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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슈타르솔 Oct 26. 2019

아기돼지 삼 형제와 캐나다 원어민 강사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벽돌집과 안정감(Security)'

 어른이 되면 유년기의 행복한 추억들로 살아간다고  어릴 적 어른들이 말씀하시곤 했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 집 형편은 '갖고 싶은 게 있다면 다음 생일 때 빌어보자' 가 단골 멘트이던,  넉넉치 않은 형편이었다. 주변 친구들이 몇만 원에서 몇십만 원씩 하는(20년도 전인데!) 레고나 선가드 장난감을 선물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나는 그 해당 친구에게 평소보다 유난히 친한 척을 했다. 착한 내 불알친구는 독점욕 없이 내가 자기 장난감을 마음껏 가지고 놀게 해 주었다(아니면 너무 많아서 신경을 안 쓴 걸지도).


 그러한 유년기의 결핍들이 역설적이게도 작은 것에도 누군가에게 감사해할 줄 아는 방법을 알려준 것 같다.

내가 초등학생 땐, 지금처럼 부모님들이 자녀가 유치원생일 때부터 이미 대학 진학시험에 목을 매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팔방미인'이라는 사자성어가 함축하듯,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재능을 갖춘 인재로 자녀를 키우기 위해서, 피아노, 영어, 수영, 바둑 등의 학원이 성행했었다. 우리 집 또한 없는 형편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내가 초1 때부터 영어학원을 보내셨다. 고학년 때 나로 하여금 영어에 정을 떼게 만든 초록색 영문법을 접하기 전까지, 내게 있어 영어학원은 즐거운 공간이었다. 볼풀장에서 친구들과 공놀이를 할 수도 있었고 여러 가지 외제 완구들이 잔뜩 있었다. 운이 좋게도 캐나다나 미국처럼 아동 인권이 발달된 나라에서 온 원어민 강사들은 동방의 작은 나라의 아이들이 귀엽게만 보였는지, 내 기억 속에선 한 번도 불쾌한 표정이나 위협적인 제스쳐 없이 온화한 눈빛으로 적절한 보상과 동기유발을 통해 영어를 가르쳐줬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한 남자 선생님.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생이거나 막 대학을 졸업한 스물초중반의 청년밖에 안 되었던 것 같다. 놀이공간으로 가는 횟수나 체류시간은 순전히 해당 시간대 강사의 재량권이었는데, 그분은 꽤나 자주 우리를 데리고 놀러 가주었다. 


 놀이방에 가면 초등학교 저학년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플라스틱제 집이 있었는데, 내가 제일 먼저 하는 건 그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그는 거였다. 그리고는 들고 간 장난감 밴드(똑딱이로 연결시키는)를 이어서 나름 튼튼하게 인형집 문틀을 걸어 잠근다. 그 순간 나는 《아기돼지 삼 형제》의 셋째가 되어 세상에서 제일 튼튼한 나만의 요새를 갖게 되는 것이다. 유아동기 때 나는 《아기돼지 삼 형제》에 푹 빠져있었다(어무니 말씀에 따르자면 한글도 그 동화로 떼었다고 한다). 기쁨과 묘한 기대에 어두운 집 안에서 키득거리고 있으면 푸른 눈의 선생님이 일부러 발을 쿵쾅거리며 다가온다. 마치 괴수영화의 거대 괴수라도 된 듯이 무자비하게 집을 흔들어 재끼고 고사리손으로 이어 붙인 자물쇠를 처참히 부서트렸다. 그 순간 나는 재난영화속 주인공이 됨과 동시에 무척 강렬한 스릴과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속으로 '아싸 다음번엔 세 겹, 네 겹으로 안전장치를 걸어야지. 그러면 저 늑대도 감히 내 집을 어찌하진 못할 거야. '라고 다짐을 했다. 물론 건장한 청년의 이두박근 파워에 내 요새는 이후로도 몇 번이고 계속해서 박살 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상황에서 내가 느낀 건 안정감이었다. 

 



 요 며칠 조카들이 더운 서울 집을 벗어나 우리 집으로 피서를 왔다. 18개월 하나와 5살짜리 하나. 형은 뭐가 그리 이쁜지 하루 종일 먹고 싸기만 하고 울고웃고 무한히 떼쓰는 저 작은 생명체들을 향해 무한한 사랑에너지를 공급한다. 애기들을 데리고 동물원을 갔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제 막 입이 트이기 시작한 둘째가 '아빠---!!' 하고 방언이 터졌다. 자상한 형은 '그래♡ 아빠 여깄어' 하고 답을 한다. 그러자 덩달아 신난 첫째도 '아빠' 하고 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먹이를 바라는 뻐꾸기 새끼들처럼 두 아이의 '아빠' 소리 퍼레이드에 형은 10분이 넘게 일관되게 자상한 목소리로 답을 해 주었다. 이런 모습들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보고 있자니, 듣는 나는 괴롭고 돌아버리는 줄만 알았다.


 이렇게 막 자라나는 애기들은 반복을 굉장히 좋아한다. 삼촌하고 술래잡기를 하자면서 뻔히 다 보이는 스팟에 계속해서 그 자리를 고수하며 숨는다. 그리곤 삼촌이 나타나 너희가 거기 있는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는 표정으로 놀라며 자신들을 찾아주기를 바란다. 나는 아직 결혼생각이 없지만, 아이들의 반복적 요구에도 지치지 않고 일관되고 세심하게 반응해주는 부모들의 피드백이 건강하고 행복한 유년기를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고생이 많은 존경스러운 우리 형에게 노고의 박수를 보냄과 동시에 20여 년 전 나의 계속되는 괴수 놀이에도 지친 기색없이 혼신을 다해 놀아주신 원어민 선생님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연락이 닿는다면 맛있는 한국 과자들을 잔뜩 보내드릴 텐데. 역시 캐나다 사람들은 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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