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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 Aug 09. 2024

안나 카레니나

주다주: 안녕하세요. 두 번째 책 시사회 시간입니다. 지난 3주 동안 내부 공사로 인해 시사회를 진행하지 못 한 점 사과드립니다.  이번주의 시사회의 주인공 책은 <안나 카레니나>입니다. 톨스토이의 장편소설로, 상당히 대중적인 소설인데, 어렵다기보다는 길어서 끝까지 못 읽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죠. ㅎㅎ 


잠시 책에 대해 소개하기에 앞서 양해를 얻을 점은 러시아 인물들은 이름이 워낙 길고 발음이 힘듭니다. 그리고 카레닌과 브론스키의 이름이 알렉세이로 같기도 하고 해서 소설에서 나온 짧은 애칭으로 성함을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1877년에 출간한 장편소설입니다. 간단히 소개하면, 이 소설의 스토리라인은  두 커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안나와 브론스키, 레빈과 키티부부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그 후의 삶의 이야기입니다.  안나는 카레닌과 결혼한 유부녀였으나 미혼의 브론스키의 열렬한 애정 공세로 결국은 남편을 떠나 그를 택합니다. 그들 사이에 딸도 태어나고, 하지만 둘의 결혼 생활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상이 자리 잡으면서, 안나는 브론스키 말하나 행동하나에 불안해하다가 결국은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을 하게 됩니다. 이해 반해 레빈과 키티 커플은 둘이 결혼생활을 통해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레빈은 귀족이지만, 자신의 영지에서 농민들과 같이 일하면서 잘 농업경영의 꿈을 키웁니다.  키티 또한 레빈의 형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현명하면서 삶에서 탄탄히 자리를 잡아가는 부부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 시사회에는 이 책의 주인공 두 커플을 모셨습니다. 존칭은 생략하겠습니다. 안나와 브론스키 두 분 , 레빈과 키티 두 분입니다. 카레닌 씨에게도 초청장을 보냈지만 거절하셨습니다. 먼저  네 분께  환영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안나: 안녕하세요. 안나 아르카디예브나 카레니나입니다. 

브론스키:  알렉세이 키릴로비치 브론스키입니다. 

레빈: 안녕하세요.  콘스탄틴 드미트리치 레빈입니다. 

키티: 안녕하세요. 카테리나 알렉산드로브나 쉬체르바스카야입니다. 반갑습니다. 


주다주: 먼저 이 소설이 열 번 정도 영화화 되어 있는 사실을 아시나요? 

네 명 모두: 알고 있습니다. 

레빈: 하지만 사람들은 저희 이야기보다는 안나의 이야기를 더욱 흥미로워하시는 것 같아요. 

주다주: 그렇죠? 주인공인 안나의 역은 당대의 최고 아름다운 배우들이 맡는 등 상당한 화제작으로 사람들의 기대감을 높이죠. 왜 그럴까요? 작가는 레빈의 이야기에 좀 더 많은 비중을 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사람들은 왜  안나의 이야기를 좋아할까요? 


안나: 저는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어리석음에 나 자신을 맡기게 되었죠. 하지만 좋았어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렇게 하고 싶지만 못 하죠. 어리석음은 일상의 비참함으로 연결되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저에게 대리만족을 하는 것 같아요. 


브론스키: 사실 당시 러시아의 귀족의 결혼 제도라는 것이 사랑보다는 먼저 영지의 크기를 따져서 하는 것이라 이러한 결혼한 사람의 불륜들이 필요악으로 존재하였다고 할 수 있죠. 그럼으로써 결혼이 유지될 수 있는 것으로 말이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서로 귓속말로 하죠. 하지만 공식적으로 드러내면 안 됩니다. 하지만 안나는 제가 경마 경기에 말에서 떨어지자 걱정을 하면서 모든 사람이 있는데서 이일을 드러냈죠. 어쩌면 용기 있는 행동이죠. 그리고 이것이 안나의 매력이죠.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 열망을 지닌 여자이죠. 


키티: 또 하나는 사람들은 희극보다는 비극을 좋아하죠. 안나의 브론스키 대한 사랑도 그리고, 그에 대한 불안함도 모두 감정의 치달을 수 있는 극한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좋아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주다주: 책에서 보면 브론스키 씨는 나름대로 안나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안나가 남편과 헤어지게 됨에 따라, 안나와 같이 지내기 위해 군대에서 퇴직하고 좋은 환경에서 안나와 아기와 같이 지내려는 노력이 보입니다. 


브론스키: 원래 톨스토이 작가님에게 부도덕한 인물로 찍히면 죽을 운명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나중에 죽겠구나 하고 각오를 했었습니다.  사실 현실적으로 제가 한 사랑에 대하여 나름대로 제가 할 수 있는 한 책임지려 했는데, 결국 안나의 죽음까지 저는 그냥 바람둥이로 각인되지 않았나 합니다. 카레린이 이혼만 빨리 해 주었어도 우리의 사랑의 정당성을 가질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주다주: 브론스키 씨나 카레린 씨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안나에게 배우자로서 나름 최선의 행동을 한다는 느낌이 줍니다. 


안나: 저는 늘 카레린의 행동 하나하나를 비열한 사람의 행동과 눈짓으로만 해석을 해버렸어요. 실제로 그는 젊잖은 행동을 한 것뿐인데요. 결국 카레닌과의 관계에서 나의 카레린에 대한 시선이 브론스키와의 관계에서 그대로 연장되었다고 생각이 되어요.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나의 눈이 나를 향하지 않고 상대방만을 향했기 때문에 모든 문제의 근원을 상대방에서 찾아내려고 했던 것이라는 것을요. 


주다주: 안나는 브론스키와 같이 살면서 브론스키에 집착을 하며 정신착란에 걸린 것으로 나오죠. 브론스키는 그런 안나를 이해할 수 없어하고요. 요즈음으로 보면 산후 우울증으로 진단받아 브론스키와 같이 상담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을 텐데 좀 안타까워요. 


안나: 그렇죠. 제 스스로 아이를 낳은 후 브론스키의 일거수일투족에 제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느끼면서 스스로 자괴감을 많이 느꼈어요. 이것은 제가 어찌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뇌와 호르몬의 문제로 인식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대적 환경에 제가 살았다라면, 저의 삶은 분명히 달라졌을 거예요. 하지만 제 이야기의 흥미로움은 사라지겠죠. ㅎㅎ 


주다주: 자 이제 레빈 씨와 키티씨와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요? 레빈 씨는 후대의 많은 평론가들이 톨스토이 자신의 모습과 생각을 그대로 나타낸 캐릭터로 레빈 씨를 꼽고 있습니다. 농업경영이란 말로 자신의 하는 일을 규정하기도 하고요. 본인은 이거에 만족하시는지요? 그리고 키티씨의 남편으로서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을 알고 싶네요. 


레빈: 예. 아주 만족합니다. 그 당시 러시아는 혼란의 그 자체였습니다. 봉건토지제도를 바탕으로 한 왕정이 무너지는 상황이었고, 그 와중에 사회주의 및 다양한 사상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습니다. 제가 귀족으로 태어났고, 영지를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상황에서 저는 저의 영지에서만큼은 제가 생각하는 경제시스템을 만들기를 원했어요. 할 수 있는 제가 주변으로부터 사회주의자라는 오해를 많이 받았지만, 저는 농민들이 자신의 일 한 만큼 보상받기를 원하는 것이지 모두가 평등하게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그래서 농업경영이란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저는 제가 있는 자리에서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삶을 위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키티라는 여성을 통해 사랑이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었고요. 무얼 더 바라나요? 


키티: 저는 레빈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저를 사랑하는 마음이 분명하고 그리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끊임없이 저에게 이야기해주려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 사람은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다주: 혹시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처럼 불타는 사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보셨나요? 


키티: 그렇지는 않았아요. 저는 브론스키로부터 차였다는 생각에 두 사람의 사랑을 처음부터 좋게 보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레빈에 대한 사랑도 서서히 불이 붙은 편이죠. 하지만 저도 레빈을 사랑했죠. 그를 보면 가슴이 뛰고 행복했어요. 레빈도 너무나 저의 말 한마디에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고요. 그거면 충분했어요. 굳이 사랑을 비교할 필요는 없지요. 사랑을 할 때의 그 가슴 뜀. 그것을 느낄 수 있다면 충분한 것 같아요. 


레빈: 저는 처음부터 키티만 좋아했기 때문에 아무 문제없었어요. ㅎㅎ


주다주: 두 분은 서로 성장하는 부부로서의 전형으로 많이 언급되고 계신데, 실제로도 그렇게 느끼시나요? 


레빈: 제가 개인적으로 키티에게 가장 감명을 받은 것은 마약중독으로 죽어가는 니콜라이 형을 기꺼이 간호하는 키티의 모습입니다. 저는 그 형의 모습이 부끄럽고 키티에게 힘든 일이 될까 봐 안 데리려 가려고 했죠. 하지만 키티가 앞장서서 와 주었고 저의 형을 최선을 다해 간호하는 모습이 성스러웠습니다. 그녀에 대한 존경이 생겼고 사랑이 더욱 커진 것 같아요. 오로지 나만을 사랑해 주는 모습이 기쁨을 준다면 나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나의 삶의 모든 영역을 이해하려 하고 인정해 준다면 기쁨과 동시에 존경심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키티는 저에게 같이 하면 할수록 좀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왔어요. 


주다주: 어떠세요? 레빈 씨, 만약 옛날로 돌아가 젊은 안나 씨를 만나신다면 어떤 사이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레빈: 아마 안나의 미모에 처음에 반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그때 농업경영의 뜻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저의 꿈에 대한 이해나 수용이 없다면 결국 결혼까지 안 했을 것 같아요. 


주다주: 결국 키티와의 사랑이 운명이었네요. 


레빈: 사실 저의 말년에 러시아는 전쟁과 혁명으로 세상이 완전히 바뀌죠. 저의 토지도 몽땅 뺏기게 되죠. 그리고 혁명이 있기 전에도 이미 세상이 바뀌어 갔고 제가 농업 경영을 한다고 했지만, 지주에 대한 농민들의 불신과 분노가 하늘을 찌를 때라, 저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어요. 아마 그러한 현실을 저와 같이 수용하고 살아가려면, 그리고 가끔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배우자의 모습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세상에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키티이더군요. 


주다주: 브론스키 씨는 어때요?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 사랑에 빠질 수 있다면 어떤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은가요? 

 

브론스키: 제가 안나를 사랑한 것은 제 의지가 아니었죠. 그냥 빠진 거예요. 그래서 사랑에 관한 한 저의 의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제가 결혼 생활을 한다면 제 사랑을 분출하는 것을 넘어 좀 더 상대방과의 소통에 신경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안나: 저는 다시 태어나면 사랑을 하고 싶지 않아요. 모든 것이 힘에 겨워요. 하지만 그 순간이 오면 또 사랑에 빠질 것 같아요. 그냥 저란 사람이 그래요. 무언가 나를 채울 것이 강력한 것이 필요해요. 아마 결혼은 하지 않고 커리어우먼으로 지내면서 맘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동거를 하는 식으로 살고 싶어요. 사랑과 일에 대한 열정이 서로 교차할 것 같네요.


주다주: 마지막으로 이 책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입니다.  본인들의 경험에 비추어 이 문장의 의미를 다시 한번  반추해 본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레빈: 저는 행복한 가정은 가족들이 한 방향을 쳐다본다면 불행한 가정은 각각 다른 방향을 쳐다보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키티와 저는 한 방향을 쳐다보고 온 것 같아요. 


안나: 저는 행복과 불행은 서로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넘나드는 것이다라는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제가 가정 행복했던 시절에 불행이 시작되었으니까요.


브론스키: 저는 이 문장이 깨진 유리창의 법칙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구석진 골목에 2대의 차량 주차시켜 두었는데, 차량 한 대는 앞 유리창을 깨진 채로 두었죠. 일주일 후에 보니, 앞 유리창이 깨져있던 차량은 거의 폐차 직전으로 심하게 파손되었고 다른 차는 멀쩡했다고 하죠.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깨진 유리창으로 온갖 쓰레기를 던져 놓고 갔다고 하죠. 가족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그것을 무시하지 말고 최대한 노력을 해서 그 금이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금이 간 곳이 결국 깨지면서 가족의 불행해지는 것 같아요. 


키티: 저는 한 가정이 행복하려면 필요한 요소들이 있다고 생각돼요. 경제적으로도 너무 궁핍하지 않아야 하고, 가족들의  건강이나 원만한 관계 등등이죠. 이 중에 하나라도 나빠지면 그 가족의 행복은 깨질 수 있다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의 행복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죠. 상당한 주의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입니다.  


주다주: 이렇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오늘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다양한 수용의 가능성이 이미 150년 가까이 시대의 차이를 뛰어넘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 위상을 유지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리며 오늘의 시사회 막을 내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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