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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따가 Jun 24. 2017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반쪽짜리 글'과 '조금은 읽어줄 만한 글'의 차이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학창 시절이었다. 개학 하루 전에 몰아 쓰던 일기나 수행평가를 위해 검색한 내용을 편집하던 것이 글쓰기라면, 그것이 내 글쓰기의 전부였다. 논술 준비가 그나마 도움이 되었으려나. 다행히 속성 인강으로 준비했던 논술이 엉망은 아니었는지 대학생이 되었고 남들 하듯 점수 맞춰 전공을 선택하였으니, 국어국문학이었다. 남들 하듯 전공을 선택했는데 수업 시간이면 왜 나만 빼고 다들 문학도들이고 내가 끄적인 건 하루 전에 몰아 쓰는 일기 그대로였던지. 글쓰기가 필요한 수업은 피해 다니기 일쑤였고, 드라마틱한 사연 하나 없이도 글쓰기는 한동안 나의 콤플렉스였다.  


처음 원고지를 마주하던 어릴 적이 기억난다. 어떻게든 분량을 채워야 했기에 '했다'를 '했던 것이다'로 고쳤고. 재미있지도 않았던 '책'은 '정말 재미있는 책'이 되곤 했다. 어떤 내용을 써야 할지 모를 때는 짝꿍이 쓴 글을 참고하여 어울릴 듯하면 한 줄 슬쩍 베껴왔고. 언제나 결론은 '참 재미있었다로' 마무리된다. 고통스러운 짜깁기였다. 이태준은 『문장 강화』라는 책에서 말했다.


글짓기가 아니라 말을 짓기로 해야 한다


우리가 말로 표현하려는 것은 마음, 생각, 감정이다. 표현하고픈 말이 없는데 분량은 채워야겠으니 잘못된 문장으로 원고지가 채워진다. 그래서 글쓰기를 처음 시작할 때는 '목소리가 들리는 글'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쓰기의 목적은 생각과 마음을 전하는 것이지, 다른 엉뚱한 곳에 있지 않다. 문장 한 줄, 단어 하나를 내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글쓰기의 올바른 첫걸음일 거다. 



글쓰기 시작하기


짜깁기하던 글에서 내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군인티가 빠지기 시작하던 즈음이다. 갓 민간인이 된 이들이 그렇듯, 두려운 게 없던 나는 콤플렉스 극복을 위해 작은 글쓰기 수업을 찾아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첨삭을 받았다. 첫 글은 의욕적으로 썼으나 빨간줄 덩어리였다. 불필요한 수사, 어색한 문장, 글의 주제와 관련 없는 문단으로 글이 반쪽이 났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다. 짜깁기한 글이 어떻게 재미있을 수 있을까.


무난한 내용. 어디서인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일 텐데 마음이 끌릴 리가 없지. 어떤 이야기를 써야 잘 썼다고 할까. 어디선가 들어 보지 못한 이야기. 내가 들어도 재밌는 이야기. 그러면서 내 목소리가 들리는 그런 글을 써야 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끙끙 앓으며, 고치고 또 고쳐서 "젊은애들이 뇌가 말랑말랑해서 이렇게 빨리 배운다"라는 소리를 듣고야 말았는데 이제야 조금은 읽어줄 만했던 그 글이 지난주에 연재했던 '87년 체제를 이룩한 지 딱 25년째'다.


'반쪽짜리 글'과' 조금은 읽어줄 만한 글'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어디선가 들어 본 식상한 결론은 아직도 조금 아쉽다. 읽기가 매끄러워진 점이나 주제가 보다 명확해졌다는 점에서는 괜찮아졌다. 하지만 더 중요한 차이는 점주님과 매니저님의 '그 시절'에 감응했다는 점일 거다. 『글쓰기의 최전선』의 작가 은유는 감동이 가슴 안에서 솟구치는 느낌이라면 감응은 가슴 밖으로 뛰쳐나가 다른 것과 만나서 다시 내 안으로 들어오는'변신'의 과정이라고 했다.


글쓰기 책을 한 권만 고르라면 이 책으로 하겠다


 

감응하는 글쓰기


우리는 감응을 통해 다른 이의 이야기를 살려내고, 내가 살아갈 자리를 찾는다. 새벽부터 떡을 찌는 아르바이트생이나 매일이 야근인 직장인으로 혹은 첫차와 함께 하루를 마감하는 대리기사로 살아가며 그 와중에 나 하나 온전히 붙잡고 있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니 그들과 나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면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작더라도 좋으니 목소리를 내어 보려한다. 그런 목소리 안에서 '조금은 더 괜찮은 나'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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