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은퇴, 노후의 관계
유튜브에서 초호화 실버타운 영상을 봤다. 여러 소모임으로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고 일주일에 두 번 청소를 해주고 건강한 음식도 나와서 집안일도 거의 할 필요도 없다. 만약 아프다면 짧은 시간에 곧바로 병원에 이송되는 편리함도 갖췄다. 이런 게 바로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 노년에 겪는 평화인건가 싶을 정도로 완벽한 삶의 단편처럼 보였다. 문득, 나도 화면 속의 그들처럼 미래에 나이가 들고 은퇴를 했을 때 평온한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사실 아직까지 노후를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젊었을 때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하는데 내일, 내년도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40년 뒤의 삶이란 미지의 세계다. 가까운 미래를 먼저 준비하며 차근차근 먼 미래까지 탄탄해지길 바랄 뿐이다.
간혹 은퇴와 노후는 비슷한 의미로 활용되는 듯하다. 노후는 ‘늙어진 뒤’라는 뜻이지만 은퇴란 말엔 ‘세속의 일에 손을 떼고 한적하게 사는 삶’이란 의미가 있다. ‘파이어족’처럼 노후가 아니더라도 30~40대에 빠른 은퇴를 하는 사례가 있는 걸 보면 두 단어는 같은 말이 아니다.
은퇴 후라고 하면 자유롭게 세계여행을 다니고 안락한 모습을 흔히 생각한다. 그런데 의외로 은퇴를 하고 나서 상실감과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렇게 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은퇴 후에 다시 재취업과 창업으로 또 일을 찾는다. 금전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사회적 소속감과 지위에 벗어난 삶에 대한 공허함이 크다고 한다.
금전에 대한 논의는 잠시 제외하고 일과 은퇴만 고려해 보려 한다. 은퇴의 의미가 진짜로 ‘일에 손을 떼는 것’일까.
은퇴 후 사람들의 행보를 생각해보면 ‘아니오’라고 답할 수 있다. 다만 하게 되는 일은 달라지는 듯하다.
업무 때문에 대여했던 카페에서 사장님과 오래 이야기를 나누게 된 적이 있다. 교육업에 오래 계시다가 퇴직 후 카페를 열게 되셨는데 가게로 얻는 수익은 적지만 음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이 크다고 말씀하셨다. 오히려 재료에 비용을 투자해서 남는 게 거의 없다고 하셨다. 절대적인 수익과 관계없이 자신의 일을 설명하고 있는 사장님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나 역시도 은퇴 후 삶을 상상했을 때 바닷가 근처에서 게스트하우스 같은 걸 열고 한적하게 지내거나 작은 꽃집을 열어서 매일 꽃을 보며 잔잔한 삶이 그려진다. 은퇴 전과 업종만 달라졌을 뿐이지 일을 하는 모습을 꿈꾼다.
유튜브에서 파이어족의 삶을 사는 사람이 조기 은퇴는 언제든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의 말처럼 단순히 일을 그만두는 것뿐만 아니라 시작하는 것도 본인이 정할 수 있는 상태가 진짜 은퇴와 가깝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은퇴를 두려워하고 또 누군가는 은퇴가 오길 기다린다. 어떤 사람에겐 수년간 거의 한 회사에 기여하다가 “뭘 해야 할까”란 숙제를 또다시 마주하게 되는 시기일 수도 있다.
2020 고령화 연구 패널 기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연령이 높을수록 계속 일하겠다는 응답 비중이 높다. 나이가 많을수록 일에 대한 욕구와 의지가 높은 것이라고 해석된다고 한다. 노후에도 여전히 일을 고민하고 일에 대한 열기가 남아있다.
인정하기 싫을 수도 있지만 우린 일과 멀어지길 바라면서도 결국 평생 일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퇴는 의미가 있다. 스스로 일과 삶을 조절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나는 빠른 은퇴를 꿈꾼다.
은퇴: 스스로 결정하는 새로운 일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