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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zMe Jan 19. 2021

2017년 4월 28일

못생긴 시선에 꽃을 담았다.

새벽 두 시 전 후.
이 시간에 혼자서는 결코 밖에 있을 리 없는 내가, 그 날따라 차마저 갖고 있지 않은 채 집까지 걸어서 횡단보도 두 개를 남겨 놓고 서 있었다.   
아직 새벽바람이 차다니 계절 참 모질기도 하네, 같은 생각을 하면서 단추 없는 카디건을 가슴팍에서 움켜쥐었다.


ItzMe _ 20170428 _지금보다 4년 어린 내 운동화  

쭉 뻗은 큰 사거리를 눈 앞에 둔다.
지나가는 차는 간혹 한 대.

오늘만 그런 건지, 원래 이 시간에 차가 없는 건지 객관적 진실은 알 수가 없네, 같은 생각을 또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혼자 서있는 이곳 참 넓구나.

건물도 잠이 들고 적막하기도 해라.
거리에는 가로등이 간격에 맞추어 수직으로 서서, 도미노 같은 그림자를 수평으로 눕히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낭만이라곤 없는 못마땅한 LED 빛을 뿜어내고 있지만, 이제 감성으로 바라보지 않겠어, 오직 나의 이성에 의해 필요한 수단으로만 너를 기억하겠어, 같은 심술을 괜스레 가로등에게 소모하며, 후. 춥다.  


지금 이 길 위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혼자라는 묘한 기분. 뒤를 돌아보려는데 뾰로통한 알림음과 함께 주변 컬러가 바뀐다.   
초록불이네.


ㄱ자의 획을 거슬러 가듯, 횡단보도 두 개를 건널 참이었다.
남북으로 놓인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면, 동서로 놓인 횡단보도에 연이어 초록불이 들어온다는 순서는 외우고 있던 참이기에, 이 새로운 상황에 느끼는 약간의 두려움에 슬쩍 안도가 스며든다.    

곧 나는 아파트 후문에 다다 것이니까.


남북으로 놓인 횡단보도를 반쯤 건넜을 때, 이어서 건널 가로 횡단보도 쪽으로 무심코 시선을 옮겼는데, 어? 나 혼자가 아니었네? 사람이 있네? 사람 맞지?
의도한 것은 아닌데, 잠시 멈칫했다.

무언가 조금 이상하다.  
아직은 빨간 신호인 가로 횡단보도의 출발 라인에, 건너려 대기 중인 그분의 몸이 휘청거린다.  

자꾸 제자리에 계시지 않고, 앞뒤로 좌우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휘청거리고 계셨다.

  
혼자인 것도 괜스레 무서웠건만, 반드시 내가 건너야만 하는 횡단보도 시작점에, 대체 언제 나타나신 거지.

이제 나는 어떻게 하지.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거하게 취한 분이 계실 만도 하다는 건 알겠다.

그러나 왜 하필 지금이며, 왜 하필 내가 건너야 하는 횡단보도에냐고!

달갑지 않은 상황에 긴장을 놓지 않고 연신 전방을 주시했다.

크게 한숨이 나왔다.
가까이 가면 사방으로 흩어지며 풍길 술 냄새가 싫어서.
혹여나 휘청이다가 중심 잃은 몸이 우르르 쏠려 나에게 스치거나 닿을지도 몰라서.
그런 불쾌한 상상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 끔찍해서.
  
애써 태연한 척 아주 멀찌감치, 마치 나라는 존재는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슬며시 아저씨의 뒤편으로 발소리를 죽이며 섰다. 마침 있는 가로수 뒤에 서서 내 그림자를 가로수 그림자 위로 포개었다.  

그분의 시야에 부디 내가 들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방금 내가 건너온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어서 빨간색으로 변하기를 기다리며 숨을 죽였다.
  
됐다.

이젠 이쪽 출발점이 초록불로 바뀐다.

아저씨가 선두를 끊은 뒤에도 나는 한참을 기다린다.
아저씨와의 간격을 안심할 만큼 벌려놓고 나서야 횡단보도 출발선으로 발을 옮겼다.
아저씨의 뒷모습을 주시하면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어? 이번에 또 무언가 이상하다.

서 계실 땐 분명 휘청휘청하셨는데, 걷는 아저씨의 보폭이, 걸음의 박자가 일정하다.

술에 취한 분의 리듬이 아니다.
조금 더 다가서며 자세히 보는데, 아, 어쩌면 좋지.
아저씨의 보폭은 일정하나, 다리 길이가 일정하지 못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하신 분임을 그제서 나는 안다.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무엇이 나의 눈을 가렸을까.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하나님 죄송합니다, 가 튀어나왔다.



내 안의 기억으로 잉태된 편견.
그 편견이 나의 시선에 교란작전을 펼쳤고 나는 너무도 쉽게 걸려들어 버렸다.
스스로를 몇 번이고 자책하고, 나에게 탄식하며, 안타까운 횡단보도를 건너 아파트 후문에 이르렀다.

이르렀는데,
  
후문으로 들어서는 입구 계단을 오르려다가 난 또 한 번 멈칫한다.

열 개도 안 되는 계단 꼭대기에, 한참 전에 건너가신 아저씨가 떡하니 서 계신 것 아닌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이건 또 무슨 일이지?


내 뒷덜미에 누군가 주사기를 콱 꽂는 느낌이다.

어릴 적 기억을, 편견이라는 사악한 주사기에 눌러 담아 순식간에 온 몸에 퍼뜨려 놓는다.
다시 한번 기억이 가져다주는 불안감에 감염되고 만다.
   
  
그러니까, 일곱 살 때.
여름이었고, 오후로 넘어가고 있는 낮이었다.
어떤 술 취한 아저씨가 우우, 소리를 내며 많이 휘청거리는 것을 봤다.
나는 민소매 옷을 입은 채 엄마 손을 잡고 걷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우우, 소리가 크게 들려 돌아봄과 동시에, 내 근처로 그 아저씨가 우두두두 발소리를 내며 쏟아지듯 다가왔고, 곧 초점 없는 눈으로 몸을 숙여 정확히 내 팔에 얼굴을 갖다 댔다.

돌아본 순간 시커먼 얼굴이 너무 가까이 있어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무 놀란 엄마 역시 소리를 지르며 취한 아저씨 얼굴을 밀어냈고 나를 와락 껴안았다.  

주변에 있던 어른들이 한꺼번에 그 아저씨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 양반이! 미쳤나!, 대낮부터 술을, 어쩌고 저쩌고, 그런 말들이었던 것 같다.

그 아저씨는 도리어 그 어른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었고, 지나가던 버스 아저씨도 창을 열고 그 아저씨를 향해 욕을 했었다.   

난리 난리를 치시던 어른들의 기억은 지금 희미하다.

단지 잊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나를 해칠 것 같던 까칠까칠한 수염의 느낌, 다 말라서 쇠수세미 같던 그 입술에 긁히는 듯했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코를 꼭 쥐며 막아야 했던 후끈한 술 냄새도.  
회상하는 이 순간도 그 커다란 얼굴이 팔에 와서 붙어 버린 생생한 느낌에, 한쪽 손으로 팔을 털어내게 된다.  
   
  
아저씨가 한참 전에 건너가시고도, 떡하니 서 계시자 나는 주눅이 들었다.

이젠 노골적으로 의심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며 주변에 도움 줄 사람이 없나 둘러봤다.



어쩌면 다리가 불편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그래, 내가 잘 못 본 거야. 진짜 술에 취하신 게 맞겠지.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티가 나든 말든 주춤하며 한 칸도 오르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집에 가야 하는데.

이때 누군가 지나가야 하는데.
폰 배터리는 많이 남아있었나?

주무시고 계실 부모님을 전화해서 깨울까.

경비 아저씨 뭐하고 계시지? 여기로 순찰 안 도시나?
아, 부디 저를 살려주세요.



그때였다.
아저씨가 품 안에서 무언가 꺼내셨다.
주시하며 보니, 폰이다. 폰을 가로로 꺼내 드신다.  
전화를 하려면 세로로 들어야 하는데, 가로로 쥐시네?
  

그다음은, 
어쩌면 좋을까.
그때 나는 정말로 울고 싶었다.


  
셔터음이 들려오는 거다.

찰칵.

찰칵.
 
계단 위.
아저씨가 서 계시던 그곳.

그곳은 후문 입구라, 아파트 자체의 밝은 가로등이 하나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빛을 따라 내려가니,

아저씨의 셔터음이 향한 곳.

그곳에   

빨갛게

봄꽃이
흐드러져있었다.
  

그 아저씨는 그 이후로 한 번도 뵌 적이 없네.  아파트 후문 _ 이미지 출처 : my 폰



가로등 아래 옹기종기 모인 그 꽃들이 그렇게 예뻐 보이셨나 보다.
대여섯 번이나 찰칵 소리가 났다.
그리곤 유유히 돌아서서 집 쪽인듯한 방향으로 걸어가신다.
  

먹먹해졌다.
나란 인간은 대체 뭐지?

트라우마 때문이야,라고 합리화하려 했지만, 못생긴 내 시선으로 인해 구멍이 뚫려버린 마음에는, 어떤 이유도 착지가 되지 않았다.   

힘 빠진 손으로 부끄러운 이유들을 바닥에 모조리 떨어뜨렸다.      

죄송한 마음이 커다란 몽둥이로 변하여 나를 때린다.
  
고개를 푹 숙이고 집으로 무거운 발을 옮겼다.
몇 번이나 저어기 걸어가시는 아저씨를 돌아보며, 집 입구로 걸어가다 멈춰 섰다 걸어가다 멈춰 섰다 했다.

그리곤 정말로 멈춰 섰다.

이대로 들어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던 발걸음을 다시 돌렸다.


  
편견에 가려진 시선으로
그토록 예쁜 것을,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나와
이름도 모르겠는, 빨간, 옹기종기 모인 예쁜 봄꽃을 눈에 담을 수 있었던 아저씨의 시선을 비교하며
아저씨가 섰던 곳 앞에 내가 섰다.


가로로 폰을 꺼내 들었다.

  


죄송해요.

아저씨, 죄송합니다.
  

예쁘게 담아가신 그 시선을 따라
저도 편견으로 가득 찬 이 눈에
얼마나 담길지는 모르지만,
이 예쁜 봄을 담아볼게요.
 
그 새 들어가셨는지,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다.


그날.
아저씨 덕분에
난 꽃을 보았다.


근데 너는 이름이 뭐니, 꽃 _ 이미지 출처:20170428 my 폰

author Suji, 20210119 _ from. 2017 04 28 못생긴 날의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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