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아래, 불편한 동거

같은 공간에 있지만 함께였던 적은 없었던 1년

by 낫투비

"네, 거기 살아요. 그런데 제 집은 아니고요."

마음에도 없는 자리에 앉아서 어색한 웃음을 짓느라 얼굴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그리고 불쑥 들어온 질문에 조금은 퉁명스럽게 한 마디를 던졌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더니 '월세인가요?'라며 넌지시 묻는다. 마음 같아서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진실이 들통나기 쉬운 관계였으니 사실대로 말해주기로 했다.

"아빠 집이요."

빤히 그 사람을 쳐다보자 멋쩍은 듯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켠다. 그리고 나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이번에도 결혼은커녕 연애도 시작하지 못하겠군. 어차피 마음에도 없는 자리였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괜히 신경질이 나서 5분 거리를 빙글빙글 돌아 30분 만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딛자 온 세상에 있는 벌레들이 나를 향해 언성을 높이며 성질을 부리는 것만 같다. 시끄러워 죽겠네 진짜.

현관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고작 9시인데 이미 깜깜하게 불이 꺼진 집 안을 괜히 환하게 밝힐 마음은 없었다. 30평의 집에서 내가 차지한 공간은 고작 2평 남짓 되는 작은 방이었다. 이 집에 들어와 살겠다고 마음을 먹은 그날부터 나는 이 작은 방이 내게 주어진 온 세상인 것마냥 벗어나질 못했다.

아빠가 바랬던 건 단 하나였다. 나나 동생이 집에 들어와서 같이 사는 것. 어릴 때부터 머리가 잘 돌아가던 영특한 동생은 이미 제주를 떠나버린 지 오래였지만 한국의 대단한 K-장녀로 커온 나는 왠지 모를 비장한 사명감에 제주를 떠나지 못했다. 내가 제주에 붙어 있을 이유가 되어준 엄마가 세상을 떠난 그날, 과감하게 제주에 대한 미련을 버렸어야 했는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몰라도 부산이며 충청도며 전라도를 떠돌다가도 나는 어느새 제주로 돌아와 있었다.

"이제 엄마도 안 계시니 너도 마음이 자유롭겠네. 영국에서 공부나 하면서 몇 년 살다가 와."

내 역마살을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은 다들 쉽게 한 마디씩 던졌다. 그리고 나는 그 말에 한 번씩 휘청일 때마다 해외취업 사이트와 해외 대학원 입학 전형을 살피면서 인생에 다시없을 진지한 고민을 했다. 길고 긴 고민이 무색하게 나는 아빠의 말 한마디에 와르르 무너져 제주에 남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요즘 좀 우울하더라고."

엄마의 납골당에 다녀와 점심이라도 먹자던 조촐한 추석이었다. 가을바람이 쓸쓸해서였을까. 왠지 그날따라 쉽사리 걸음을 떼지 못하고 엄마의 사진을 미련스럽게 쳐다보던 아빠의 모습에 연민이 생겼다. 때마침 월세 계약은 끝나가고 있었고 집주인은 월세를 올렸다. 일에 치여 새 집을 구할 여력도 없었던 나는 무심코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아빠 집에서 몇 달만 지낼까 해."

아빠는 깜짝 놀라서 나를 쳐다봤지만 이내 어색하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나는 아빠의 뒤통수에 대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다음 집 구하기 전까지만 살 거야. 딱 3개월.

아빠는 내게 현관문 비밀번호와 집 키까지 줬지만 나는 비밀번호는 기억할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처음 한 주 동안은 집에 들어가면서도 초인종을 눌렀다. 아빠는 주방에 뭐가 있고 세탁실과 창고엔 뭐가 있는지 하나하나 설명했지만 나는 늘 필요한 게 있으면 집이 떠나가라 아빠를 불렀다. 주방에 있는 아빠의 그릇 대신 내 그릇을 필요한 것만 그때그때 이삿짐 박스에서 꺼내 썼다. 매 끼니마다 우리 집은 두 번 상을 차렸고 두 번씩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그마저도 불편해진 나는 밥 대신 빵으로, 작디 작은 내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 끼니를 해결하느라 더 이상 아빠랑 마주칠 일이 없었다.

은퇴한 지 2년이 된 아빠는 왕년에 회사를 다녔던 시절처럼 새벽 6시에 집을 나가 밤 9시가 되어야 집에 들어오곤 했다. 주말도 다를 건 없었다. 집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았지만 난 그 좁은 방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 집에 살고 있다는 흔적조차 남기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그냥 여기서 살면 되지. 이 넓은 집, 다 네 거잖아."

술을 마시고 들어온 아빠의 모습에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그래도 아빠한테 말은 해야 할 것 같아서 요즘 집 알아보고 있다고 나름 도움이 되는 조언이라도 해달라고 0.01%의 희망을 갖고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는 집이 있는데 뭐 하러 집을 또 구하냐며 투덜거렸지만 공인중개사를 하는 친구의 명함 하나를 주더니 연락해 보라고 했다. 그래도 그 명함을 받아 들면서 처음으로 아빠가 내 말에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인 것 같아 울컥했다. 그리고 나는 바보같이 또 아빠에게 희망을 걸고 말았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

이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또 어리석은 기대를 하는 건 지능의 문제가 아닐까. 아빠와 동창이라는 공인중개사 분은 아주 다정하신 분이었다. 집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하시는데 영끌해서 집을 살 생각이 없다는 내 말에 기특하다며 슬쩍 본론을 꺼내셨다. 애초에 아빠랑 작당을 한 게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모르는 척 담배를 피우며 텃밭을 살피고 있는 아빠한테 다가가서 빽 소리를 질렀다.

"내가 집이 필요하댔지! 결혼하고 싶댔어?"

예상이라도 한 듯 멋쩍게 웃는 얼굴에 드러난 주름진 표정이 괜히 눈에 밟혀 끝내 크게 화도 못 냈다. 그런 내 속도 모르고 아빠는 슬그머니 속에 불을 놓는다.

"아무나 만나서 결혼이나 해."

"아무나?"

평온하게 끓고 있던 기름에 떨어진 물 한 방울이었다. 여태까지 참았던 모든 분노가 터져서 쏟아져 나왔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질 않는다. 아주 상스러운 욕을 했는지도 모른다.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어차피 아빠에게 난 중요한 사람이 아닐 테고 아빠 역시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니까. 거의 비명을 지르듯이 말을 뱉어냈다.

"내가 결혼을 왜 안 하는 줄 알아? 아빠 같은 사람 만날까 봐! 나도 엄마처럼 아빠 같은 사람 만나서 고생만 하다가 죽어버릴까 봐!"

그날 이후로 조용하던 집 안엔 더 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한 지붕 아래 있었지만 우리는 각자의 방에만 틀어박혀 서로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채 그렇게 살았다. 어쩌다 거실에서 마주치면 괜히 집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아빠와 나 사이의 온도처럼 냉랭하게 온 세상이 얼어붙은 겨울이었다. 돌담에 소복이 쌓인 눈을 보니 엄마가 생각났다. 몇 년 전만 해도 함께 눈사람을 만들었는데 이제는 혼자였다.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끼고 마당으로 나가면서 마주친 아빠에게 나도 모르게 툭 한 마디를 던졌다.

"눈사람 만들 건데 구경할래?"

내 눈은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방으로 들어간다. 헛된 기대를 했던 게 우스워서 코웃음을 치고는 추운 공기를 맞으러 나갔다. 혼자서 만드는 눈사람은 시간이 꽤 많이 필요했다. 코가 빨개질 때까지 눈을 굴리고 쌓아봐도 고작 허벅지까지 밖에 오지 않는다. 작은 눈사람을 만들어놓고는 뿌듯함에 끼고 있던 하얀 귀도리와 빨간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내 작은 눈사람은 마당 한편에서 한가운데로 옮겨져 주인공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빠가 옮겼나? 싶다가도 에이 설마...

"야 네가 만든 눈사람이라고 아빠가 자랑자랑을 하더라."

며칠 뒤 동네 마트에서 만난 아빠 친구가 보여준 단톡방 사진엔 빨간 목도리를 한 내 눈사람이 떡하니 찍혀 있었다. 그리고 단톡에 사진 올렸으면 됐지 전화해서 또 눈사람 얘기를 하더라며 웃으셨다. 분명 마트에서 살 게 많았는데 뭘 사야 할지 다 잊어버렸다. 마트를 몇 바퀴나 실없이 돌다가 집에 들어오자 아빠는 또 슬그머니 나를 피해 방으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참나 그렇게 자랑할 거면 나 눈사람 만드는 거나 구경해 주지!"

“허허.”

어색한 웃음소리가 거실에 두 번 울린다. 그리고는 또 말도 없이 고개만 끄덕이면서 방으로 들어가려는 뒷모습을 보다가 괜히 투덜거렸다.

"나 진짜 집 빨리 구해서 나갈 거야! 이 동네는 밤에 가로등도 별로 없어서 운전할 때 골목 입구도 잘 안 보여! 돌담도 까맣고 입구도 좁고! 좋은 게 하나도 없잖아!"

알았다며 나지막이 대답하고는 결국 방문이 닫혔다. 별로 화가 난 것도 아니면서 씩씩 콧바람을 크게 뱉어낸다. 아빠를 이긴 것만 같았다.

밤만 되면 술을 마시고 들어와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엄마를 괴롭히며 난리를 치는 통에 수면 장애까지 생겨버린 나는 아빠를 평생 증오하고 미워했다. 어릴 때 내가 무서워했던 아빠의 잔상은 쉬이 사라지지 않아서 겉으로는 큰 소리를 치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두려움이 숨어 산다. 그런 아빠를 이제야 이겨낸 것만 같아서 괜히 철없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 어리석은 승리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돌담에 허옇게 칠해진 페인트를 보고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서있었다. 고마움과 동시에 패배자가 된 것만 같은 씁쓸한 기분으로.

"아빠가 칠했지?"

"뭘?"

"돌담에 하얀 페인트."

"안 보인다며."

"칠할 거면 예쁘게 좀 칠하지. 그게 뭐야."

괜히 투덜거리면서 벌써 1년이나 지난 이야기를 이제야 꺼냈다. 한 지붕 아래에서 하던 불편한 동거를 끝내고 나니 오히려 아빠가 편해졌다. 친척 장례식에서 만난 아빠는 술 한잔했으니 택시를 타고 집에 가겠다고 했지만 나는 기꺼이 아빠의 택시 기사가 되어 주겠다고 했다. 물론 택시비는 따블.

"아빤 너희한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 그니까 조금만 미워해줘."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나는 하얗게 멋대가리 없는 돌담을 보며 능숙하게 차를 몰아 좁은골목으로 들어갔다. 차가 멈춰 서자마자 아빠는 어색함에서 벗어나려 급하게 차문을 열었다.

"조심해서 가라."

"그래도 저 페인트 칠해놓으니까 잘 보이더라. 나 갈게."

내 말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차문이 닫힌다. 다시 어두운 골목을 빠져나갈 때까지 어둠 속에 빨간 담뱃불만 깜빡거리는 모습을 룸미러로 보며 중얼거렸다.

조금만 미워하라고? 택도 없는 소리. 그동안 못 했던 잔소리를 다 할 때까진 어림도 없지. 육아가 얼마나 힘든 건지 아빠도 겪어보라고.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함께 였던 적은 없었던 1년의 불편한 동거의 끝. 나는 여전히 아빠를 용서하지 못 했다. 하지만 가끔 생각한다. 아빠를 미워하는 감정조차 없었다면 과연 내가 제주에 남아 있었을까. 아마 아주 홀연히 제주를 떠나 어딘가에 숨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용서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은 내 몫으로, 용서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은 아빠의 몫으로.

결국 이것이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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