵직한 여운을 꾸욱 남겨주는 영화죠. 가면과 색감으로 인해 신비로운 느낌도 줍니다. 관객에게 질문을 많이 던져요. 그래서 평소에 자극받던 근육이 아닌, 생소한 감정의 근육을 두들긴다고 할까요. <프랭크> 잘 만나 보신 뒤에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세요.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지.
영화 <프랭크>_이미지 출처: 네이버
가면 속에서 진정 자유롭다는 말.
스스로 인지 못하는 동안에 우리는 어쩌면 주변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신경 써왔을지도 모릅니다.
때론 현실이 두려워가면을 쓴 채 연극 속에 살았거나, 그러고 싶을 때가 있겠죠.
그러나 연극도 막이 내린 뒤에는 현실보다 더 큰 공허함이 찾아옵니다.
솔직함과 자유로움이 공존해야, 즉 내가 나 다워야 가장 건강한 상태라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