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 평가가 무서운 거다
2024년 작
지금까지야 제대로 된 책을 출간한 적이 없으니 그저 그런 글쟁이로 셀프 작가 타이틀을 달고 살았지만 평생 이럴 순 없다는 걸 안다. 언젠간 책을 제대로 출간해 서점에도 보내고 온라인 서점에서도 팔고 싶다. 그러면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모두가 날 작가로 봐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평가받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
나는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고 주변 친구도 그렇다고 인정해주지만, 정작 타인에게 글을 보여주는 건 두렵다. 날카롭게 판단해줄 사람에게는 도저히 보여줄 수가 없다. 내 글을 진지하게 읽어준 사람의 감상이고 피드백이라는 걸, 그 속에는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줄 조언이 있다는 걸 알지만 도저히 태연한 얼굴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비문인 것 같다던가 문장이 어색하다던가. 흐름이 아쉽다던가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던가. 누가 들어도 아무렇지 않은 말인데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손에 땀이 나면서 마음이 복잡해지고 기분이 안 좋아진다. 그러면서 자신감은 한없이 추락해 나는 결국 재능없이 바라기만 하는, 애매하기 그지 없는 그저 그런 글쟁이가 되고 만다. ‘봐, 결국 지금까지 책 한 권 제대로 탈고하지 못한 걸 보면 난 그저 그렇다니까. 제대로 된 작가가 되기에는 그른, 애매한 재능이나 붙잡고 있는 거라고. 아니, 그 애매한 수준까지도 못 가는 거 아냐?’
심사위원이 내 글을 떨어트릴 것 같다는 두려움에 공모전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웹소설을 다른 출판사에 투고하려니 거절받는 게 무서워 자가출간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러고는 독자가 달아준 별점이 몇 개나 있나 그거만 내내 훔쳐보면서 채 10개도 되지 않은 리디북스 리뷰창은 책을 완전히 내릴 때까지 보지 못했다. 조아라 연재창도 마찬가지다. 매번 댓글 개수나 확인하고 그 내용은 정작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칭찬일 수도 있었는데 혹시 비난 일까봐, 조금이라도 아쉬운 소리가 나올까봐. 조금만 툭 건드리면 죄다 무너지는 도미노도 아니면서 아예 쳐다보기를 외면하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다.
왜 이렇게 겁쟁이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거침없이 자기 글을 보여주는 사람이, 자기 글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부럽다. 그 어느 것보다도 부러워 미치겠다. 나는 자신감이 넘치고 다른 부분에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곧잘 대응하는데, 글에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지고 비겁해진다. 생각만해도 가슴이 조여들고 숨이 콱 막힌다. 나는 분명 잘 쓰는데, 그렇게 굳게 믿고 있는데, 또 그걸 증명할 증거가 있는데, 누가 아니라고 하면 순식간에 아닌 사람이 된다.
감상과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내가 잘 안다는 게 유감이다. 나도 누군가가 비난한 책을 즐겁게 읽은 적이 있고 누군가가 찬양한 책을 비난한 적이 있는만큼 직접 봐야 아는 법이라는 걸 안다는 것 역시, 유감이다. 작가는 책을 독자에게 넘긴 후 뒤로 물러나고 자신이 받은 평가를 묵묵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 속에서 어떤 건 수용하고 어떤 건 거부하고, 또 나의 생각을 굳게 밀고 나가고 그러면 되는 건데, 그리 어려운 게 아닌데, 그걸 십 년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글이 모든 이들의 마음에 들어야만 한다고 굳게 믿기라도 하는 것 같다. 한 명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한 명이라도 무언가를 지적하면, 그 글은 실패한 쓰레기라고 생각하나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정도로 두려워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바보같이. 모두를 완벽하게 만족할 수 있는 글이라는 건 분명 없을텐데.
명확한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전부 다 인 것 같으면서도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꼭 이유를 알아야 할까 싶기도. 나는 이미 두렵고, 그러면 그냥 부딪치는 것 말곤 방법이 없는 걸. 누군가가 전복을 먹다가 체해서 전복을 먹지 않게 되었다면 해결 방법은 전복을 먹고 체하지 않는 것, 그거 하나 뿐이다. 아무튼 먹어야 꼭꼭 씹어먹든 갈아먹든 방법을 시도해볼 수 있고 그렇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런 것처럼 내 글을 읽고 돌아올 반응이 두렵다면 반응을 일단 보는 일에, 그거에 익숙해져야 한다. 비난에 대처하는 건 그 다음에 나아가야 할 일이다. 너무 두렵다면 차라리 전복을 먹지 않고 대신 조개를 먹을 수도 있는 거지만 글을 대처할 수 있는 건 내게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내 몫의 전복을 어떻게든 몇 번이든 꾸역꾸역 먹어야 한다고.
누가 보면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글쓰는 게 백 배는 더 어렵다고 생각할지도. 하지만 내게는 평가받는 게 더 어렵다. 진정한 작가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할 나의 산은 소설을 완성하는 것도, 글쓰기 실력을 키우는 것도, 다독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 십 수년동안 산 어귀를 서성거리면서 발을 딛였다가 말았다가를 반복했지만 이제는 진짜 등산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계속 보여 줘야지. "내가 쓴 글 어때?"라는 질문과 그 답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그래, 그냥 그러라고 해, 하고 답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