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되면 생각나는 공기가 있다. 맑고 쾌청한 하늘에 어디선가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기도 했다. 반팔을 입어도 그 위에 가디건을 걸쳐도 다 좋았던, 어느 수목원에서의 상쾌한 공기였다.
그곳을 함께 걸었던 그는 나에게 상쾌한 가을바람 같은 존재였다. 항상 환하게 웃고 있었고, 손은 따뜻했고, 그가 찍어주는 사진의 분위기는 늘 포근했다.
그가 곁을 떠난 후 어느 9월, 퇴근길에 그때의 그 상쾌한 공기를 느꼈다. 을지로입구에서 광화문으로 걸어가던 길이었다. 도심 속에 수목원이 있을 리는 없는데 말이다. 퇴근 시간 빽빽하게 줄지어 늘어선 차들과 저녁 약속을 위해 삼삼오오 모인 인파들이 가득한 그 공간에서 왜 불현듯 그 공기가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아마도 누군가의 따뜻한 관심이 그리웠던 것 같다. 부모님이 내게 주는 관심과 사랑으로 충분할 것 같았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것이어서 아마도 계속해서 마음에 품고 있었나 보다. 누군가가 '너 아직도 그 친구를 잊지 못한 거냐'라고 물었다면 그건 아니라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시기였다. 그럼에도 상쾌한 공기에 내가 발걸음을 멈추고 청계천을 바라보며 멍하니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던 이유는 그저 지나간 시간, 그리고 어디선가 느낄 수 있었던 포근한 분위기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 거다.
한 때 지나간 인연을 되찾고 싶어 울고불고 난리도 쳐보고 내 진심이 오롯이 닿았던 관계는 오직 너뿐이었다 등등 오글거리는 글귀를 일기장에 적어가며 외로운 척도 해보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그저 존재하지 않는 '관계에 대한 아쉬움'에 대한 내 회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그 상대에게 나 혼자서 미안함을 전달해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너는 나에게 그저 과거에 만났던 괜찮은 남자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일 뿐이다. 너와의 관계가 끝이 나면서 상실감을 느끼고 진정한 사랑을 잃은 것처럼 눈물을 흘리곤 했었다는 내 이야기도 사실은 '너'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저 과거에 좋았던 여러 장면들이 사진처럼 머릿속에 남아 그때 그 시간과 그 공기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내 이야기가 그에게 직접 닿지는 못하겠지만 이렇게라도 남겨두면 영화에서처럼 어디에선가 나를 갑자기 떠올리며 '그래 그럴 것 같더라'라며 잔잔하게 미소를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오늘도 공기가 상쾌하고 하늘은 깨끗하다.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나에게 텔레파시처럼 이야기를 건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잠시 하늘을 바라봐야지. 눈이 감길 것 같은 피곤함 속에서도 시간을 내어 공기를 마시고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리운 과거의 시간과 아름답게 인사하고 떠나보낼 수 있기 때문에 내게 꼭 필요한 하루의 루틴이 되어버릴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