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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Breeze Aug 09. 2022

나는 생각보다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이 어리고 연차가 낮다고 해서, 잃고 싶지 않은 것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일을 좋아하는 워커홀릭이라고 생각했었다. 팀플이나 대외활동으로 하나씩 성과를 만들어 낸 경험이 너무 좋아서 평일 저녁시간은 물론 주말까지 일에 내어주곤 했었다. 동아리에서도 술 마시면서 놀기보다 일을 더 많이 했었으니까 말 다했다. 그래서 당연히 회사랑은 정말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뭔가를 해내고 있다는 것이 스스로 대견스러웠고 즐거웠다. 확실히 규모와 파급력 측면에서 크기와 범위가 컸기 때문에 배우는 것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야근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일이 많아서, 몇 시간 넘게 꽉 찬 지하철에 몸을 끼여 태우고 가서, 비가 와서 침수되는 상황에도 꾸역꾸역 출근하는 스트레스들이 쌓여서 깨달은 것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주도권을 잡을 수 없었고 문제 그대로를 바라보고 원인 분석과 해결을 하기보다 윗사람의 지시와 전통에 의해, 단순 보고를 위해 무의미하게 행해지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가끔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스무고개 하듯 맞춰서 실행해야 할 땐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무엇보다 라떼는 말이야가 가득한 상황에서 내가 하는 이야기는 일의 담당자로서가 아니라 저연차 사원의 이야기로만 전달돼 공식적인 메시지임에도 불구하고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분명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은 일의 주도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가 시킨 일이 아닌 스스로 의도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주도권은 대개 팀장 이상에게 주어진다. 그리고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것이 아니라면, 팀장이 되기 위해 최소 10년 이상의 연차가 필요하다. 외국은 연차가 높을수록 능력이 높다기보단 낮다고 생각하는 편견이 있다고도 하는데 유교문화 기반이고 권력 거리가 큰 한국은 나이, 짬이라고 부르는 연차가 권력의 원천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나의 일을 하기 위해 원기옥을 모으듯 참고 견디는 길고 긴 인내의 과정이 성격 급한 나에겐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진다. 물론 지금도 아주 작은 부분부터 바꾸는 것을 시도하면서 얕은 주도권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연차가 낮아도, 나이가 어려도 한번쯤은 내 일에 대한 온전한 주도권을 잡고 싶다. 주도권에 대한 답이 해외취업, 퇴사, 창업이 될 수는 없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연차에게도 주도권을 주는 회사로의 이직도 가능한 답이 될 수 있겠지만 이런 회사는 매우 적고 언제까지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 없다.


나이와 연차는 자연적이다. 누구나 동일하게 나이를 먹고 한 회사에 가만히 있어도 연차는 쌓이기 때문에 보편적이다. 그렇다면 보편적이지 않으면서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으로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프렌치와 레이븐은 권력을 다섯 가지로 설명하는데 규정과 법에서 나오는 합법적 권력, 경제적 보상을 토대로 나오는 보상적 권력, 처벌로 나오는 강압적 권력, 매력에서 나오는 준거적 권력, 전문적인 지식에서 나오는 전문적 권력으로 나눠볼 수 있다. 여기에서 조직을 거치지 않고 개인으로부터 나오는 권력은 준거적 권력과 전문적 권력이다.

멋있는 외모와 패션, 실력있는 라이브와 춤으로 인기를 끄는 아이돌이 소속된 회사와 상관 없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연차에 따른 권한 취득 즉, 조직을 거치지 않은 채로 권력을 취득하려면 매력적이거나 전문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나의 살갑지 않은 성격은 인간적 매력을 키우기엔 부족하고 매력이라는 건 워낙 호불호가 갈린다.

그럼 답은 하나다. 전문성. 경력이 20년 넘은 학사 졸업 법무팀 담당자보다 20대 변호사의 말을 더 신뢰하듯이, 사람들은 경력이 긴 사람을 신뢰하면서도 그보다 유능함을 더 확신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전문성이란 증거를 선호한다. 석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하거나, 전문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처럼 어느 누구에게도  취향을 타지 않고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들이다.


실제로 권력 유형별 효과성을 따져보았을 때도 합법적 권력보다 전문적 권력이 내면화를 이끌어내 다른 사람의 자발적인 행동 변화를 얻기 쉽고 그들의 직무 만족, 몰입, 성과가 높다. 보상적 권력, 강제적 권력과 비교해도 동일한 결과가 나타난다. 쉽게 정리하자면, 전문성은 권력 행사를 받는 사람에게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스스로 뿐만 아니라 결과까지 좋다면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전문성 취득하는 것이 주도권 획득에 구체적으로 얼마만큼의 시간을 줄일 수 있을지는 사람마다 다르고 예상할 수 없다. 하지만 지름길이 되지 않더라도 조금 멀어도 유리한 길이 될 것이라는 것은 확신한다.



공부는 끝이 없다는 것을 또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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