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day one film
어떤 영화를 떠올랐을 때 특정 장면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지나가는 음악이나 상황에서 어떤 영화가 생각나는 경우도 있다.
기억의 조각을 집어가며 하루에 하나씩 그런 영화들을 떠올려 본다.
-one day one film from memory
영화명 : 8mile
러닝타임 : 110분
개봉 : 2003년 2월 (재개봉 2017년 5월)
한줄평 :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서 꿈을 좇아가는 이야기.
인생역전을 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디즈니가 아닌 디트로이트.
이 영화가 한국에 개봉했을 때는 2003년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이 노래를 듣게되어서 벅스뮤직에서 찾아봤는데 19금 빨간 딱지가 붙어서 들을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중학생) 결국 이 영화를 찾아보게 된 건 노래 때문이었다. (물론 엔딩크레딧을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전체를 재생해주진 않으므로 듣고 싶다면 아래 유투브 링크를 참조할 것.)
참고. lose yourself와 영화 장면을 편집한 동영상
https://youtu.be/xFYQQPAOz7Y
이 노래 첫 문장에서 보여지듯, 단 한번의 기회가 주어지고, 여기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지는 순간. 주인공 지미는 45초의 랩 배틀의 무대위에 선다. 관객들은 소리치고, 긴장한 배에는 울렁거림만 느껴지고, 머리는 하얗게 질려서, 결국 단 한마디의 verse도 내뱉지 못한 채 무대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자신은 잊고 준비한 것을 해내야 하는데, 실제로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자의식만 가득한 상황에서 야속한 45초가 끝나버린 것이다. 이제 주인공 지미는 모든 것을 잃고 집도 절도 없이 그냥 살아져서 사는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실제 에미넴의 자전적 일대기를 담고 있는 이 영화는, 가족과 생계로 대표되는 현실과 음악으로 표현되는 이상 사이의 괴리를 담고 있다. 대부분의 디즈니에서 현실을 이상에 가까이 매치 시키는 것으로 결말을 내는 반면 (Ending sub : Happy Ever After), 이곳은 디트로이트이므로 생계가 조금 나아지고 이상도 조금 가까워지는 정도로 결말이 난다. 그 과정이 다큐멘터리같다 싶을 정도로 현실적이기도 하다. 힙합뽕(?)으로 허세에 가득차서 페인트 총을 날리던 친구들이 경찰차가 추격하자 떨면서 숨어있는 장면에서나, 실제로 엄마총을 가지고 왔음에도 혹시 발사할까봐 모두가 긴장한 가운데 총을 집어넣다가 바지속을 쏘아버리는 장면을 보면, 마음대로 총을 쾅쾅 쏘고 추격전을 벌이는 그냥 할리우드 영화랑은 무언가 달랐다.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
디트로이트 공장 따위는 그만두고 싶고, 하고 싶은 음악은 더 자신감있게 하고 싶지만, 현실의 어린 여동생과 정신이 어린 엄마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는 두 가지다 어렵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상황이 주인공인 지미 뿐만 아니라 주변인물 전체가 처해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범죄가 횡행하고 빈집들이 무섭게 늘어서 있는 거리에서는, 어떤 희망이나 꿈의 조각도 찾아볼 수 없다. 자동차 산업의 몰락 이후 슬럼가로 변모한 디트로이트처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탈출구만을 찾아 헤매고 있다. 이 때, 어떤 사람(알렉스)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새로운 도시 - 희망을 주는 뉴욕-로 떠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들만의 리그(디트로이트 클럽)에서의 성공을 통해 기회를 얻어내고자 한다. 그러나 동일한 기회가 주어졌을 때 지미는 이미 세워진 줄 뒤에 서는 것보다 스스로 길을 만들어 내리라 다짐한다.
아뇨. 혼자서 해내보려고 해요.
(I'm gonna do it on my own)
데모를 녹음하는 데 친구의 도움을 받겠냐고 묻는 엄마에게, 지미는 혼자 해내보겠다고 대답한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클럽에서의 배틀 승리 이후에도, MC제안을 거부한다. 그리고는 혼자서 다시 잔업을 위해 공장으로 돌아간다. 스스로 돈을 벌어 녹음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때때로 몇가지 선택지밖에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어두운 슬럼가 디트로이트에서 딸린 식구 둘을 데리고 살아야 하는 주인공에게, 혼자서 길을 개척한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친구의 도움을 받아 무료로 데모를 녹음하거나, 또는 공동 MC 제안을 받아들여 그 리그에서의 기득권을 이어받는 것이 더 빠르고 편한 길일지 모른다. 그 기회들은 남들은 못받아서 안달인 "좋은 것"일테니 말이다.
그러나 알렉스의 선택에서 보여지듯, 모든 선택에는 댓가가 따른다. 그리고 그 길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그 대가를 거절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실제 에미넴이 스스로 길을 찾아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좋아보이는 제안의 이면에는 감당하기 벅찬 대가가 있다는 점을 미리 깨달았다는 점에서 주인공의 판단은 현명하다.
나는 내 할일을 할게
이렇게 영화는, 현실에서 이상으로 한발자국 더 내딛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꿈의 실현으로 곧장 올라가는 사다리를 거부하고, 스스로 계단을 만들어갈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막상 할리우드의 뻔한 성공스토리가 아니어서 괜히 실망한 부분도 있었지만, 규격화된 지름길SHORTCUTS을 거부하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려는 그에게 박수를 보내본다.
참고 : 이 영화의 스토리를 가사로 담고 있는 8mile
https://youtu.be/gQalFjdOKIs
누구나 그랬겠지만 필자도 진로를 정할 때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때 머리속에는 단 세가지의 옵션만 있었던 것 같다. 취업, 대학원, 고시. 가장 먼저 고시에 발을 들여놨었고, 안타까운 점수차로 멀어진 이후에는 나머지 두개의 선택지를 가지고 6개월 가까이 고민만 했었더랬다. 결국 대기업으로의 취업 이후 다시 지난 몇년간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사실 선택지는 너무나 많았었다. 다만 다들 가는 길이 비슷비슷해 보였고, 좁은 문으로 보이는 길에는 발을 들일 엄두가 나지 않았을 뿐. 그 때 남다른 선택을 한 친구들 역시 각자의 삶을 잘 꾸려가는 것을 보면, 조금 더 용기를 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 고민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보이지 않는 미래를 앞에 두고, 정직하게 현재를 살아내는 것으로 꿈에 도달해보기로 결정한 지미의 선택이 얼마나 무거운 것이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