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 대처 대작전
생겨버린 마음의 갭
투자 공부를 시작하면서 전세로 사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인가를 깨달은 후, 전세로는 절대로 살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집을 알아보면서 전세가 아니고서는 살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양가 부모님들이 감사하게도 도와주신 부분이 있었고, 남편과 내가 모은 돈도 있긴 했고, 사실 마음만 먹으면 대출을 더 받아 시작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투자에 대한 확신이 들 만큼의 공부가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수를 두며 집을 사서 들어가는 시작을 하기는 솔직히 겁이 났다. 월세로 살며 돈을 깔지 않고 활용해 볼까도 생각 안 한 건 아니지만, 종잣돈을 모아가야 하는 신혼 시기에 수도권의 웬만한 월세는 출혈이 꽤 심하다고 느껴졌다.
남편과 둘만의 생각으로 결정하기엔 확신이 들지 않아 재무 상담을 받았다. 평소 즐겨 읽고 강의도 들어본 적 있는 부동산 전문가와의 재무 상담이었고, '전세로 시작해도 괜찮다'는 내 생황에 맞는 조언을 얻어 용기를 내 전세를 구하기로 마음을 다시 고칠 수 있었다.
모든 고민은 끝났고, 이제 구해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 문제는 전세를 구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전세를 알아보며 설정한 집의 기준
일단 어떤 집에서 살지부터 정해 보기로 했다. 실거주이기 때문에 집에 있어 나와 남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우선순위로 뒀고, 절대로 '이것 만은 안돼' 하는 포인트는 없을지도 생각해 봤다. 살면서 크게 생각해 본 적 없던 문제였는데 정리하다 보니 '나에게 집'이란 어떤 것인가 나름대로의 첫 기준을 세워볼 수 있어 좋았다.
최우선순위
- 가격 : 0.0억 이내
- 집의 안정성 : 보증보험 가능, 임사자 물건 선호, 등기부등본 깨끗 외 필요한 조건들 (확정일자, 전입신고 등)
후순위
- 역과의 거리 : 최소 도보 15~20분 이내
- 내부 컨디션 : 도저히 못 살 정도 아니면 되긔.. 신혼부부니 만큼 어느 정도 쾌적성 필요 (특히, 창문과 햇볕)
- 크기 : 12평 이상.. ㅎㅎ
집의 종류
일단, 가격 기준에서 아파트에 살기가 어려워 자연스럽게 오피스텔 위주로 찾아보게 되었다. 이때 빌라는 위험성 때문에 살지 않기로 결정해서 보지 않았고, 일부 주상복합과 도시형생활주택, 다세대주택 정도까지는 살펴봤다. (물론, 결론적으로 아파트에 살게 되긴 했지만 말이다.)
한 달 동안 매주 토요일 매물 임장 진행, 총 본 물건의 수 34개 ㅎㅎ..
무조건 많이 보는 게 좋은 건 아니겠지만 일단 돌아보면서 집을 찾아보려 노력했다. 부동산의 문을 거침없이 두드렸고, 열정적인 사장님께는 내 마음을 이래저래 전달하면서 원하는 집을 갖기 위해 마음 쓰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남편과 나는 우리가 '원하는' 집과 우리가 '살 수 있는 집'은 이렇게 다른 점이 있구나를 느끼게 되었고, 어떤 비슷한 특징을 추릴 수 있다.
- 예를 들어, 우리가 괜찮다고 했던 집들의 특징으로 신축은 꽤 있지만 그에 따른 몇몇 불안정성이 있고
- 내부 컨디션은 괜찮지만, 외부 주차 여건이 마땅치 않다 등의 약간의 불편함을 동반하는 것 등이었다.
절대로 안 되는 것
수많은 제약 조건 가운데 남편과 나는 적절하게 타협을 해 나갔다. 예를 들어 처음엔 무조건 역세권이어야 한다는 것에서 나아가 정류장이 멀지 않다면 버스를 타는 거리도 고려하게 되었다. 하지만,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너무 작지는 않은 공간감'이었다. 같은 평수라도 구조가 달라 답답한 집은 살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이 거의 강한 확신으로 들었고, 재택의 비중도 높은 나로서는 집을 보면서 이것이 점점 더 큰 기준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평수/구조의 하한선을 명확하게 정하고, 다시 필터를 적용해 우리가 원하는 최소한의 선에 맞는 집을 찾기 위해 네이버 부동산을 쥐 잡듯이 뒤졌다.
한 달 34개 매물 임장의 복기
반드시 기억하고 싶었다. 부담, 압박감, 분노의 감정 등 다양한 경험을 꽤나 했는데, 이걸 나중에도 잊지 않고 잘 활용해보고 싶어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 집에서 산지 10개월 차에 접어들었지만..!)
빨리 계약해야 한다는 압박감
집을 빨리 구하고 결혼을 준비하는 분들도 많다는데, 나는 그렇지 않아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회사 일, 투자 공부, 실거주 집을 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누적되면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마음 상태를 갖지 못하고 자주 흔들렸다.
조급함은 언제나 악수를 두게 될 수 있으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가지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때 이걸 절실히 느꼈다. 다음에 집을 구할 때, 투자로 집을 매수하게 된다면 이걸 반드시 기억하고 싶다.
임대인의 납득할 수 없는 2가지 요구
'아 여기다' 생각해 계약하려 여러 가지 계약 관련 디테일한 사항을 이야기 나누던 중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1. 법인 사업자의 이상한 요구
"법인 임사자라 보증보험 의무 가입이다. 하지만, 요율이 너무 세서 임차인 스스로 직접 드시되, 임대인이 전액을 다시 송금하겠다. 그러고 나서는 사실상 75%만 부담이니까 손해 보긴 싫으니 매달 3만 원씩 총 72만 원을 돌려달라(?)"
ㅋㅋㅋㅋ 이게 무슨 개소리지?
일단 우리 스스로 보증보험을 들고 다시 돌려주고 하는 것까지는 여차저차 이해했다. (저 요율이 대체 어떻게 얼마나 책정되는지는 찾아보긴 했는데, 아주 100% 깨끗하게 이해는 하지 못했다..)
그런데 72만 원을 돌려달라는 말씀이 무슨 소리일까 싶었다. 나는 25%의 분량은 임차인 부담이니까, 예를 들어 보증보험 100만 원이라면 25만 원만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본인 기준에서 손해만 생각하시니까 이해가 안 되어서. 나는 50만 원을 왜 더 내야 하는 걸까?
그래서 거절했다.
2. 두 번째 주말 잔금 요구
"잔금을 일요일에 하고 싶다. 현재 살고 있는 세입자가 강하게 원한다"
전세 계약 시, 1순위 대항력을 가지려면
1) 평일 오전에 잔금치르고 > 당일 확정일자, 전입신고, 보증보험 모두 가입 완료하기
2) 특약 사항에 우려사항 잘 포함하기
이렇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입신고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갑분 일요일에 잔금을 치르자고 하니 크게 반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럼 대항력, 법적 유효한 부분이 월요일이 아닌 화요일부터 생기는 게 아닌가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음.. 일요일에 인터넷으로도 신청 가능하셔서, 그럼 월요일부터 되지 않을까요?"라는 대답이었다. 무책임하고도 무책임하다. 모른다고 하면 차라리 이해했을 텐데 불확실하게 질문형으로 말씀하시니 더 반감이 들었다.
그래서 거절했다.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다
작년 말 전세 계약을 마치고 산지, 어느새 10개월 차다. '전세로는 살지 않겠어!'라고 소리쳤던 다소 부끄러운 지난날들을 뒤로하고, 나는 집에 너무 큰 흠집을 만들지 않으려 나름대로의 모범적인 세입자로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오늘도 부동산 책을 한 권 더 샀고, 커뮤니티에 들어가 사람들과 이 아파트, 저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한남동의 지도를 보면서 내가 꿈꾸는 그 집의 거리뷰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나는 말이지. 포기하지 않을 거다.
전세를 구하며 느낀 몇 가지 슬픔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앞으로는 '이렇게 해봐야겠다'는 레슨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말이지.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볼 거다.
언젠가, 어딘가에 있을, 멋진 나의 집
그곳의 등기를 치는 그날을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