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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따가 Mar 14. 2020

잘못 송금한 내 돈, 잘 먹고 잘 살아라

솔직하게 욕망하기

이사한 지 3달이 지났는데도 통장엔 이전 집주인 계좌로 자동이체 내역이 남아 있었다. 1월 17일에도, 2월 19일에도 관리비 7만 원이 이체되었다. 관리비를 돌려받긴 쉽지 않겠다는 판단이 섰다. 있는 놈이 더하다고 이사하는 날 이전 집주인은 두꺼비집이 깨졌느니, 리모컨이 어디 갔냐느니 하면서 지저분하게 굴었던 터다. 두 귀가 화끈거리고, 뒷골이 당긴다. 어렸을 적에는 이것저것 자주 흘리고 다녔지만 요새는 중요한 건 꽤 열심히 챙긴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 한 번이면 자존감 지키기가 쉽지 않다.



착오송금 돌려받을 수 있을까?


나처럼 이체를 잘못하는 경우를 전문 용어로 '착오송금'이라고 한다. 최근 5년간 착오 송금된 금액이 1조 정도 되고, 그중 54.1%는 돌려받지 못한다고 한다. 돈을 돌려받고 싶다면 잘못 이체한 수취인에게 연락을 하거나, 은행에 '착오 송금 반환 청구'를 할 수 있지만, 수취인이 반환을 거부하면 돌려받을 방법이 소송밖에 없다.

착오송금 반환신청을 했지만 역시나 실패했다


더불어 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착오송금을 공공기관에서 구제해 줄 수 있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정치가 내 삶에 얼마나 영향이 주는지 체감해 버리고 말았다. (두고 보자 이놈들아)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국가가 개입할 이슈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송금을 잘못한 사람도 책임이 있는 것이고 송금을 잘못 받았으면 즉시 반납하는 게 당연한 인간지사다”며 “길 가다가 돈 보따리 떨어뜨렸는데 다른 사람이 집어 가면 그것도 국가가 보상해 줄 것이냐

'나 홀로 소송'이라는 것도 있던데 한 번 시도해볼까 했지만, 이런 소액으로는 나 홀로 소송도 수지 타산이 안 맞는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더 이상 이 일로 스트레스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두 달치 관리비 14만 원이면 치킨이 아홉 마리쯤 혹은 습기 찬 내 방에 제습기 하나 들여놓을 수 있는 돈이다. 조금은 삶이 윤택해지겠지만, 치킨을 더 먹으면 몸무게는 늘어나겠지. 제습기 하나 더 생긴다고 내 삶이 달라질까. 14만 원 더 생긴다고 어차피 못 할 내 집 마련을 할 수도 없고, 한 푼 두 푼 모아 부자 된다는 소리는 헛소리라고 믿는다. 가능하다고 치더라도, 그동안의 포기해야 할 생활을 생각하면, 한 푼 두 푼 모아 되는 부자는 안 하는 게 낫겠다.



솔직하게 고민하고 욕망하자


조금 더 내 욕망에 솔직해지자면, 그래도 돈은 많고 싶다. 소소하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행복을 찾는 건 좋지만, 돈이 많다면 더 잘할 수 있다. 정신적으로만 만족하며 행복을 찾는 건, 부자가 되고 싶은 내 욕망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몇 십억 하는 빌라 가지고 월세 받아 여유 있게 살면서, 고작 내 돈도 아닌 14만 원 주기 싫어서 연락도 안 받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조금은 낯부끄럽게 얘기해보자면, 자기의 삶에 대해 진지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행복해지는지 고민하지 않은 사람들은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나는 제습기를 구매했고, 방금 배민으로 치킨도 주문했다. 집주인과 싸우기보다는, 치킨 먹고 힘을 내는 편이 좋다.


내 욕망에 솔직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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