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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Breeze Sep 14. 2022

예술가를 동경하며

그들이 부러운 진짜 이유

그림, 음악, 연기 등등 예술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멋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범접할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관에서 무언가 창조해 내는 모습은 멋있기도 하고 숫자로 표현되는 세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계량할 수 없음’을 만들어내는 직업이라는 점은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들처럼 되고 싶단 마음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이던 어렸을 땐 장난처럼 친구들이랑 엄마 몰래 도전할 계획도 했었고 대학 땐 동아리로 이것저것 기웃거리다가 취직 이후엔 본격적으로 그림이나 작사도 배우기도 했다.


덕분에 어디서 주워들은 것들은 많아졌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예술가의 범접할 수 없는 경계선을 크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봉테일’ 봉준호 감독처럼 배우들의 아주 작은 디테일을 캐치해서 끌어올리는 연출을 지향했지만 공부해도 나에겐 그 미세한 차이가 잘 감지되지 않았고, 서지음 작사가처럼 장면을 상상하게 만드는 달달한 가사를 짓고 싶었지만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결과물이 완성됐다.

황새를 쫓던 뱁새가 자신의 짧은 다리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달까.


최근 우연히 창의력에 대한 주제를 접하게 됐다. 창의력, 예술가의 원천인 이 힘을 키우기 위해선 자율성은 득이 되지만 정답을 찾으려는 압박은 오히려 실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왜 예술가를 동경하는지에 대해 단순히 멋있기 때문에란 말로 온전히 표현할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들의 자율성이 부러웠고 늘 열망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화가로서 그림을 누군가가 정해준 대로 계속 그려야 한다면 금방 싫증을 느꼈을 것이다.


‘자율’은 ‘자유’와 유사하면서 다르다. ‘자유(自由)’는 사전적으로 외부적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지 않고 자기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하고 ‘자율(自律)’은 남의 지배나 구속을 받지 아니하고 자기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어떤 일을 하는 일 또는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여 절제하는 일을 말한다. 신기하게 자유는 행동, 자율은 ~하는 일로 정의되어 있다. 그리고  자율의 율은 律(법칙 률)이란 한자가 사용되었다.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율은 그냥 마음대로 엉망진창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철칙에 따라 일을 하는 것이다. 마치 장인정신처럼.


자율성을 추구하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생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한다. 에릭슨의 성격발달이론에 따르면 1~3세 때 자율성이 성격으로 형성되고 자기결정성이론에서는 자율성은 기본 욕구라고 본다. 자라나면서 접하는 환경 등에 따라 구현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누구나 자율성을 억압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조직에서도 자율성은 창의력뿐만 아니라 직무 만족에도 영향을 주는 요인이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여러 요소 때문에 적극적으로 실행되고 있진 않아 보인다.


때론 밀고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황금곰상 등 여러 상을 휩쓴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는 배심원 모두가 아버지를 살해한 소년의 유죄를 주장하지만 단 한 명만이 무죄를 주장한다. 11:1이라는 숫자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 설득에 성공하고 소년은 무죄로 풀려나간다. 한 사람이 전체를 바꾼 셈이다. 조직도 결국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 사람의 변화는 다른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준다. top-down형태의 당장의 큰 변화가 없더라도 bottom-up으로 작게 시작할 수 있다.


‘아무튼 출근’ 프로그램에 출연하셨던 이동수 대리님이 자율성을 실천하고 있는 하나의 바람직한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간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라는 모토로 회사에서 스스로 통제권을 쥐며 일하고 필요하다면 본부장, 사장과의 대화도 서슴지 않는다. 처음엔 혼자만의 원칙이었을지 몰라도 방송 이후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나를 포함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결론적으로 난 예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예술가의 일보단 예술가의 환경을 꿈꾸는 사람이다.

그리고 누군가 이런 환경을 제공해준다면 정말 편하겠지만 없다면 당장은 불편하더라도 내가 먼저 만들어가 보려고 한다.



세상은 나를 우러러볼 것이다.
어쩌면 나는 경멸당하고 오해받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위대한 천재가 될 것이고,
그것만은 확실하다.
-살바도르 달리


이상한 화가의 그림들이 초현실주의의 대표작이 되었듯이 나의 자율성이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확장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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