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의 스타벅스 캐나다 워홀 [13]
[13]
“그래서 꿈뀨!
너의 이상한 점이 뭐야?”
초면에 상대의 이상한 점을 묻는
브리엔의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혔다.
“어…”
뭐지.. 광기인가..
그렇다면 나도 광기로 대답해야지..!
“웃을 때 입이 큰 거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내 입은
웃으면 다들 쳐다볼 정도로 컸다.
나름 활짝 웃을 수 있어 장점이기도 하고,
뭐 비정상적으로 커서 단점이기도 하고..
무난하게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한 걸로 골랐다.
“그렇네!!
입이 정말로 크네!!”
브리엔이 밝게 웃으며 동조했다.
허허.. 뭐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그래서 꿈뀨!!
어떻게 하면 너 같은 아이를
스타벅스에 가득 채울 수 있을까?!”
브리엔이 뿔테안경 속
푸른 눈을 번쩍이며 물었다.
“저.. 같은 애요?”
‘나 같은 애’는 도대체 무슨 뜻인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그래!! 너처럼
에너지 넘치는 애 말이야!!
너 같은 애를 어디서 구할 수 있냐는 거지!”
아.. 다행이다.
긍정적인 뜻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훅 들어온 칭찬은
또 다른 당혹감이었다.
칭찬의 의도를 정확히 몰라
최대한 겸손하게 대답하고자 했다.
“저희 매장엔
찰리도 있고, 크리스도 있어요!
둘 다 파이팅 넘치는 바리스타인걸요!”
“맞아! 둘 다 훌륭하지!
하지만 나는 너의 에너지가 너무 탐나!”
브리엔과 대화를 나누며
등에 땀이 주룩주룩 흘렀지만
그래도 지역구 매니저인 브리엔이
나를 좋게 봐주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아직 학생인 거니?”
학생이냐는 질문은
스타벅스에서 일하면서
숱하게 들었다.
서양인들에 비해
동양인들이 워낙 동안이기도 하고
보통 여기 스타벅스는
대학생들이 알바로 많이 뛰기 때문이다.
대학교 졸업한 지 4년 됐고,
남편까지 있단 걸 알면
까무러치겠지..
“꿈뀨는 잠시 일하는 거예요!
안타깝게도 1년 뒤에
한국으로 돌아간대요.”
크리스가 끼어들었다.
“뭐어? 다시 돌아간다고??””
브리엔이 나를 쳐다봤다.
“알아요, 슬픈 일이죠ㅠㅠ
브리엔 이제 매장 둘러보러 갈까요?”
크리스가 적당히 대화를 끊어주었다.
와 다행이다.
이제 브리엔의 질문 폭탄에서 벗어날 수 있어..
크리스에게 미소를 지으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크리스도 나를 보고 웃어 보이고는
브리엔을 이끌고 매장을 둘러보러 나섰다.
–
–
평소와 같이 일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선글라스를 쓴 한 남자가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근데 남자가 갑자기 씨익 웃었다.
선글라스 때문에
어딜 보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설마..
나를 보고 웃는 건가?
“Hi”
남자가 손을 흔들며 내 앞에 섰다.
나를 보고 웃는 게 맞았다.
누군지 영문을 모르겠다.
선글라스 써서 내가 못 알보는 건가?
“Hi”
남자의 인사를 무시할 수 없어서
얼떨떨하게 나도 손을 흔들었다.
짧게 친 단정한 머리,
입술을 덮지 않도록 정리한 콧수염과
볼과 턱까지 가지런히 정돈된 수염.
검은색보단 흰머리가 더 많아
전반적으로 회색빛을 띄었다.
그에 비해
눈썹은 진하고 새카매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스타벅스에서 일하지 않아요?”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선글라스를 벗어도
도저히 누군지 모르겠다.
“어.. 네.. 맞아요..”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해졌다.
지난번에 직접 봤던 손님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그래도 잘 모르겠단 말이지..
“저번에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거 봤어요.”
내 눈빛이 계속 의문이었는지,
남자가 설명을 덧붙였다.
“친절하고 매번 웃고 있어서
눈에 띄었거든요.”
“아~ 스타벅스에서 절 보셨군요?”
뭐 이런 일은 허다하다.
일하다 보면 수십 명의 손님을 마주하느라
그 손님들의 얼굴을 다 기억하기 힘들다.
하지만 손님 입장에선
본인을 상대했던
스타벅스 직원 한 명의 얼굴을 기억하는 건
비교적 쉽기에
우리가 손님을 못 알아봐도,
손님은 우리를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미안함이 앞선다.
이 남자는 나를 알아봐 주었는데
나는 이 남자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어
괜히 민망했다.
“알아봐 주셔서 감사해요.”
“이제 일 끝나고, 집 가는 길인가 보죠?
이 근처 살아요?”
자연스러운 스몰톡.
그토록 고생하며
주문받는 포지션에 3달을 버텼던 결과
이제는 이런 스몰톡은 껌이다.
“아, 아니요.
저는 지하철 타고 좀 가야 해요.”
거짓말을 했다.
사실 지내는 곳은
걸어갈 정도로 가까웠다.
다만, 초면에
내가 사는 곳을 노출하긴 싫었다.
“이 근처 사세요?”
남자에게 고대로 되물었다.
스타벅스에서 스몰톡하면서 배운 것.
할 말 없을 땐
상대가 말한 질문을 그대로 되물면 된다.
“네, 근처 살아요.
일하는 거 어때요? 재밌어요?”
남자가 미소를 띠며 물었다.
스타벅스 일?
재밌냐고?
–
–
크리스 말이 맞았다.
적응 기간 3개월이 지나자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손이 느려 매일 ‘주문’만 받던 내가
이제는 ‘바’는 물론 ‘서포트’까지 척척해냈다.
음료 만들 때
손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땡큐 쏘 마치’를 외치는 것.
그 자체가 너무 즐거웠다.
그 즐거움이 보였는지
슈퍼바이저들은
음료 만드는 ‘바’ 포지션에 더 많이 배치해 줬다.
더 많은 손님들이
나에게 웃어주었고,
나 또한 더 많은 손님들의 이름을 외웠다.
이제 일하는 매 순간이
너무 즐겁고, 감사했다.
–
–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즐거운 순간들을 떠올리니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너무 즐거워요.
그래서 제가 일할 때 항상 웃고 있나 봐요”
남자와 대화하며
처음으로 활짝 웃었다.
내가 웃어 보이자
남자도 활짝 웃었다.
큰 웃음에 하얀 치아가 돋보였다.
“다행이네요,
같이 커피라도 한잔할래요?”
...?!
예???!!
데이트하자는 건가?
아니.. 그렇다 치기엔
저 남자..
40대 초중반은 되어 보인다.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아 보이는데..
그냥 친구 먹자는 건가?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과 친구??
유교걸 마인드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우정이다.
“아...”
예상치 못한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이럴 때는 뭐라고 하는 게
예의 바르게 거절할 수 있는 거지?
시간이 없다고 해야 하나?
이걸 영어로 어떻게 말하지?
너무 당황스러워서
영어로 말하는 법을 잊었다.
브리엔이 ‘이상한 점’을 물었을 때보다
더 당황스러웠다.
여기 사람들은 나를 왜 이렇게
당황시키는지 모르겠다.
남자는
잔잔한 미소를 띠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정하게 깎은 머리,
짙은 눈썹 아래 깊은 검은색 눈,
빼곡하지만 가지런히 정돈된 수염.
이 남자..
정말...
잘 생겼다.
TO BE CONTINUED