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 일기

떠돌이 인생

by 낫투비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의식주라고 했다. 삶에 대해 그 누구보다 진심이었기 때문일까, 나는 옷에 대한 욕심도 많고, 먹는 것에 진심을 다하며, 무엇보다도 소라게처럼 이리저리 빈집을 떠돌아다니며 내 보금자리를 찾아 헤매는 삶을 살아온 인간이었다.

내 이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23년 전, 전남에서 제주로 옮겨온 것이 시작이 되어 서울, 부산, 호주 등을 떠돌아다니다 최근엔 대구, 순천, 청주 등 일을 핑계로 각 도시에서의 한 달 살기까지 섭렵한 것이었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 삶을 살아가는 나를 보며 어른들은 '쟤가 저렇게 사니까 결혼할 생각도 안 하고 불안정한 삶을 살지.' 라며 아빠를 타박했다. 그 말에 나는 격하게 공감을 하며 아빠가 은근슬쩍 잔소리처럼 결혼 얘기를 꺼낼 때마다 나는 남인 척 내 인생에서 한 발 물러나 남들이 했던 말들을 내 속마음인 양 꺼내놓았다. 불안정한 내 삶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어차피 결혼을 해도 불안정한 삶인 건 마찬가지일 텐데. 혼자서 외줄 타기를 하느냐 둘이서 외줄 타기를 하느냐 그 차이일 뿐인데 뭐. 짧지 않은 이사의 역사를 가진 산 증인으로서 나는 쓸데없는 나만의 개똥 철학을 갖게 되었다.

집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기운이 있다.

샤머니즘의 냄새가 솔솔 풍기는 이 말을 나는 아주 굳게 믿으며 살고 있다. 특히 이전에 살았던 세입자들이 있는 집의 경우는 더더욱 그 기운이 크게 느껴진다. 처음 서울로 상경해서 구했던 집은 5평 남짓의 작은 원룸이었다. 그 코딱지만 한 공간도 나름 집이라고 냉장고며 책상이며 오밀조밀 잘도 끼워 넣어진 집이었다. 창문을 열어봤자 옆 건물의 벽이 보이는 뷰라 개방감이 생기거나 하지도 않는 집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집이 꽤 마음에 들었다. 왠지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에 덜컥 계약을 하고 보니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코가 시뻘게져서 들어간 집이라 그랬나 보다. 하지만 난 그 좁은 집에서 꿈을 키우며 차근차근 한 걸음씩 내딛으며 성장했다. 그 좁은 집이 더 좁아질 때까지. 서울로 올라가는 걸 반대했던 아빠는 2년간 전화 한 통 하지 않고 철저히 나를 무시했다. 하지만 친척의 결혼식에 간다고 올라왔다가 가정방문을 하는 선생님처럼 내 좁은 집에 들어와 보고는 방바닥에 앉지도 못하고 서성대다가 내 잔소리를 듣고서야 불편한 헛기침을 하며 슬그머니 앉았다.

"안 무너져."

그날 이후 엄마는 아빠를 설득해 내게 보증금을 올려 더 큰 집을 갈 수 있도록 돈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나는 5평짜리 집에서 7평짜리 집으로 내 덩치에 걸맞은 신분 상승을 했다. 그런데 그 집은 왠지 모르게 서늘한 곳이었다. 분명 집은 더 넓어졌고 주인이 직접 설계해서 지은 세련미가 넘치는 집이었지만 난 여전히 5평짜리 집에 꽉 끼어 살아야 편한 사람이었나 보다. 이리저리 집을 포근하게 만들어 보려 난생처음 러그를 사서 깔아도 보고 5평짜리 집에선 꿈도 못 꿨던 작은 침대도 사서 넣었지만 그 집은 전혀 편해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서울생활의 쓴맛을 보고 짐을 싸서 제주로 돌아왔다.

내 새로운 여정이 다시 시작된 곳은 부산이었다. 젊을 때부터 뾰족구두를 신고 핸드백만 들고 다녔던 작은 이모는 부산에서 부동산을 하시는 분이었다. 그래서 내게 집은 걱정 말라며 돈만 준비하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들어가게 된 집은 정말 멋있는 아파트였다. '성공한 여자는 이런 집에 살아야 돼.'라며 집을 안내하는 이모의 말이 왠지 낯설고 불편했다. 마찬가지로 그 집도 그랬다. 너무나 예쁜 집이었지만 나는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참 이상하게도 그 집에 들여놓은 가구들도 그러했다. 여기도 놓아보고 저기도 놓아보고 배치를 몇 번이나 바꿔도 맞는 자리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 집에서 1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제주로 돌아왔다.

그 후로 제주에서 살던 집에선 모두 처음 집을 계약할 때 들었던 내 첫인상대로 인생이 굴러갔다. 왠지 이 집에 살면 연애를 하지 않을까 싶었던 도남집에선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었고, 물론 이사를 가면서 그 기운도 사라져 버렸지만... 여기선 왠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삼양집에선 말 그대로 일이 끊기지 않는 삶을 보냈다. 그리고 집은 맘에 들었는데 계약하던 날 집주인이 슬쩍 흘린 이전 세입자의 이야기에 찝찝했던 지금의 집에선 골골대는 일이 잦아서 어서 다음 이사 갈 집을 고르고 있다.

다음 집에서 들게 될 나의 첫인상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며 새로운 집에 들어가게 될까. 그리고 그 생각은 내 삶을 또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까.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나는 다음 챕터를 준비한다. 내가 마음먹은 대로, 생각하는 대로 내 인생이 흘러갈 수 있다는 멋진 개똥 철학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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