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없는 반복이 쌓이면

by 낫투비

본래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고작 10분 거리에 있는 은행에 가면서도 나는 차에 시동을 거는 사람이었다. 차는 인간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고 나는 그 편의를 누리는 걸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나마 내가 꾸준히 하고 있었던 운동은 스쿼시였다. 그마저도 내 의사가 아니었다. 무료로 하는 운동은 포기하기가 쉽다며 일부러 돈을 내는 운동을 눈 딱 감고 1년만 다니라고 했다. 레슨비를 낼 돈이 없으면 엄마가 기꺼이 지원해 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엄마의 얇은 주머니를 털고 싶지 않아서 기꺼이 좋아하는 운동에 투자하는 척 거짓된 취향을 꾸며내어 스쿼시를 다녔다.

스쿼시는 참 신기한 운동이었다. 일년이 지나도, 이년이 지나도 좀처럼 재밌어지지가 않았다. 둘이서 하는 운동을 혼자 배우러 다녀서 그랬던 걸까. 딱 30분만 하는 레슨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면 나는 그 이후 칼같이 집으로 돌아와서 땀을 씻어냈다. 엄마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수영으로 도민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재능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수영과의 질기고 질긴 인연은 소위 '돈이 아까워서...' 시작된 것이었다. 굽은 어깨를 좀 펴보려고 이런저런 운동을 알아보던 중 그나마 저렴한 동네 체육센터의 수영 강습을 알게 되었고 분위기에 휩쓸려 수영장에 갔다고 했다. 체력이 부족했던 탓에 처음엔 수영을 하고 나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지쳤다고 했다. 그래도 이미 결제해놓은 수강료가 아까우니까 꾸역꾸역 나갔단다. 그래서인지 내 기억엔 엄마가 수영 갔다 돌아와서 아주 세상 모르고 낮잠을 자던 모습이 선하다.

그렇게 엄마가 알려준 방법을 따라가며 나는 열정도 없이 스쿼시를 5년이나 다녔다. 그리고 구력이 5년이나 된다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모두 나를 놀랍게 쳐다보며 '굉장히 잘 치겠네요.' 라는 말을 인사치레로 했다. 하지만 참 부끄럽게도 나는 여전히 초보의 실력을 벗지 못한 5년차 아마추어였다. 그리고 운명적으로 내게도 도민체전에 출전할 기회가 왔다. 선수가 부족하다는 말에 홀린듯 경기를 등록했다. 별다른 훈련도 하지 않고 우물쭈물하다보니 어느덧 일요일 아침, 나는 코트에 덩그러니 경기를 위해 남겨지게 되었다. 경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잘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나마 5년도 시간이라고 서브를 받기 까다로운 지역에 넣는 걸 몇 번 성공하고 나니 목엔 동메달이 걸려 있었다. 어리둥절한 마음에 받아든 메달이 마치 금메달이라도 되는 것마냥 기뻤다. 열심히 훈련을 한 것도, 그렇다고 아주 멋진 실력으로 이긴 것도 아니었기에 축하를 받는 것이 멋쩍어서 홀로 자축 파티를 했다. 와인 한 잔과 좋은 치즈를 앞에 두고 메달을 만져보는데 괜히 엄마 생각이 났다.

'수강료가 아까워서 꾸역꾸역 다녔더니 메달이 생겼네.'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나왔다. 이걸 제목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어그로 끌지 말라는 악플이 달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어때. 진짜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는 걸.

그런데, 그 날 이후로 참 이상한 일이 생겼다.

그렇게 걷는 걸 싫어하던 내가 어느 날 올레길을 걷기 시작하더니 오름을 오르고, 크로스핏과 필라테스에, 러닝까지 시작을 한 것이다. 10분 거리도 차가 있어야만 움직이던 내가 이제는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출발해서 '나 걸어가는 중.'이라는 말을 친구들에게 하는 일이 꽤 쉬워졌다. 어느새 옷장엔 외출복만큼 운동복이, 신발장엔 구두보다 운동화가 많아졌다.

스쿼시에 사용하는 고무공은 처음엔 차가운 상태에서 시작한다. 이는 잘 튕겨지지 않아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반복적으로 바닥이나 벽에 튕겨서 열을 내는 워밍업의 과정을 거쳐서 사용한다. 그 워밍업은 그저 재미없는 직선 코스로 고무공을 수십번 반복해서 쳐낸다. 그 무덤덤한 행동의 끝에 어느 순간 공은 뜨겁게 열이 오르고 살아나기 시작한다. 그저 열정없이 시간에 맞춰 레슨장에 가고, 라켓을 들고, 벽에 공을 튕겨냈을 뿐인데... 그래, 스쿼시는 참 신기한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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