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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May 11. 2020

너와 나의 운명

우리가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면

이별의 시간이 지나면서 숨 쉬는 것조차 힘든 것만 같았던 고통이 조금씩 사라져 갔다. 혼자 있는 것이 익숙해진 상황에 역류성 식도염도 나아지는 듯했다. 혼자 야구장에 가서 맥주 한 캔과 햄버거로 저녁을 대신하며 야구 경기를 보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취미가 되었고, 가끔 만나는 친구들과의 술자리 주제도 더 이상 그가 아닌 썸 혹은 소개팅 얘기였다.


내 인생의 2막, 3막을 알리는 인터미션 같은 시기라고 생각했다. 내게 운명의 상대가 다가오기 위한 전조 현상 같은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무뎌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앞에서 헤어진 그를 마주쳤다. "오랜만이네?" 나 만큼이나 무뎌진 듯한 모습으로 그가 먼저 인사했다.


그와 나는 같은 해 졸업을 하고 동시에 취업에 성공했으나, 그는 신입사원이 되자마자 지방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단단할 것만 같던 관계는 끝이 났었다.


분명 전라도 광주에 있어야 했을 사람인데 그와 내가 마주친 곳은 서울 을지로입구 사거리였다. 본사 교육이 있어 며칠간 서울에서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내가 다니던 회사의 대각선 거리에 그의 회사 본사가 있었다.) "우리 저녁 한 번 같이 먹자" 쿨한 전 여자 친구의 가면을 쓰고 제안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가야 해서 어렵다고 한다.


순간 묘한 감정이 생겼다. 사실 나도 외로움을 잊고자 연락하고 지내던 썸 타는 존재가 있었다. 현재 상황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마음먹은 지 얼마 안 되어 이런 제안을 하다니. 아쉬워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나중에 시간 되면 연락 줘. 참고로 나도 잘 지내고 있다!" 청춘 드라마 주인공처럼 밝은 척 인사하고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우연히 마주친 순간 '이건 운명인가' 싶었으나 그런 건 없었다. 운명이란 건 믿고 싶은 것 혹은 믿고 싶지 않은 것을 정당화하고 관철시키기 위해 만든 용어라고 생각했다.


잠시 찌릿했던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늘 같이 저녁 먹을래? 회사 근처에서?"

"나야 좋지. 근데 여자 친구는 안 만나?"

"응, 여자 친구가 마침 해외 출장 갔거든"


그리고 그의 서울 출근 마지막 날 함께 식사를 했다. 그와 나는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듯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의 썸 상대에 대해서도 그가 궁금해했고 소소한 에피소드를 들려주면 그린라이트가 맞다며 나를 응원해주기도 했다.


꽤 만족스러운 저녁식사를 마치고, 그는 고속터미널역으로 나는 집으로 갈 예정이었다. 순간 나는 과거 그의 광주행 버스 혹은 기차를 배웅해준 적이 한 번도 없어 그가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서운함을 표현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 순간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함께 고속터미널역으로 향했고 연인이 아닌 상태로 첫 배웅을 했다.


알 수 없는 뿌듯함과 동시에 잊고 지냈던 숨 막힘이 찾아온 것 같았다. 이대로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아 썸남에게 연락했다. 다소 이기적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썸남은 내게 쿠션 같은 존재였다. 내가 크게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옆에 놓인 커다란 쿠션 하나 같은 존재.


그 덕분인지 나는 다시 일상을 이어갔다. 수레바퀴 같은 회사에서 열심히 엑셀을 돌렸고 PPT를 만들었다. 그리고 찾아온 어느 금요일. 자연스러운 듯 사실은 어색해서 죽을 것만 같았던 일주일 전 그와의 만남이 떠올랐다. 그리고 미련하게도 옛 추억을 소환했다.


나는 두 번의 상처를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슨 용기였는지 그와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애절함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썸남에 대한 배신이자, 지나간 사랑에 대한 집착과 미련이었다. 생각보다 사랑이 쉽게 변하는 것처럼 사랑 후의 마음가짐이 이렇게 쉽게도 변할 줄은 몰랐다. 이걸 운명이라고 포장하며 나의 행동을 정당화시켰다.


"나 오늘 퇴근하고 광주 가려고 해. 같이 광주에서 맥주 한 잔 하자"

그는 금요일 저녁때마다 광주를 출발해 서울로 와서 주말을 여자 친구와 함께 보내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기가 차는 문자였다. 그런데.

"응 그래, 이번 주는 그럼 서울 가지 말아야겠네"

나의 제안에 선뜻 응한 것에 대한 묘한 쾌감과 더불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그의 반응에 하루 종일 심란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내 머릿속이 복잡해지던 와중에 나는 속보를 발견한다.

KTX 고장으로 광주행 운행 지연

그게 오후 5시 경의 일이었다. 또 다른 의미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버스를 타고 가야 할까? 기차는 복구가 될까? 그리고 나는 그에게 연락했다. "KTX가 고장 났대. 내가 예매한 열차 출발을 못할 것 같은데 어떤 방법으로 가야 가장 빨리 갈 수 있을까?"


문자를 읽고도 한참을 답이 없던 그는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 간신히 답을 보냈다.

"나 아무래도 그냥 서울에 올라가서 여자 친구를 만나야 할 것 같아. 다음에 기회 되면 다시 식사하자."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그리고 순간 과거 그가 운명에 대해 얘기했던 한 장면이 그림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운명을 믿어. 공통점이라는 건 하나도 없는 우리 둘이 이렇게 만나 사랑을 하고 꿈을 키운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우린 이 만남을 시작하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이건 운명이야. 우리가 만났어야만 할 운명"


운명론자의 그 말이 비수처럼 꽂혀 금세 현재 상황을 수긍하게 만들었다. 나는 운명론자가 아니었고 우리의 의지에 따라 사랑의 과정도, 결과도, 꿈도 모든 게 바뀔 수 있다고 얘기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틀렸다. 그의 말이 옳았다. 사무실에서 나와 허공을 바라보던 나는 눈시울을 붉혔다. 우리가 만나지 말아야 할 운명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편안해졌다.


지옥의 끝을 맛보는 듯 싸우던 그때에도, 결국은 헤어지던 그 날에도, 내게 다시 만나자는 제안을 했으나 거절당했을 때에도, 또 내가 이후 지겹도록 만나자고 구걸할 때에도 참으로 태연하고 냉정했던 그의 눈빛이 생각났다. 그는 운명을 믿거나 혹은 운명을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사랑의 속도가 다르고, 사랑 후에 느껴지는 감정의 변화와 속도도 물론 다르다. 나는 이성적인 듯하다가도 이렇게 꼭 사랑 앞에서는 무모해진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두고 과거를 회상할 줄도 알아야 하고, 서로의 현재를 응원해줄 줄도 알아야 한다. 해변의 모래알처럼 파도를 따라 움직이다가, 운명이라면 마음이 열려있는 상태의 그와 나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유치하고도 찬란한 전 남자 친구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렸고, 이별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방법을 참 소란스럽게도 배웠다.


이별은 여전히 아프고 힘든 것이지만, 그래도 그 이후 겪은 이별의 과정에서 나는 꽤 빠르게 태연하고 냉정해졌다. 이 또한 그가 가르쳐준 이별의 방법이라는 게 너무 어리석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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