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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Feb 22. 2022

나는 어떻게 내가 되었나?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 - 1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 - 1


엄마가 우는 걸 본 적이 있다. 내 앞에서 울었는데, 병원이었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하는 시기였는데, 이모들과 전화를 하면서 울었다. 큰 수술이었고, 꽤 오랜 시간 동안 입원을 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모들이 엄마에게 전화해 안부를 물었다. 안부를 묻는 고마움에 엄마가 울었냐고? 아니다. 오히려 안부만 물어봤기 때문에 울었다. 오지 않고, 안부만 물었기 때문에. 엄마는 전화를 끊고서 ‘잘못 살았다’고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한 명도 오지 않을 수 있냐고. 아무리 코로나라도 그렇지 어떻게 그래도 한 번을 오지 않을 수 있냐고. 처음 보는 엄마의 우는 얼굴을 보며 나는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그냥 곁에서 어색하게 슬퍼했었다.


엄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바로 연차를 내고 집으로 향했다. 아빠는 일을 그만뒀다고 했다. 오빠는 당시 아내가 임신 중인 시기여서 주말마다 오기로 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엄마에게 달려왔다. 나와 아빠는 교대로 엄마 옆을 지켰다. 아빠는 아침부터 저녁, 나는 저녁부터 아침을 맡았다. 우리는 엄마의 대소변을 비웠고, 간이침대에서 쪼그린 자세로 잠도 아닌 잠을 자면서 엄마 옆을 지켰다. 그렇게 우리가 항상 엄마 곁에 있음에도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잘못 살았다고.


오빠에게 엄마가 울었다고 전했다. 오빠는 슬픔에 동조하다가 이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긴 했다. 이모들도 몸이 편하지 않거나 운전을 누군가가 대신해줘야 하거나 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서운할 수밖에 없던 엄마의 마음도 나는 이해한다. 어느 쪽이 더 이해 가능한 것인지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나이를 먹고 가족이 생겨도 끝없이 외로움을 느끼는 인간과 인생에 아득하고도 무서운 지겨움을 느꼈다. 어째서 외로움이라는 건 나이를 먹어도 초연하게 다룰 수 없는 걸까.


하지만 엄마 옆에서 같이 슬퍼하거나, 홀로 무서워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되면 엄마가 먹은 밥을 치우고, 링거와 산소기를 들고 볼 일을 보는 엄마 앞을 지키거나 내 걸음으로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을 길이의 복도를 30분 정도의 시간 동안 엄마와 걸어야 했다. 엄마의 일을 제외하고도 할 일이 많았다. 회사에도 엄마 간병이 어느 정도의 진척을 보이고, 계획대로 예정된 날짜에 출근을 다시 할 수 있는지 알려야 했고, 써야 될 글과 썼던 글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함과 동시에 가끔씩 지나간 슬픈 기억들이 머리를 휘저었다. 그러면서도 자려면 씻어야 했고, 짐승같이 배가 고파지면 밥을 챙겨 먹어야 했다. 나와는 다르게 시간은 감상에 젖지 않았다.


퇴원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엄마는 부쩍 ‘가족이 최고다’, ‘가족밖에 없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말은 어느 부분에선 정말  그대로 ‘너네가 있어서 좋아라는 뜻인  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인생에는 결국 너네밖에 없네같기도 했다.  말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어 묵묵히 밥을 먹거나 슬며시 다른 얘기를 했다. 영화 <보이후드>에서 메이슨의 엄마가 메이슨 앞에서 고지서를 정리하면서 인생을 한탄하다가 눈물을 터뜨리며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 메이슨의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 그냥뭔가  있을  알았어 엄마를 보면서 문득 영화   장면이 겹쳐 떠올랐다. 뭘까. 나이가 70 되어도 슬플 일이 있고, 서운한  생기는  뭘까. 어째서 초연해지는 데에는 많은 상처가 필요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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