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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zMe Jan 20. 2021

순간이동

2015년 3월 26일

아무도 몰래 감쪽같이
내 방에서 떠나는 여행


오전.


문득 누군가로부터 받은 사진 한 장에



회오리가 나타났다.

빨려 들어간다.

기억의 블랙홀


기억.


쌓인 지식보다

쌓인 경험보다

아아, 물론

그 모든 것을 총칭하야 '기억'이라고 하나.



지금의

그런 류의 기억을 칭하는 게 아냐.

더 빨리 펼쳐진 시공간 이탈의 VR

복수 명령, 복수 자료.  

재빠른 MIMD

데이터를 통째로 불러오는 거야, 눈 깜짝할 사이에 모조리.


생생한 컬러와

디테일한 입체로

무한하게 내 눈 앞에 펼쳐지는 그래픽

레이 트레이싱이 플레이되지.


기억 언젠가의

그곳이야.

나,

입은 잠 옷 이대로

그 길을 걸어.


아무리 조심하여도,

신었던 슬리퍼 속으로 사르르 파고드는 모래


맡았던 그 향기네.

들었던 그 목소리야.


느껴지는 그날의 보송거렸던 바람


달리던 차에서 바라보던 전신주

날아들던 위협적 큰


시기에 맞게

누군가 써놓은 시나리오인 듯

낭만적일 만큼 내려줬던 비와


건너편 마을과


노래와


풀과


구름과


푸르름과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


우리들,


그때,


그 때,


때.



감성의 기억은

거쳐온

쌓아온

그 어떤 지적인 앎보다



지금의 내가 있게 하는

더 짙고 깊고 무거운

내 안의 지층.



촘촘하지,

늙지 않는 피부처럼

밀도 높아 튼튼한 뼈처럼

산화되지 않기 위해

언제나 풍성한 가지로 나의 뇌 속을 채워줄

마음이 시들지 않게 적당한 향기들로 가득 채워줄

기억들.


잃지 않,

고 싶다.



아무도

내가 여행을 다녀온 지 모르는 시간 동안

먼 시간을 거슬러가는 여행을 하고,

감쪽같이 기억의 블랙홀을 순식간에 접어

사진 속에서 조용히 빠져나오면,



난 여전히 내방.



그러나 달라, 기분은.

아주


끝내주는 봄이야.



author, SuJi 2021 0120  _  from 2015 0326


빠져나오면서

향기를 훔쳐왔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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