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
나는 게임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좋아한다. 특히 코로나로 집콕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게임을 하는 시간이 늘었다.
최근엔 RPG(ROLE PLAYING GAME)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몬스터를 사냥하고 레벨업을 했다.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퍽 재밌었다. 이런 내 모습을 동생이 보더니 호기심을 갖고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캐릭터 직업이 뭐야?"
"능력치는 어떻게 돼?"
"무기랑 장비는 뭐 꼈어?"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내 게임 캐릭터를 찬찬히 살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에이, 이렇게 하면 안 되지"
동생이 말하길, 내가 장착한 아이템은 너무 성능이 낮고 잘못된 방향으로 강화해서 캐릭터 능력치가 낮았다고 한다.
"몬스터 한 방에 안 죽지? 성능이 낮아서 그래"
동생은 본인이 해결해주겠다면서 아이템의 성능을 전문적으로 분석해 놓은 자료를 보여주며 좋은 아이템을 찾는 방법을 알려줬다.
추가 공격력이 어떻고, 강화 확률이 어떻고, 세트 효과는 어떻고...
게임을 즐기는 나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생각보다 복잡했다.
"이 정도로 바꾸고 다른 것들은 돈 모아서 나중에 사"
동생 말대로 몇 개의 아이템을 바꾸니 캐릭터의 능력치는 이전보다 확연히 좋아졌고 몬스터를 사냥하고 퀘스트를 수행하는 것도 이전보다 쉬워졌다.
그렇게 게임에 열정적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다음 날부터 게임이 그냥 하고 싶지가 않았다.
열기가 확 식어버린 느낌이었다. 너무 급격하게 바뀌어서 스스로도 신기했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봤을 때 확실한 점이 하나 있었다.
더 이상 게임이 내게 게임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이전엔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했던 게임이 이제는 꼭 레벨업을 위한 정해진 방식을 따라야 될 것 같은 압박이 느껴졌다. 돈을 모으고 정해진 아이템을 사서 강화하고 레벨업을 하는 것이 꼭 또 다른 현실을 마주 보는 느낌이었다.
현실에도 게임처럼 다수가 공감하고 따르는 성공의 공식이란 것이 존재한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스펙을 쌓아서 취업을 하고, 어느 정도 돈을 모아서 집을 사고...
우리는 이 공식을 따르기 위해 매우 애를 쓴다.
내가 마음대로 게임을 해서 재밌었듯이 공식의 존재를 모르고 따를 필요성도 몰랐던 순수했던 어린 시절엔 작은 것에도 마냥 즐거웠던 것 같다. 어른의 책임감과 공식의 존재를 깨닫고 수행에만 집중하면서 이전에 느꼈던 반짝이는 순간의 즐거움들의 의미는 퇴색되어 갔다.
아이돌 신규 앨범에 열광했던 친구들과 이제 집은 언제 살 수 있을지, 주식시장이 어떤지를 이야기하고,
웃음이 나왔던 지나가는 낙엽이 이젠 의미 없이 느껴지는 것처럼.
이제는 눈이 내린다고 하면 설레기보다 교통체증부터 걱정한다.
어른으로서 스스로를 책임지는 삶은 어쩌면 순수함을 대가로 얻는 것 같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한편으로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