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다주: 안녕하세요. 제3회 책시사회를 시작합니다. 이번 주 시사회의 주인공 책은 <앵무새 죽이기>입니다. 원제목은 <To Kill a Mocking Bird>입니다. 여기서 mocking bird는 엄밀하게 앵무새가 아니라고 하죠. 흔희 저희가 개똥지빠귀로 익숙한 지빠귀 과의 새로 다른 새의 울음소리 흉내를 잘 내서 흉내지빠귀로 불리는 새이죠. 제목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었기는 하지만 이미 앵무새 죽이기로 책이름이 대중적으로 인식된 후라 나중에 고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소설은 하퍼 리 (Harper Lee)가 1960년 발표되었고 1961년에 퓰리처상을 받을 정도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갖춘 소설입니다. 나중에 영화화되었고 이 또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고전으로서 위치를 굳힌 소설입니다. 흔히 '성경 다음으로 많이 발간된 소설', '4,000만 부 이상이 판매된 소설', '미국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포함된 소설',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위대한 소설 1위' 등의 찬사를 보면 이 소설의 대단함을 알 수 있습니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소개하면,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직후 너무 궁핍하여 모두가 힘들었던 남부 앨라배마주의 작은 마을 ‘메이컴’에 살고 있는 변호사 애티커스(Atticus), 아들 제레미 (Jeremy), 그리고 딸 스카우트 (Scout)의 이야기입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성장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죠. 전반부에는 시골마을의 느리고 고즈넉한 풍경과 분위기, 그리고 그 속의 아이들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후반부에서 흑인 청년 톰 로빈슨이 백인 처녀 메이옐라 (Mayella) 강간한 혐의로 기소를 당하게 되고 애티커스는 톰의 국선변호를 맡게 됩니다. 에티커스는 억울한 흑인 청년을 위해 결정적인 증거와 함께 최선을 다해 변론을 하지만 모두 백인으로만 구성된 배심원들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습니다. 메이옐라의 아버지인 밥 (Bob, Robert의 약칭)이 ‘에티커스’의 자녀들에게 위해를 가하려다가 오랫동안 집안에 운둔하고 있었던 ‘부(Boo)’에게 칼에 찔려 죽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의 처리에 대해 보안관은 밥의 죽음에 대해 밥이 공격을 하다가 실수로 스스로 찌른 것으로 처리합니다.
오늘 시사회를 위해 본 소설의 주인공 애티커스와 제레미, 스카우트 와 집안일을 맡아해 주시는 캘퍼니아 아줌마, 마지막으로 마을 주민이신 모디와 스테파니 아줌마가 같이 자리를 하였습니다. 역대급으로 많은 참석자입니다. 밥유엘씨를 초대하였지만 거절하셨습니다. 먼저 이렇게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주다주: 이 소설을 처음 보는 순간 모두 제목에서 고개를 한 번 갸우뚱합니다. 좀 살벌한 느낌도 있고요. 보통 제목에서 내용이나 테마를 짐작이 가능한데 이 책은 영 그럴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모디 : 애티커스가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총을 주면서 아이들에게 절대 ''흉내지빠귀를 죽이면 안 된다고 하죠. 아이들이 잘 이해를 못 하고 있다가 저에게 질문을 했었죠. 흉내지빠귀새는 흔히 Songbird라고 해서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준다고 인식되어 있어요. 다른 새처럼 곡식을 훔쳐먹지도 않고, 인간에게 그 어떤 해를 끼치지 않고 그냥 아름다운 노래만을 불러줄 뿐이죠. 그래서 흉내지빠귀는 쏘지 말라는 말들을 흔히 했었죠.
애티커스: 이 소설에서는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죠. 사람들의 편견에 의해 희생당하는 억울한 사람들, 즉 톰과 같은 흑인들, 은둔자 ‘부’와 같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죠.
주다주: 그런 사람으로 또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요?
스카우트: 정신적이거나 신체장애자들이 대표적이죠.
주다주: 처음에 스카우트는 은둔 중인 부(Boo)를 거의 유령처럼 여기며 무서워하기만 하였는데 언제부터 그런 친근감을 가지게 된 거죠?
스카우트: 부가 집 앞의 나무에 난 구멍으로 무언가를 넣어 놓았던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껌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본인 탄 메달도 있었고 했죠. 그렇게 주고받다 보니 부가 스테파니 아줌마가 말한 것처럼 무서운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죠. 내가 무서워하던 존재가 나랑 소통을 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그도 어쩔 수 없이 은둔해 있지만 결국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는 선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으로 보면 그는 '자폐 스펙트럼'이 아닌가 싶어요. 그땐 그런 개념이 없었으니 그냥 이상한 사람이 되었고 집에서 나오지 않으니 유령처럼 취급을 당한 것이죠.
주다주: 아이들이 부에 대하여 일종의 공포와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은 스테파니 아줌마의 공이 큰 것 같은데 어떠세요?
스테파니: 저는 그냥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아이들에게 해준 것뿐입니다. 가끔 (머쓱하게) 양념이 좀 들어갔지만요.
애티커스: 양념을 너무 치셨어요. 아이들이 부에 대하여 자꾸 물어보는데, 사실 별로 할 말이 없잖아요. 저도 그를 본 적이 꽤 오래전이니까요. 그래서 그는 안전한 사람이다라고 말을 해도 아이들이 영 마뜩해하지 않더라고요.
주다주: 저는 아직 미성년자인 제레미에게 총을 선물로 주는 것도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애티커스: 미국에서 총소유에 대한 전통은 뿌리가 깊습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은 학교 시스템이 없었고, 막 학교가 조직되기 시작한 때였죠. 일요일이면 교회에 가는 것이 당연한 때였죠. 그래서 지금과 같은 미성년의 개념이 없었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아직도 사람들은 남북전쟁의 에피소드를 늘 이야기할 때였고 사냥이 보편적인 취미 생활이었으니까요. 아이가 사춘기에 들어가면, 이제는 자신을 방어할 수 있게 총을 선물을 주는 것이 관례였죠. 미국에서 총의 소유는 법에 보장된 권리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총기소유 법안에 대한 논의가 있을 때는 '총기소유 금지'가 아닌 '총기소유 규제 (Gun Control)'에서 머물고 있는 것이 그 이유이죠.
주다주: 젬(Jeremy)은 총을 선물 받았을 때 상당히 기뻐하던데 그렇게 좋았어요?
제레미: 너무 좋았어요. 이미 제 친구 중에는 아빠랑 사냥을 같이 가서 짐승들을 잡은 애들이 있었거든요. 그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어른인 것처럼 굴었죠. 그게 좀 부러웠어요. 90년이 넘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이해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긴 하죠.
주다주: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톰의 재판 장면인 것 같은데, 재판을 방청하던 흑인들이 비록 유죄판결이 났지만, 흑인인 톰을 최선을 다해 변호하는 애티커스가 퇴장 시, 모두 일어나서 존경과 감사의 표시를 하는데 애티커스 씨는 어떠셨어요?
애티커스: 메이옐라와 밥(Bob: Rober의 약칭)의 자작극임이 너무 분명한데도 톰에게 유죄 판결이 나올 것으로는 어느 정도 예상했습니다.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요. 하지만 너무 절망스러워서 그걸 인식하지 못했어요. 부끄럽죠. 결국 패한 재판인데요. 밥은 피부색만 그렇지 사는 것은 정말 쓰레기처럼 살았잖아요. 아주 악질적이고요. 그런데도 그가 단지 백인이라는 것 때문에 보호받는 것이 너무 화가 났어요.
캘퍼니아: 저는 우리 변호사님이 너무 자랑스러웠어요.
주다주: 어떤 사람들은 이 소설에서 흑인들이 결국은 백인에 의해 변호되는 점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기도 하던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디 : 흔히 '후대의 오만함'이라고 하죠. 과거의 힘든 시대를 현대의 관점으로 아무렇지 않게 비판하는 것을요. 당시는 흑인들이 노예해방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고, 더구나 남부였죠. 여전히 목화 농사의 일꾼으로, 여자들은 남의 집 식모로만 일을 할 수 있었죠. 흑인 중에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에티커스: 흑인들이 자신들의 말로 자신들의 이야기와 주장을 한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건 불가능했어요. 어디선가 능력 있는 흑인이 나타나서 흑인을 변호한다? 그건 환상이죠. 현실이 아니라. 닥터 킹, 마루틴 루터 킹, 의 그 감명적인 연설이 나올 때까진 기다려야죠.
캘퍼니아: 제레미가 아빠가 재판에 졌다고 시무룩하니까 모디씨가 말하기를 비록 아빠가 졌지만, 미래를 향해, 더 나은 세상을 향해 한 발자국 앞서 갔다고 하죠. 지금 돌아보면 작은 발자국이 아니라 큰 발자국이죠. 당시만 해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니거 (Nigger, 흑인을 비하하는 단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었는데,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가 없죠. 지금은 흑인이라는 말도 거의 안 쓰죠, 아프리칸아메리칸으로 보통 칭하죠 (African American). 빠른 변화입니다. 따라서 애티커스의 톰의 변호는 단지 백인들에게만 변화를 위한 도약이었을 뿐 아니라 저희 같은 흑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죠. 우리 흑인들도 법적으로 동등할 수 있는 만큼 사회적으로도 동등해질 수 희망이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식들이 애티커스처럼 우리 흑인의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기를 원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식들의 교육에 힘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주다주: 그런 흑인을 비하하는 단어나 내용이 그대로 나와 있어서 어떤 주에서는 이 책을 학교에서 읽지 못하게 하였죠.
캘퍼니아: 그건 사실, 그 당시 미국 남부의 현실을 그대로 표현한 것뿐인데, 소설을 소설로 이해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1930년대의 삶의 풍경을 보여주는 소설에서 흑인들을 아프리칸 아메리칸으로 칭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이 책을 학생들이 읽다 보니 흑인을 비하하는 단어들이 노골적으로 나오는 것을 싫어하고 또 어린아이들이 그 언어들을 흉내 낼까 걱정되는 마음은 이해가 돼요.
주다주: 애티커스 씨에게 묻겠습니다. 어떻게 톰을 변호할 용기를 내셨는지 궁금합니다. 마을에서 본인도 아이들이 놀림을 당했잖아요. 솔직히 겁이 나셨을 것 같은데요.
애티커스: 사실 제가 유난히 정의감이 강한 것은 아니죠. 이미 노예제로 바탕으로 한 백인 사회는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붕괴과정을 보고 있었어요. 단지 이전 사회구조에서 유리했던 사람들, 즉 백인들은, 모른 채 하고 있었지요. 혜택을 포기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남쪽과 북쪽은 흑인에 대한 태도에서 차이가 많이 났어요. 당시 대통령 루스벨트나 영부인 엘레노어는 공식적인 행사에서도 흑인들을 단상에 세워 같이 나란히 있기도 했어요. 신문을 읽으면 시대의 변화가 한눈에 들어오죠. 과거의 문제점을 인식한 사람은 그 시대의 변화를 쉽게 수용할 수 있었고, 과거의 자신이 받은 혜택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그 변화를 두려워했죠. 모디와 저 그리고 다른 적은 수의 동네 사람들은 그 변화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의 방향과 일치한다고 믿었기에 할 수 있었어요.
주다주: 아이들에게도 당당한 아빠가 되고 싶기 때문에 용기를 냈다는 말씀도 자주 하셨어요.
애티커스: 그렇죠. 모든 사람은 얼굴색과 상관없이 법정에서 동등하다는 말을 늘 해 왔는데 나 스스로 그것을 저버리는 행동을 하면 아이는 저에게 실망을 할 것이고 어느 순간 불신을 하겠죠. 아빠로서 그것이 제일 겁났어요. 아이가 자라면서 믿을 수 있는 어른이 꼭 있었으면 좋겠고, 그게 저였으면 했어요. 제가 두려움에 제가 그 변호를 안 맡았으면, 제가 저 스스로 불신하게 되겠죠. 그게 더 두려웠던 것 같아요.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이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기대할 수 있겠어요?.
주다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꽤 지났네요. 아직도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은데... 아쉽지만, 이제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흉내지빠귀'와 같이 편견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좀 더 세분화될 수도 있겠죠. 저희는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를 점검하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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