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자주 듣게 되어 교보에서 e북으로 주문해서 후딱 읽었다. 쉽지만 가볍지 않았고 따뜻했지만 뜨겁지 않았다.
읽는 내내 정현종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한때 광화문 교보빌딩에 붙어 있어서 더욱 유명해진 시이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중략)..............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퇴직한 교감선생님, 염여사는 우연히 지갑을 찾아준 노숙자 독고(라 불러달라는 사내)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를 자신이 운영하는 편의점의 점원으로 일하게 한다. 그와 다른 편의점 직원들과의 평범치 않은 만남, 그리고 손님들과의 만남을 통해 독고 자신도 몰랐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각 등장인물들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옴니버스 구성 방식이다.
7명의 스토리가 진행되는데 그 가운데 늘 독고씨가 있는 것이다. 거꾸로 보면 독고씨의 이야기를 하는데 이들의 이야기가 또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약에 이 이야기를 독고씨나 염여사 시점에서, 아니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진행이 되었다면 이 소설은 이렇게 흥미는 없었을 것 같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 우리에 모습이 많이 투영되어 있기에 호기심을 가지고 독고씨와의 만남을 지켜보게 만들었다.
그 일곱 명은 주로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편의점 알바, 사업에 실패하고 집에서 게임만 하는 아들을 둔 오여사, 더 이상 버티기에 힘든 배우 출신 극작가, 그리고 쌍둥일 딸을 둔 가장의 무게가 너무 힘든 영업사원 등. 그래서 이들은 자신이 짊어진 짐만으로 힘이 든다. 그러나 괴이한 독고씨의 옥수수수염차를 마시면서 이들의 힘겨운 짐이 서로를 연결해 주는 끈이 되고 서로를 토닥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독자로 하여금 독고씨에 대한 호기심을 끝까지 끌고 가게 한다.
독고씨는 힘들어하는 손님과 동료들에게 옥수수수염차로 다가간다. 이것은 소설에 나온 대로 1+1 상품일 뿐만 아니라 그의 가장 큰 문제인 알코올중독을 해결해 주고 있는 나름 신기의 차가 아닐까?.
나는 한 때 서울역 가까운 곳에 살았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노숙자들을 가까이서 자주 볼 수가 있었다. 서울역 지하에 있는 롯데마트에 갈 때마다 그들과 마주쳐야 했으니. 그들은 대부분 알코올중독자였다. 알코올 중독이 아닌 경우 그 삶을 견딜 수도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궁금했다. 알코올중독이 되어서 노숙자가 된 것인지, 노숙자가 되어서 알코올 중독이 된 건지.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 나는 알코올중독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고씨 역시 같은 케이스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 책에 혹시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그려지지 않을까 궁금했다. 글쎄, 이 책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독고씨의 의지가 답이었다. 눈앞에 술이 쌓여있는 냉장고가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참을 수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해내었고 그 힘든 과정을 같이하고, 가능하게 해 준 것이 옥수수수염차이다.
그래서 옥수수수염차는 자신의 숙제로만으로 삶이 힘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과거와 현재의 절망과 미래의 불투명성 속에서도 희미하게나마 찾을 수 있는 희망을 전달해 주는 것으로 나에겐 보였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건넬 수 있는 옥수수수염차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이 소설의 숨은 주인공은 염여사가 아닐까 싶다. 세상이 아무리 가파르고 힘들다 해도 이런 분들이 어딘가에는 있을 거야 하는 희망을 주는 캐릭터이다. 작가가 실제 어머니를 모델로 하였다니 작가의 애정이 담긴 캐릭터라는 것이 쉽게 느껴진다.
최근에 돌아가신 김중만 사진작가는 나이 50이 되자 자신은 '사적인 이해를 위한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 후 문체부에서 하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사진을 주로 찍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 그냥 50대 이후에는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라고 한다. 나는 그때 그 작가에 대한 나의 선호도로를 떠나, 나이를 제대로 먹는다는 것은 삶의 방향을 바꾸어 가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 보았다.
노인들의 삶에 대하여는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이야기가 훨씬 더 많다. 워낙 고속으로 노령화가 된 사회이다 보니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년기를 맞이하게 되는 노인들이 많아서 일 것 같다. 노인들의 사회적 참여의 모델은 언급조차 안되고 있다. 한다 해도 사회봉사나 도네이션 하는 정도가 아닐까?
염여사는 사회적 시스템 안에 들어가서 나름 참여를 한다. 힘든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는 것에 진심인 염사장님. 매우 신선한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이제는 노년 사회도 다양성을 띄기 시작했다. 염여사와 같이 안정적인 연금 수령자들의 모습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우리의 염여사님과 같이 노인들의 긍정적인 프로토타입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파이팅 염여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